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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Jul 13. 2023

그리움의 구멍




토요일 오전 수업 마치면 기숙사로 돌아 가방을 쌌다. 커다란 가방에 냄새나는 일주일치 랫감 쑤셔 넣고 석에 박아둔 비닐통투에 빈 반찬통을 았다. 들여다볼지 모를 책 몇 권을 넣어 어깨에 메면 원래 체격보다 이 더 커 보였다. 겨우 24시간 외출 말도 없이 미련 없이 다신 돌아오지 않을 람처럼 잔뜩 짐을 꾸려 떠났다.


아빠가 갑자기 시골로 이사 간다고 했을 때 처음엔 놀라고 곧이어 화가 났다. 이사는 어른들의 일이지만 내 인생과도 상관있는 일이었다. 아빠를 따라 서울에서 경상도로 전학을 때 나는 스스로를 고향에서 추방당한 이방인이라 각했다. 행정구역 하나 달라졌을 뿐이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거리는 종종 자로 잰 거리와 다르다.


변두리에 살았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게 풍경 낯설고 사투리는 이국의 언어 같았. 못 알아듣는 단어 존재다는 사실이 황스럽고 모두 웃는데 나 혼자 않는 순간 난감다. 귀는 알지만 뇌는 모르는 이 불편지만 선을 다해 이해하려 지 않았다. 익숙해지 떠날  없 불안 속에서 스스로 이방인을 자처했다. 래야만 살던 곳으로 돌아가겠다  혼자만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갈 때마다 일주일 간 이방인으로 살며 느낀 감정을 빨랫감과 같이 넣어 돌아갔다. 엄마가 보고 싶은 만큼 어리광을 걸치고 엄마만 받아주는 짜증을 러메 갔다. 엄마에게만 통할 신경질을 더덕더덕  토요일이면 30분마다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과수원과 논밭을 보며 40분 달려 도착했다. 릴 정류장이 다음 순서가 되면 고개부터  얼굴과 어깨 멀어졌다. 벌써 보일 리 없는 엄마를, 엄마일지 모를 멀리있는 희미점을 느라 눈에 힘 잔뜩 다.


점이 엄마인 걸 알아 엄마는 이미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 듯 항상 발견했다. 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아이를 낳고  수 있었다. 만고만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하굣길에서  구분될 때 정류장에서 손 흔들던 엄마가 떠올랐다. 들이 군대 가는 날 연병장을 가득 운 까만 점 중에 아들의 머리통을 찾았을 때 언제나 먼저 나를 알아보던 엄마가 겹쳤다.


엄마의 기다림은 시간과 날씨에 상관없었다. 버스를 놓쳐 늦은 날에도 우산을 써야 하는 날씨에도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손을 흔들다. 엄마를 만나면 빨랫감을 넣은 가방과 빈 반찬통이 든 비닐봉지를 건네고 응석과 짜증과 신경질을 나하나 떼어내 엄마에게 다. 나는 날씬해지고 엄마는 무거워졌다. 무거워진 엄마  에이스를 건넷다. 에이스는 그 시절 유일하게 사 먹는 과자였다. 학교엔 매점이 없고 시골 학교 기숙사 근처에도 가까운 가게가 없었다.


엄마는 마중나오는 길 에이스를 챙겨 왔다. 언젠가부터 에이스는 환대의 은유가 됐다. 돌아갈 유일한 고향, 엄마에게 왔다는 신호였다. 마는 오기 싫은 전학을 온 내게 미안해 하고 기숙사에서 살며 학교 다니는 나를 안됐 여겼다. 엄마 탓이 아니었는데 그런 엄마 맘을 이용해 책임을 지우고 투정을 부렸다. 엄마는 그런 내게 에이스를 건넸다. 에이스를 받고 그제야 웃는 날 보며 엄마는 조금 가벼워질 수 있었을까.


"엄마 여기는 특활시간에 밭에 풀 베러 가. 거기 아저씨가 나보고 와 저리 낫질을 몬하노 그랬어. 엄마 여기서는 잘 가 '가자' 라고 해. 마도 들어봤지? '가자''그쟈' 할 때 말이 참 이쁜 거 같애. 엄마 지연이한테 편지 안왔어? 내가 지난 주에 편지 보냈는데. 혜정이 보고싶다. 잘 지내겠지?"


에이스는 일주일 간 지속된 외로움과 긴장의 치유제였다. 나는 아껴 먹가슴의 응어리 하나씩 빼내듯 과자를 빼 먹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엄마에게 풀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내가  이야기를 상상했다. 집 근처에 가게라곤 없던 시골이었다. 금요이면 엄마는 에서 퇴근하는 길 구미에 있는 시장에 들렀을 것이다. 내일 오는 딸에게 먹일 을 생각하며 장을 봤 것이다. 동태탕을 할까, 닭볶음탕이 나을까. 이번 주엔 이 무치고 어묵조림 해서 보내야지. 기숙사에 보낼 반찬거리를 사고 가게에 들어갔을 것이다. 에이스를 집어 들며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버스 유리에 머리를 대고 피곤한 엄마가 존다. 엄마 손에 꼭 쥔 비닐봉지 안에는 어묵과 에이스가 들어 있다. 토요일이 되면 여러 번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고 밭을 지나 신작로를 걸어 버스 정류장 왔을 것이다. 우산을 쓰고 바람을 맞으며 눈을 터 엄 손 에이스가 들려 있다. 없 것이 너무 많던 우리 엄마는 런데도 주기만 하던 엄마는 항상 나보다 먼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든다.

 

"엄마, 과자에 왜 구멍을 뚫어놨을까?"

무심코 에이스를 보며 물었던 말이었다.


"그거 터지지 말라고 그랬겠지. 바삭바삭하라고. 그냥 구우면 모양이 이상해지니까."


엄마를 생각하면 맘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 이유를 알겠다. 마 생각에 풀어 터지면 안 되니까 이상해지지 라고 그리움이 박혀 구멍나는 모양이다. 철없던 시절의 투정을 사과하고 싶어도 이젠 만날 수 없는 엄마를 그리워한다. 혼자 조용히 '그때 생각나? 엄마.' 하고나면 맘에 물기가 차 오른다. 그리움의 구멍이 난 마음은 울어도 터지지 않을. 엄마가 건네주던 에이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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