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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Jul 12. 2023

오십, 쓰기 좋은 나이



나는 올해 52입니다. 1월 1일에 53세가 됐구나 했는데 나이 세는 방법이 바뀌어 도로 52세가 되었습니다. 6개월을 더 살고도 한 살이 어려졌는데 그렇다 젊어졌는가 하면 그렇진 않습니다. 게도요.


고등학교 시절 경험했던 서머타임이 생각니다. 가 일찍 뜨는 여름, 한 시간 앞 시간을 습니다. 어제까지 새벽 6시던 시간이 오늘부터 아침 7시가 습니다. 바뀐 시간에 적응하는 동안 편한 일이 많았습니다. 온 국민이 시계를 다시 맞춰야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시작해야 하는 아침이 피곤했습다.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시간은 왜곡과 술수를 모르는 정직함을 지녔지만 시간의 이름은 바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이는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시간에 붙이는 이름입니다. 십진법을 사용하는 우리는 십 단위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열 살 되던  빠가 빨간 가죽 손목시계를 로 주셨습니다. 시간을 아끼고 잘 사용하라는 의미였죠. 스무 살 생일사촌언니 칵테일을 마셨습니다. 처음 마신 술이었고 로션 맛이 났습니다. 칵테일 이름이 야했어요. '키스 오브 파이어'. 반 잔도 안 마셨는데 얼굴이 달아오르고 머리가 아팠습니다. 바람 쐬면 술이 깬다는 말에 밖으로 나갔는데 발이 밑으로 푹푹 꺼지고 누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다리가 무거웠습니다. 겨울 밤 바람이 차더라고요. 다음 날 술병에 감기까지 겹쳐 열이 올랐습니다. 스물은 그렇게 아프고 뜨겁게 시작됐습니다.

 

서른은 둘째를 낳고 육아에 지쳐 있을 때 맞았습니다.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 세'를 고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필사하며 우울해했습니다. 잔치가 끝난 허허로움에 김광석의 '서른 즈음'을 들으면 눈물이 났습니다.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이 온다"라고 했는 그렇다면 어떻게 란 말인가 답답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마흔은 오히려 쉬웠습니다. 불안과 설움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애들 뒷바라지하고 엄마 간병하며 일하느라 무척 바빴습니다. 벌써 마흔인가 때때로 놀라고 생각보다 이룬 게 없어 허했지만 꿈이 줄어든만큼 세상살이가 편한 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흔을 넘고 보니 한 살 두 살 먹는게 예사롭지 않더군요. 마흔의 한 살은 이십대의 한 살, 서른의 한 살과는 다른 무게감이었습니다.


마흔일곱인가 여덟이 되고나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몇 년 지나면 오십이니. 민등록 나이와 머릿속 나이는 불일치하지만 오십만큼 편차 큰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즈음 시작된 갱년기 증상 한몫했을 겁니다. 사춘기는 사뿐사뿐 다가왔는데 갱년기는 쿵쾅거리며 오더군요. 심장이 빠르게 뛰고 등에서부터 시작된 열감이 온몸에 땀을 내고 머리카락은 단백질을 뺏겨 거칠어지고 기분다락과 나락을 오갔습니다.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모르는 것은 텍스트로 익히는 편이 나은 사람이라 책부터 찾아봤습니다. '어쩌다 보니 50살이네요'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를 읽고 유튜브도 봤습니다. '오십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 '행복한 오십 대를 위하여'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은지 추천 영상이 많았습니다.


책에서도 유튜브에서도 예쁘게 나이 들려면, 노후에 넉넉하려면, 나이 들어서도 자녀와 잘 지내려면,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속엔 나이 들면 이쁘지 않고 노후는 넉넉하기 어렵고 늙으면 무시당하기 쉽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모두들 오십은 육십의 통로이니 준비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확인했습니다. 오십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 늙음에 대한 혐오를요.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오십이 두려웠겠죠. 이십 대는 삼십 대를 위해, 사십 대는 오십 대를 위해 열심히 살라고 하더니 오십 역시 육십을 대비해야 한다면 영화 '우리들'에서 윤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럼 언제 놀아.'


육십을 바라보며 준비하라 했지만 어쩐지 나는 살아온 오십년을 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사회가 부여한 나이라는 시간의 이름에 나만의 이름을 붙여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경험은 철저히 정치적'이라 선택된 것만 기억하고 왜곡되거나 훼손된 채 부유하지만 오십년 넘게 살며 알게 된 것은 삶은 기쁨만 있지 않고 슬픔만 있지 않으며 잊히지 않을 것 같은 행복과 절망도 희미하게 잊힌다는 사실입니다. 더 잊기 전에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수하고 실패했지만 돌아보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던 돌부리들과 작고 사소하지만 나를 위로하던 추억들을 회고고 싶었습니다.


오십 살아온 시간을 돌아볼 적당한 나이란 생각이 듭니다. 기억을 소환하고 복기하며 어떤 날엔 울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었지만 시간을 돌아본다는 것은 아픈 이마 위에 놓인 착한 물수건처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고 진 기억을 풀어내고 고마운 이들에게 인사하고 살아온 시간을 원경에서 바라보며 그때와 다른 해석을 해 봅니. 지난 시간에 다정하게 굴고나니 이제는 조금 느긋하게 나이들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듭니다. 삶이 부끄럽지 않다면 나이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니까요. 오십, 쓰기 좋은 나이 아닙니까. '옛날은 가는 게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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