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 들어선 시간은 오후 2시쯤이었다. 아침 9시 부산에서 출발해 함안 휴게소에 잠시 들르고 내처 달린 길이었다. 사진에서 본 사찰은 산 안에 들어앉은 형상이었는데 내려보니 오히려 입구 같아이상했다. 커다란 현판이 걸린 문을 통과하고서야이유를 알았다. 등산하듯 오르막길이108 계단과 어우러져 높고 길게 이어졌다. 절은 108 계단을 올라야 닿을 수 있었다.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해남군 송지면 달마산 미황사였다.
혼자 여행을 가려는데 조용하고 안전한 곳이있을까 물었을 때 친구는 주저 없이 미황사를 꼽았다. 이미 세 번이나 다녀왔다는 그네 말로는마지막으로 다녀온 게 십 년 전이지만풍경이 고요하고 절세가 아늑하여갔던 절 중 가장 마음에남는다 했다.
"그런데 넌절에 가 본 적 없잖아. 꼭 혼자 가야 하는 게 아니면 같이 갈까?"
그렇게 여자 셋이 7월 마지막 주말 미황사로 떠났다.
여름휴가는 매년 비슷했다. 가족 여행을 가거나 일정을 맞추지 못하면 집에서 쉬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건 의미가 있지만 꿈꾸는 휴가는 아니었다. 엄마라는 위치는 사 먹든 해 먹든 끼니마다먹을 걸 신경 써야 하고 아이들이 어리면 더 힘들지만 다 커도챙길 일이 생긴다. 유적지를 돌아보거나 추억을 남길 만한 일을 찾아야 하고 여행 온 것을 입증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돌아다니느라 느긋하게 일정을 잡아도 피곤했다.
7월은 주말까지 일하고 분주했다. 그래선지 이번 휴가는 고요하게 보내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속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밥과 추억에서 해방되어 보내야지 작정했다. 해남에 있다는 미황사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라던 것과맞아 보였다. 해남은 글로만 아는 곳이라 직접 가면 글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일 것 같았고 사는 곳에멀었고 그래서 좋았다. 미황사라는 낯선 공간이 건네줄 정서가 가기 전부터 차분히 기대됐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편에서 유홍준은 미황사를 이렇게 소개한다.
"땅끝으로 가는 들판을 가로지르다 보면 마치 공룡의 등뼈 같은 달마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정상 가까이에는 고색창연한 미황사라는 아름다운 절이 있다."
오래전 미황사는 대웅전과 세심당, 요사채, 공양간뿐이던 단출한 절이었다. 이후 남도 템플 스테이 명소로 각광을 받으며 규모가 커졌다.
대웅전 천일 보수공사 중이라 템플 스테이는 운영되지 않아공양시간 외에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은없었다.나는 둘째 날 저녁 예불에만 참석했는데 하루새 얼굴을 익힌 다섯 명이 같이 갔다.
예불에 들어가기 전 스님께서 우리에게 범종을 치게 하셨다. 몸집에 몇 배나 되는 종을 치고 합장한 채 종 주위를 돌았다. 산은 참선하듯 고요히 소리를 받고 넓게 울렸다. 산에 다녀온 소리가 산의 기를 담은 채 온몸으로 스며들었다.예불은 낯설었지만 경건했고 여러 번 무릎 꿇고 절하는 행위가 어느새 마음을 겸허하게 만들었다.
숙소인 세심당은 30년 된 전각이다. 특색 없는 한옥이지만 넓은 쪽마루가 보자마자 맘에 들었다. 광 바랜 마루는 색이 온화하고 결이 부드러웠다.잠시 머무는 숱한 객들을 맞이한주인답게 침착하고 너그러운 자태였다. 세심당에 걸린 현판 '미수'가추사 김정희 글씨라 하여뒤로 목을 꺾고 오래 올려봤다.
방은 소박하고 정갈했다.절에 묵기는 처음이고 여름산도 기억에서멀어벌레와 더위에 노출된 작정을 단단히 하고 왔는데 종무소와 공양간에는 에어컨이 있고 방에는 구형 선풍기 한 대가 놓여 있었다.절 모기는순해 모기향만으로도 충분했고미황사를 둘러싼 달마산바람이 수시로 내려와 가만히 있으면 덥지 않았다.
조끼와 회색 바지를 받았다. 단정히 개켜진 옷이정갈했다.솔기가 낡은 것이 맘에 들어 쓰다듬었다. 옷을 갈아입으려 입고 온 옷을 벗었다. 세상의 옷을 벗으며 내게 붙어 있던여러개의 명사를떼어냈다.허물처럼 벗겨진 모습을 보며 떠나고 싶던 것과 내려놓고 싶은 것들을 떠올렸다.
몸에 두르는 천 조각을 바꾸는 행위가 마치 해방의 관례처럼 느껴졌다.벗은 옷을 하나로 대충 뭉쳐 가방에 쑤셔 넣었다.돌아오는 날 아침 일찍도솔암에 올랐을 때 산에서 마주친 사람이 우릴 보고 합장했는데 아마 승복색의 조끼와 바지 때문이었을 것이다.옷이 잠시 나를 비구니로 보이게 한 모양이다.
세심당 맞은편은 공양간인데 사이에는 풀 자란 작은 마당이 있었다. 주지스님께서 엊그제장수풍뎅이가 밟혀 죽었다며마당을가로지르지마라 당부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새삼 이곳이 절이는구나깨달았다.마당은 미황사 개 아미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그곳에 누워 뒹구는 아미를 보는 것이 지내는 동안 작은 기쁨이었다.
첫날 저녁 공양을 마치고 전각을 한 바퀴둘러 돌았다. 전각과 전각이 멀지 않아 작고 아늑한 기운이었다.곳곳에 묵언표식이 보였는데 알고 보니 미황사가 묵언수행으로 이름난 곳이라 한다.나는 미황사에 대한 전설과 낙조에 관한 것만 알고 있었다.미황사의 낙조는 두어 번 글로만 읽었는데 감탄이 일색이었다.
종무소에서조차 낙조 시간과 잘 보인다는 장소까지 알려줬다.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인 응진당과 비슷한 높이에 있는 탑이었는데 우리는 일찌감치 그곳으로 가 낙조를 기다렸다. 해가 지려면 시간이 남아 탑을 돌고 근처전각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주위가 고요하고 평화롭고 여름해가 저녁으로 가며 산과 어우러져 내는 기운이산뜻했다. 돌담의 정취와 멀리 산 아래 풍경이 한산하고 잔잔해 기다리며 구경할 만 했다.
여름 해는 높이 떠 좀처럼 내려올 기색이 없어 보이더니 불현듯눈앞으로 들어왔다. 해는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며 하늘을 붉은빛으로 물들이고 이내 구름을 만나 오묘한 빛을 발했다. 동그란 모양을 짱짱하게 유지하던 해가조금씩 모양이 풀어지더니 가는 눈을 뜨며바다와 가까워졌다.바다가 먼저 붉게 변하고곧 주위 섬들마저불이 번진듯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아, 이래서 낙조라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노을이 수채화라면 낙조는 살아있는 덩어리였다.
글로만 읽은 미황사의 낙조는 상상보다 힘차고 붉고 깊었다.장엄한 고요 속에 지는 석양의 숙연함은 서쪽으로 고개를 향한 채 웅장한 자연의 음악 속에 온 몸을 담근 기분이었다. 해는 서두르는 법 없이느리게 천천히 오래 걸려 저물었다. 점차 다른 빛으로 변하는 하늘의 장관을 보고 있노라니 어디선가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어란포에서 불어오는 서풍이려나. 낙조와 바람이 구분되지 않는 한 쌍이 되어 저녁을 물들이고 주위를 가득 메웠다.
낙조를 보고 돌아와 세심당 마루에 오래 앉아 있었다. 이미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엔 별이 반짝였다. 일찍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가져온 두 권의 책은 꺼내지도 않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이곳에서의 어둠은 전기불로 밝혀야 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순리로 느껴졌다.
밤은 어둡고 고요했지만 살아 움직였다. 바람이 제 것인 양 방을 통과하고 산 바람은 낮과 밤의 격이 달라낮엔 점잖던 것이 밤엔 거칠었다. 새벽엔 이불을 덮어야 할 만큼 차가웠고 열어놓은 덧창이 벼락 치는 소리를 내며 창틀에 부딪쳐 잠에서 깨곤 했다. 정막하던 산이 밤이 되자 가지를 흔들며 경내를 울렸다.
쉽게 잠들고 편안했으나 이상하게도 밤새 산이 깨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새벽 5시 도량석 목탁소리가 울리자 산은 다시 고요해졌다.조용히 침구를 정리하고 아침 예불가는 친구의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감은채 그대로 누워 있었다. 다시 바람이 창으로 들어와 문지방을 넘었다. 곧 해가 뜰 것이다.해방을 알리는 신호처럼 범종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