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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Nov 29. 2023

출첵합니다



컴퓨터를 게된 건 라디오 덕분이었다. 돌 안된 둘째를 안고 라디오를 끼고 살 때였다. '이문세 두 시의 데이트'에서 밀레니엄을 맞아 새로운 코너가 생겼다며 홍보했다. 모임을 만들어 노래를 부르는데 친구든 가족이든 회사 동료든 상관없다고 했다. 3월이었다. 5월에 시작한다는 말을 듣는데 평소라면 지나쳤을 소식이 이상하게 마음을 끌었다.

아이들이 또래라 친하게 지내는 엄마들이 있었다. 큰 애 어린이집 차 태워 보내고 믹스커피를 같이 마시며 말을 꺼냈다.


"우리 한 번 해볼까. 승현이 엄마는 피아노를 전공했으니까 반주하고 재홍이 엄마는 노래를 잘 부르잖아. 혜진이 엄마, 자기는 말솜씨가 좋으니까 전화 연결했을 때 이문세 씨랑 인터뷰하면 되겠네. 나? 나는 매니저인 걸로."

처음엔 다들 농담으로 생각했다. 재밌겠네. 재미는 무슨 부끄럽지. 그런 걸 어떻게 해. 못할 건 또 뭐 있어. 며칠을 얘깃거리로 삼았다. 그러다 한번 해볼까 하게 됐고 '그래해보자.'가 됐다. 5월이라 한스밴드의 '선생님 사랑해요'를 부르기로 했다. 피아노가 있는 승현이네 집에서 연습했다. 튀어보자고 우리만의 로고송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진심이었네. 재미 삼아 추억 삼아해 보자 했지만 사실 진심이었던 우리는 주 우승에 이어 월 우승까지 했다. (글을 쓰며 노래를 찾아들었는데 모르는 노래라 당황했다. 뭐지. 노래도 잊어버릴 수 있다니. 내 기억력의 한계가 놀랍다.)

상품으로 컴퓨터를 받았다. 당시 조립 컴퓨터가 60만 원쯤 했으니 고가의 상품이었다. 문제는 우리는 넷인데 컴퓨터는 한 대라는 사실이었다. 이런 센스 없는 선물 같으니라고. 한 사람은 모니터 갖고 다른 사람은 자판 떼가란 말인가. 그때는 당근마켓도 없던 때라 어디 내놓고 팔기도 마땅치 않았다. 재홍이네는 컴퓨터가 있었고 의논 끝에 내가 갖기로 했다. (매니저라서?) 세 사람에게는 각각 15만 원씩 주기로 했다.

천리안으로 접속할 때였다. 가정용 컴퓨터가 늘어나는 추세였지만 흔하진 않았다. 학교 다닐 때 연구실에서 486 컴퓨터로 리포터 몇 번 쓴 거 외에 만져본 적 없는 기계였다. 메일주소가 뭔지 아이디는 어떻게 만드는 지조차 몰랐다. 전원버튼을 누르고 전화선을 연결해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다. 주워들은 건 있어  www.야후에 가고 www.다음에 들어갔다.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들었는데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당시 인기 많던 가수 이름을 검색창에 적었다. 아래로 주르륵 까페란게 나왔다. 카페라니 이름을 잘도 지었네 생각하며 그중 한 곳에 들어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라디오 덕분에 받은 선물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라디오를 끄고 대신 컴퓨터를 켜게 됐다. 남편은 요즘 채팅 사고가 많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불륜채팅을 말한 것 같았지만 어리한 나는 그보단 다단계에 끌려갈지 모른단 생각에 채팅방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카페엔 등록회원수도 보이고 게시판에 글이 있긴 했지만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글쓰기 버튼이 보였지만 적을 말도 없었다. 그러다 '출첵합니다'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출첵이 뭘까 궁금해하며 클릭했다. 아, 출석체크. 삼일정도 분위기를 엿보다 조심스럽게 글을 썼다.

'출첵합니다.'

​카페에 쓴 첫 글이었다. 부끄러웠다. 겨우 다섯 글자 제목 내용 동일하게 적어놓고 등록을 누르는데 용기가 필요했다. 너 누구냐 할까 겁났고 이게 맞나 싶어 소심해졌다. 다음날 보니 제목 옆에 (1)이 적혀 있었다. 그때는 댓글이란 말 대신 리플이라 불렀다. 내 글에 리플이 달렸다고? 어머, 웬일. 신기했다. 반가워 글을 열었다. 댓글엔 '방가방가'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날부터 매일 '출첵합니다'라고 썼다. 내용도 없고 그게 다였다. 아무도 출석하라 말하지 않았지만 알아서 출석하고 아무도 체크 안 해주니 내가 내 출석 체크했다. 누군가 읽어 조회수가 10이 넘으면 가슴이 뛰었다. 열 명이나 읽었다고? 누가 읽었을까. 글 아래로 '방가방가' 리플이 달리면 기뻤다. '안녕하세요.'가 적힌 날엔 수지맞은 기분이었다. 몇 자 안 되는 댓글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 나와 같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내 글을 읽고 인사를 건다. 신비로웠다.

같이 있지 않지만 같이 있는 사이. 만나지 않지만 만나는 관계. 이 오묘한 기분이 자꾸 쓰게 만들었다. 출첵합니다는 점점 긴 문장으로 바뀌었다. 날씨를 언급하고 밥하고 청소하는 이야기 적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감상하고 어떤 날엔 기쁨을 혹은 우울을 얘기했다. 글은 점점 내밀해졌다. 라디오를 들으며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기분이었다면 컴퓨터에 글을 쓰는 일은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마음을 보이는 느낌이었다.

밖에 나가야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글로도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글로 만난 사이는 아이 친구 엄마와 다르고 일로 알게 된 동료와 달랐다. 글을 쓰면 내면이 정리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살면서 만난 고통을 쓰다 보면 슬픔은 사그라들고 극복하지 못할 고난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살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며 글에서 멀어졌다. 엄마의 병을 글로 쓰는 일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슬픔만이 가득한 글이 보기 싫었다.

몇 년 전 글쓰기 모임에서 한 글벗이 자신의 성폭행 피해를 썼다. 그 글을 읽은 우리는 놀라고 분노하고 조심스러워하고 걱정했지만 글벗이 말했다. 자신은 이 얘기를 해바라기 센터에서 경찰서에서 상담소에서 법원에서 검사에게 변호사에게 친구에게 가족에게 셀 수 없이 여러 번 얘기하고 반복해서 썼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젠 정말 아무렇지 않다고 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글쓰기가 권력임을 깨달았다. 어떤 고통도 쓰는 행위를 통해 극복하고 당당해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엄마 얘기만 하면 나오던 울음이 글로 진정됐을 때 오히려 쓰지 못하던 시간 써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늦었지만 썼고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나를 잠식하지 않는다. 고통을 적는 건 전시가 아니다. 고통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침몰하지 않는다. 언어화되지 않는 고통은 심화되지만 솔직하게 문자로 써낼 때 문제는 객관화되고 이겨낼 용기가 생긴다. 삶의 주도권은 도를 깨쳐 긍정하라는 뜻이 아니라 해석할 권리와 벗어날 용기다. 쓴다는 것은 권리와 용기를 준다. 쓰는 자가 주도권을 갖는.

매일 쓰기로 작정한 뒤론 기분 나쁜 일을 만나면 글감을 찾았다 생각한다. 그 일로 상한 것이 진정 무엇인지 글을 쓰며 알아챈다. 쓰다 보면 그 무엇도 나를 해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괜찮다고 글이 나를 보호한다.

"내 후회가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내 절망이 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되고 내 뜨거운 눈물에 춥고 쓸쓸한 누군가가 밥을 말아먹는다는 걸 아는 것, 글이 주는 위안일 것이다." (책 <활활발발>)

그러니 슬픔도 실패도 아픔도 절망도 쓴다. 일기 같은 글을 써서 뭐 하냐 물었을 때 누군가 말했다. 날 위해 쓴 글은 가장 먼저 나를 구원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뻗어나가 타자를 어루만진다고.​ 자기 치유가 끝나야 자기 치유를 넘어선 글을 쓸 수 있다고.


오늘도 출첵한다. 내 맘 속 전원을 켜고 글쓰기 버튼을 누른다. 출첵합니다. 다섯 글자를 적는다. 울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며 손 내밀 때 누군가 그 손을 잡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가장 적극적이고 아름다운 일. 우리는 그렇게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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