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의 끝을 잡고

겨울을 걷는다

by moeun

'푸르다'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요즘이다. 하늘도 푸르고, 꽃과 작별 인사한 나무들도 떠나보낸 꽃 대신 푸르름을 입었다. 다른 색깔이지만 그냥 푸르다. 그렇게 봄이 끝났음을 알리고 있다.


봄을 돌아보면 여전히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날들이었다. 깨어날 수도 없었고 깨어나고 싶지 않아 눈을 꼭 감았다. 괜찮아진 줄 알고 일어나 걸으려고 할 때면, 오래 움직이지 않은 다리에 쥐가 나 제대로 걷지 못하고 다시 눕기를 반복했다.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 봄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대처해?"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모든 것을 차단한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 좋아한다는 그 감정 자체도 차단한다. 마치 박제된 동물처럼. 지하실이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모든 것이 격리된 지하실에 갇혀서 끝도 없을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런데 이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법 같다. 외부 환경에 지쳤으니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안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을 해나가는 것 같다. 지하실에서 서서히 탈출해 나가는 것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지하실에서 탈출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지하실에 한 번 내려가면 올라올 생각을 못한다. 방법을 모른다. 지하실로 추락할 때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그 엘리베이터에는 올라가는 버튼이 없다. 항상 한번 내려간 지하실은 올라오지를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갑작스러운 추락은 언제나 적응하기 어렵다. 지하실의 숨 막히는 공기에 대개 처음에는 누워 지낸다. 그러다가 점차 기압이 익숙해지고, 숨도 쉴 만하면 그제야 지하실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그것이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지하실 자체를 벗어나는 것이 아닌 지하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숨을 쉬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도움이 항상 있다. 비록 지하실에 가두어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숨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발치에서라도 응원하고 기다리는 마음들이 있다. 그 마음들이 돌고 돌아 닿을 때마다 지하실에도 온기가 돈다.


그렇게 이 봄의 끝에서 겨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확신은 아니다. 걷다가 또다시 언제 넘어질지 모르니깐. 지하실의 어두컴컴한 바닥에 무엇이 있어 걸려 넘어질지 모르니깐. 다만 그래도 계절이 바뀌는 이 시기에 다행히 걸어 다닐 수는 있어서 견딜만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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