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성스러운 너와 나의 시간을 위해

1월1행 은 계속된다.

by 책닮녀

"엄마, 이제 우리 여행 그만 가면 안 돼?"


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순간 멈칫했다.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 번은 꼭 여행을 하자는 마음으로 캠핑이든 호캉스든 떠난다. 아이들을 위해 또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떠났던 여행, 앞으로 떠날 여행에 자부심을 느끼는 내게 미간에 잔뜩 힘을 준채 내뱉은 딸의 말은 살짝 충격이었다.



"왜? 너는 여행이 싫어?"

"아니. 그게 아니라 여행 가는 바람에 피아노 학원 숙제가 6장이나 된단 말이야. 선생님도 너무 힘드실 것 같아. 나 때문에."


2월에 치를 피아노 콩쿨 때문에, 여행 성수기인 겨울방학 때는 꼼짝 마라 하고 동네에만 머무를 예정이다. 때문에 지난주 캠핑에 이어 이번 주 여행을 계획했다. 타이트한 일정 때문에 1박 2일이라는 내 딴에는 아주 단출하고 간소한 여행을 앞두고 있을 뿐이다. 월요일 하루 일정을 빼는 스케줄이어서 아이들에게 크게 부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학교 일정으로 부득이하게 피아노를 결석하면서 공백이 더 길어진 것이다. 평소와는 다르게 콩쿨 준비로 매일 숙제가 있다 보니 아이에게도 선생님께도 조금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나는 물러날 수 없다.

나는 여행이 좋다. 가족이 함께 쌓는 추억이 좋다.

일상의 추억도 좋지만 새로운 곳에서 더 특별한 추억을 많이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 가족들과 여행한 추억이 별로 없다. 아빠는 개인택시를 운영하셨는데, 3일 일하고 하루 쉬고 또 3일 일하고 하루 쉬는 생활패턴이었다. 하루밖에 쉬지 않아 여행을 못 갔던 건 아니다. 개인택시는 말 그대로 아빠가 사장인 자영업으로, 수입이 없을 뿐 쉬어도 해고를 당하거나 눈치를 보는 일은 없다. 당시 아빠는 많은 시간을 운전을 하며 보냈기에 쉬는 날 만큼은 운전을 하고 싶지 않아 하셨다. 정말 하루 동안은 온전히 쉬기를 바라셨다. 때문에 멀리 나가본 적이 없었고, 언니나 나나 활동적이기보다는 집안에서 조용히 노는 스타일이라 가까이도 잘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살기 바빠서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당시에는 큰 불만이 없었는데 돌이켜 보니 이렇다 할 여행의 추억이 없다는 게 참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내가 꾸린 가정에서는 여행의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었다.



신랑도 나와 뜻이 같았다. 어릴 적 장사를 하시던 시부모님은 거의 쉬는 날 없이 365일 내내 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요즘이야 일요일이면 문을 닫는 가게가 많아졌지만, 옛날 시장 장사는 365일 언제나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꽤 커서부터 시장 전체가 문을 닫는 날을 정하고, 두 달에 한번 정도 쉬게 되었단다. 그때 온 가족이 놀러 가곤 했지만, 신랑의 기억엔 가족이 모두 함께한 순간이 조금 아쉬운 듯했다. 그래서인지 신랑도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저곳 다니고 싶어 했고, 덕분에 우리 가족은 매달 한 번의 여행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있다.



여러분이 명심해야 할 것은, 앞으로의 인생을 위하여 뭔가 훌륭한 추억, 특히 어린 시절 부모님 슬하에 있을 때 갖게 된 추억보다 더 숭고하고 강렬하고 건강하고 유익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의 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많이들 하지만, 바로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아름답고 성스러운 추억이야말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가장 훌륭한 교육이 될 겁니다.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민음사/p.581)




때로는 여행을 다녀오면 나 또한 피곤하고 힘에 부칠 때가 있다. 아이들도 매일 해야 하는 일을 미리 당겨서 해 놓거나 다녀와서 못한 부분을 채워야 하기에 빠듯하고 지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상황을 모두 감수하고서라도, 가족과 함께하는 추억은 그야말로 가장 훌륭한 인생의 밑거름이 될 거라 의심치 않는다. 꼭 여행을 가야만 추억이 남느냐고 혹자는 물을 수도 있을 테다. 추억을 만들고 시간을 공유하는 방법은 가족마다 각자 다르기에 나는 새로운 장소에서 함께 보고 먹고 즐기고 느끼는 것이 좋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추억을 차곡차곡 쌓고 싶다.



앞으로의 아이들의 생에 아름답고 성스러운 순간을 쥐어주기 위해,

그리고 어릴 적 채우지 못했던 아름답고 성스러운 추억을 메꾸고 싶은 나의 생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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