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시장에서 울다

『H마트에서 울다』를 읽고

by 책닮녀

『H마트에서 울다』를 읽으며 나의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가 돌아가신다면 나는 Y시장에서 울겠지? Y시장은 내가 어릴 적 엄마와 늘 가던 시장이다. 아직도 엄마는 Y시장 근처에 산다. Y시장에는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떡볶이, 순대, 어묵을 팔았다. 하지만 엄마는 내게 무엇을 먹을 거냐고 묻지 않고 항상 '물떡'을 사주셨다. 짭조름한 어묵국물에 간이 베여 말랑 말랑하고 따뜻하게 데워진 물떡이었다. 시장에 따라간 김에 얻어먹는 물떡은 참 맛있었다. 조금 더 크고 나서 물떡보다는 어묵이 어묵보다는 순대가 순대보다는 떡볶이가 더 맛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도 엄마는 내게 소화가 잘 되고 어린아이가 먹기 좋은 물떡을 사주셨다.



p.11 음식은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엄마는 겉보기엔 지독한 잔소리꾼이었지만-자신의 억지스러운 기대에 부응하도록 나를 끊임없이 몰아붙였던 탓에- 내 입맛에 꼭 맞춰 점심 도시락을 싸주거나 밥상을 차려줄 때만큼은 엄마가 나를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엄마의 도시락에는 정성스레 만들어진 반찬들이 많았다. 용가리나 스팸등 간단하게 데워서 싸줄 수 있는 반찬 말고, 그야말로 손이 많이 가는 정성이 들어간 반찬들이었다. 이를테면 손으로 한결 한결 찢어 만든 소고기 장조림이나, 한 장 한 장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만든 엄마표 김, 또는 가늘게 채 썬 감자에 햄도 가늘게 썰고 당근도 가늘게 썰어 기름에 푹 익을 때까지 볶은 감자볶음, 껍데기를 모두 일일이 벗겨내어 야들야들한 식감으로 버무린 고구마 줄기 무침 등이 주요 반찬이었다. 엄마의 사랑은 도시락 반찬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아침식사에서도 그랬다. 아침부터 생선을 튀기고 고기를 구웠고, 다음날은 양파를 넣어 달달하게 버무려진 소고기를 볶으며, 단짠의 환상적인 맛을 자랑하는 생선조림도 만들었다. 학교에 등교하며 오늘은 수제비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하교 후에는 커다란 밀가루 반죽이 냉장고에서 숨 쉬고 있었고, 비가 오니 찌짐(경상도식 부추전)이 먹고 싶다고 하면 Y시장에 가서 홍합과 조개와 오징어를 사 와서는 뚝딱하고 파전을 만들어 냈다.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면 지친 몸을 이끌고서라도 귀찮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해주었다. 그게 엄마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p.92 그렇게 콜레트 아주머니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니 엄마의 꿈이 궁금해졌다. 아무 목적도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가 갈수록 이상해 보이고 미심쩍고 심지어 반페미니스트로까지 보였다. 그때 나는 엄마 인생의 주축이던, 나를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엄마를 매도하기 바빴다.


엄마는 정말 열심히 돈을 벌었다. 언니와 내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원비의 액수는 커졌다. 가게에서 서빙을 하기도 하고, 직접 장사에 뛰어들기도 하고, 마트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하기도 했다. 엄마는 허리에 병이 들고 다리에는 피가 흐르는 길이 막히고 팔목이 시큰했지만 그렇게 번 돈으로 나의 학원비를 내고, 내가 편히 살기를 바라며, 내가 삶의 100프로라고 말했다. 그런 엄마를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런 거라 생각했을 뿐. 하지만 이제와 엄마가 되고 나니 그때의 엄마도 마음속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모두를 위해, 오로지 가정을 이루는 데에 온 힘을 기울였구나 하는 끄덕임을 이제야 한다. 지금의 나는 엄마처럼 오로지 가정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지 않다. 나의 꿈을 드러내며 조금씩 일을 벌이고 있지만, 두 가지 선택사항이 닥치면 나도 엄마처럼 반페미니스트가 되고 만다. 가정이 가장 먼저 나의 순위를 차지하고야 만다. 우리의 단란한 가정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꿈을 꾸고 일을 한다. 다만 엄마와 달라진 게 있다면 자식이 100프로는 아니라는 것뿐이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엄마의 꿈이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여군이 되고 싶었다는 대답을 들으며 엄마를 반페미니스트로 생각한 내가 한심했다. 조금 더 엄마를 들여다보면 보였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p.203 "괜찮아, 괜찮아"엄마가 말했다. 내게도 너무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 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 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엄마의 모성이, 엄마가 느꼈을 테지만 능숙하게 숨겼을 무진장한 공포를 제압해 버린 것이다. 엄마는 무슨 일이든 어찌어찌 잘 풀릴 거라고 내게 말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내게 너는 무슨 일이든 잘한다고 했다. 돌아보면 살면서 내가 그렇게 잘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다지 못하는 일도 없는 그냥 그저 그런 아이였지만 나는 내가 공부와 체육을 빼면 늘 잘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발표도 잘하는 줄 알고, 그림도 잘 그리는 줄 알고, 글도 잘 쓰는 줄 알고, 새로운 일도 척척 잘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엄마는 무슨 일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내게 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었다. 걱정되고 불안하고 어떤 선택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에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주 작고 작은 일 - 이를테면 나는 A가 더 나은 것 같은데 엄마는 어때? 하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고르는 일- 조차도 전화를 걸어 물어보면 -옷을 잘 골랐다며 안목이 높다며- 칭찬을 해 주었으니까. 나는 엄마의 그 한마디 덕분에 앞으로도 내가 잘하는 줄 알며 세상을 살아갈, 깨지지 않는 단단함을 가진 마음속의 꿀단지를 얻었다. 인생의 씁쓸함이 혀를 감싸고 온 몸을 적실 때마다, 엄마가 준 그 꿀단지에서 꿀 한숟가락을 가득 퍼서는 입안 가득 물고 있도록 해 주었다. 꿀의 향기와 온기가 온 몸으로 퍼지도록 해 주었다.





p.371 엄마는 나의 대리인이자 기록 보관소였다. 엄마는 내 존재와 성장 과정의 증거를 보존하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모습을 순간순간 포착하고, 내 기록과 소유물을 하나하나 다 보관해 두면서. 엄마는 나의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때, 결실을 맺지 못한 열망, 처음으로 읽은 책. 나의 모든 개성이 생겨난 과정, 온갖 불안과 작은 승리. 엄마는 비할 데 없는 관심으로 지칠 줄 모르고 헌신하면서 나를 지켜보았다.


나는 동물을 무서워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새의 부리와 다리는 나를 공포로 몰아넣는 형상이다. 학창 시절 마주한 비둘기 떼를 보고 왔던 길을 돌아 더 먼 길로 학교로 간 적도 있었다. 그런 내가 새를 집에서 키웠다는 사실을 엄마를 통해 들었다. 어릴 적 나는 동물을 무척이나 키우고 싶어 했고, 비염이 있었던 터라 의견을 조율하여 새를 키우게 되었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예전 우리가 살던 집의 한편에 새장이 걸려있던 장면이 번뜩 지나갔다. 나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엄마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어난 때는 들어도 들어도 까먹는데 엄마는 기억한다. 결실을 맺지 못한 나의 열망은 나는 묻고 살다 보니 흐려졌는데 엄마는 아직도 '엄마가 돈이 많았다면, 든든한 빽이 있었다면' 하며 잊지 못하고 눈시울을 적신다. 나의 개성이 생겨난 '젝키 해체 콘서트 가출사건'을 회자하며 엄마는 즐거워한다. 고등학교, 대학교 방송국활동으로 만들었던 작은 승리의 순간에는 엄마의 축하가 깃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미셸은 자신과의 시간을 길게 허락하지 않은 엄마를 그리며 한국 음식을 만든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엄마를 느끼고 사랑을 느끼고 한국을 느낀다. 그렇게 자신을 치유해 간다. 엄마가 떠난 후 나는 무엇을 할까? 엄마가 좋아하던 나물을 무치고 비빔밥을 먹으며, 엄마를 기억하고 나를 보듬을까? 아니면 다음생에서는 뮤지컬 배우로 다양한 삶을 살고 싶다는 엄마의 바람을 새기며, 온갖 뮤지컬을 섭렵하며 엄마를 기억할까? 또 아니면 경상도 사투리가 잔뜩 나오는 영화와 책을 찾아보며, 엄마가 나를 향해 던지던 구수하고 다정한 말들을 곱씹으며 살아갈까? 엄마가 돌아가시면 Y시장에 가서 한번 즘은 울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멀고 또 먼 훗날이 되기를 바라며, 지금은 내 곁에 있는 엄마의 사랑을 더 많이 느끼고 싶다. 엄마에게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엄마의 꿈을 더 자세히 바라보고, 엄마에게 힘을 주는 세상의 유일한 사람, 엄마의 순간을 포착하며 지켜보는 그런 딸이 되고 싶다.




너무 멀리 있지만 마음만은 당신 곁에 늘 있다는 걸

엄마는 이미 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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