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표현한다는 것

뜨거운 핫초코 한 잔을 건네는 그런 것

by 책닮녀

같은 아파트에 살던 아는 언니가 있다. 언니는 몇 해 전, 커다란 신호등을 두 번 정도 건너면 위치하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큰 아이 유치원 시절 친해진 언니는 나보다 한 살이 많다. 같은 아파트에 있을 때에도 워킹맘이라 만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분리수거장에서 아파트 도서관에서 또 밤늦게 주차를 하며 얼굴을 보곤 했다. 가끔 시댁에서 받은 서로의 식재료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이사를 가게 되면서 마주치는 일이 없어졌고, 코로나로 인해 가끔 톡에서 연락만 할 뿐 얼굴보기는 더 어려웠다. 그러던 중 몇 달 전부터,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있는 학원에 아이를 보내게 되면서 다시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저녁에 집에 있어?"

"6시 즈음, 사거리에 애들 픽업이요. 그때 나갔다 들어오면 집에 쭈욱 있을 예정이요."


답을 하고는 언니와 차 한잔하고 싶어 먼저 제안해 봤지만, 회의가 있다며 저녁에 가겠다고만 했다. 아이들이 하원한 후에는 늘 바빠지는 게 나의 일상이라 차 한잔은 어렵겠구나 하고 맘을 접었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러 나가려던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어디야? 밖이야?"

"아직요. 이제 나가려고요."

그러자 언니는 집 앞이라며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자 곧 언니가 들어왔다. 그러고는 비닐봉지 하나를 건넸다. 불투명한 봉지 때문에 내용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한 번에 알아차리지는 못했지만 고소한 냄새가 나는 걸 보니 빵 같았다.


"엥? 갑자기 이게 뭐예요?"

"크리스마스 잘 지내라고."


특별한 날에만 하는 게 선물이 아니었던가.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는 것이 크리스마스 아니었던가. 언니는 아무렇지 않게 크리스마스 잘 보내라며 인사를 했다. 언니가 좀 멋있었다. 어느덧 비대면 사회에 익숙해져 선물마저도 쿠폰으로 보내고 쿠폰으로 받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편하기도 하고 실용적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 선물마저도 좋아하는 책을 고르고 쿠폰을 보내면 주소만 입력하면 받는 사람에게 배송되는 최첨단 시스템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언니의 선물을 받아 들고 알았다. 역시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힘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직접 선물을 건네고 건네받으면서 전해지는 온정은 차갑게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다 못해 뜨겁게 만든다는 것을.



돌이켜 보니 언니는 뜻밖의 선물을 준 적이 또 있었다. 둘째가 학교에 들어갈 때, 학용품에 아이의 이름을 새겨 넣어 선물해 주었다. 미리 인터넷에 신청해야 하는 선물이라 번거로울 수도 있는데, 마음과 몸을 움직여 선물해 주었다. 얼마 전 아이들과 마주쳤을 때도 바나나우유 세트를 주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 내가 바나나 우유를 좋아한다는 게 떠올라 샀다고 했다. 엄청 추운 날이라 얼굴이 굳어 웃음이 잘 나오지 않았는데, 언니 덕분에 나도 아이들도 활짝 웃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커다란 신호등을 두 개 건너고 작은 신호등은 여러 개 건너, 추운 날씨에도 우리 집 앞까지 와서 빵을 건네고 갔다. 그것도 사악한 가격 때문에 선뜻 사 먹지 않았던 독일식 전통 케이크 슈톨렌을 선물로 주고 갔다. 며칠 전 신랑에게 '저건 뭐 그렇게 맛있길래 비싼 거야' 하고 말했던 케이크인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했다.



"언니, 이게 뭐예요? 완전 감동"

"우리 가족 꺼 사면서 하나 더 시켜봤어. 연말 잘 보내."


언니의 대답은 선물보다 더 특별했다. 나를 가족처럼 다정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아 뭉클했다. 오다가 주웠다며 친절하지 않음을 가장한 친절처럼, 언니의 아무렇지 않은 시크한 저 멘트가 조금 쓸쓸하고 헛헛한 날이면 꺼내어 데워 먹고 싶은 핫초코처럼 포근하고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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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에게 받고 나서야 알았다. 누군가가 베풀어 주는 작은 정성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언니가 내게 준 만큼 나도 돌려주고 싶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나누고 돌려주고 싶지만, 내가 나누면 언니는 또 더 많은 것을 나눌 테니, 받은 만큼이라도 주고 싶다. 나도 언니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내 주변에 있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소소한 선물을 준비해 본다. 마음을 꺼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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