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닮녀 Jun 19. 2024

쓰는 행복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피곤에 지친 얼굴에 미소를 퍼트리며 말했다.

"나 키보드 샀어. 스트레스받을 때는 쓰는 게 최고지."

30만 원이나 하는 비싼 키보드를 꼭 사야 하냐는 나와의 의견 충돌에 눈치 보는 척하더니 허락보다는 통보가 지름길이라는 남편들의 국룰에 따라 질렀다는 통보를 했다. 무릎까지 내려와 있던 다크서클은 쓰는 행복에 겨워 그나마 배꼽까지 올라와 있었다. 뭐라 한마디 하려다가 이미 구매한 것, 취소하게 할 것도 아니고, 또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하며 사는 내 성향을 십분 발휘하여 그냥 웃고 말았다.



방에서 숙제를 하던 아들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엄마, 나 이거 다 썼어."

아이의 손에는 작은 몽당연필이 들려있었다. 맨날 종이를 흥청망청 쓰고 연필도 이것저것 쓰고 새것이라면 일단 쓰고 보는 아이에게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며 연필이 작아질 때까지 쓰는 거라고 잔소리를 해댔던 나다. 그런 내 눈앞에 새끼손가락보다 작아진 연필을 들이밀며 아들은 칭찬을 갈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역시 북극곰을 사랑하는 아이라며 칭찬을 잔뜩 해주었다.



띠링, 카드가 결제되었다는 알람이 떴다. 딸아이가 가지고 있는 내 카드가 결제된 거였다. 잠시 후 딸이 들어오며 말했다.

"엄마, 결혼기념일 선물. 내가 신경 좀 썼지."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과 과자가 뿅 눈앞에 나타났다. 맥주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맥주를 사고 싶었지만 아직 미성년자라 맥주를 살 수 없었다고. 대신에 안주를 샀다며 내게 활짝 웃는 얼굴로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편지도 썼지."

결혼한 지 10년이 훌쩍 넘으니 기념일이지만 나도 남편도 별 감흥 없이 지나가곤 하는데, 아이들이 쓴 편지를 읽으며 마음이 뭉클했다. 아이들에겐 자신이 탄생하게 된 엄마, 아빠의 결혼이 특별하겠지. 그러고 보니 꽤 특별하고도 행복한 날이 맞다. 아이들이 쓴 마음 덕분에 내가 이 남자랑 계속 살아야겠구나 열심히 다짐을 했다.






사람들은 쓰면 행복해진다. 스트레스받을 때 쇼핑하며 돈을 쓰면 기분이 좋아지고, 무언가를 끝까지 쓰면 뿌듯해지고, 누군가를 위해 신경 쓰고 마음을 쓰고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런 글을 쓰는 행복. 남편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기록하는 일, 아들이 쑥쑥 자라나 성장하는 순간을 글로 담아두는 일, 딸의 사랑스러운 마음을 남겨두는 일, 나는 이런 글쓰기를 통해 쓰는 행복을 느낀다. 많고 많은 쓰는 행복 중에서 돈도 덜 들고, 시간도 비교적 적게 들지만, 그 효력은 엄청나게 지속되는, 파급력도 커서 나를 위해 썼지만 남도 행복하게 하는, 글 쓰는 행복을 누구나 꼭 누려보면 좋겠다.




자, 지금 글을 써보시죠.

어렵지 않아요. 오늘의 쓰는 행복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오늘도 쓰는 사람들>
진짜 나를 마주하고 더 단단해질 미래를 그리며 오늘도 쓰는 5명의 작가가 만났습니다. 쓰기를 시작하는, 쓰기를 지속하려는 사람들에게 오늘도 글을 쓸 수 있는 용기와 내일을 그려보는 희망을 건네는 글을 씁니다.

글쓰기 시대이지만 글쓰기를 지속하는 사람보다 포기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들을 위해 글쓰기의 시작과 시행착오, 글을 쓰며 나아가는 삶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엮고 있습니다.

그 책은 4월 출간되어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실 수 있어요.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6164006


작가의 이전글 달콤하고도 무서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