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3년이면 외국어 한 개는 잘 할 수 있다.
나는 지방 출신이다.
인구 1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경상도의 어느 작은 동네.
인근 창원이나 부산에서 친구가 전학이라도 오면 도시에서 친구가 왔다고 전교생이 몰려 들어 얼굴 구경을 하던 그런 곳이다.
요즘에야 지방이든 서울이든 많은 아이들이 영어학원도 다니고,
부모님 따라 곧잘 해외여행도 다니는 세상이지만,
그 시절 내 고향, 내 모교에는 영어 학원에 다닐 정도로 넉넉한 아이는 한 반에 5명 정도, 해외 여행을 한 번이라도 다녀본 친구들은 3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학교 수업 이외의 영어 공부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그 동네에서 공부 깨나 한다는 아이들이면 누구나 다녔던 동네의 한 보습 학원에서 내가 받았던 영어 교육은 철저히 문법과 단어 위주의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한 영어였다.
그 시절 공전의 히트작이었던 두꺼운 '성문종합영어'에 나오는 문법, 구문, 단어를 달달 외우다시피 공부했고, 덕분에 학교에서 내주는 영어 시험에는 큰 어려움 없이 잘 대처할 수 있었다.
결국 수능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고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아니, 문제가 문제라는 것조차 느낄 수 없는 넘사벽이 있었으니 바로 소위 '외고 출신'과의 격차였다.
다른 과목이야 똑같은 교과서, 참고집 달달 외웠으니까 얼추 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었겠지만 입으로 말해야 하는 외국어만큼은 체계적으로 교육 받은 엘리트 외고출신들과 견줄 수가 없었다.
대학 시절, 영어회화 수업에는 원어민 교사들과 'Free talking' 수업이 자주 있었는데, 10명이 한 학급에 있으면 99%의 대화는 소수의 외고 출신 친구 또는 어린 시절 해외 경험이 있던 친구들과의 대화였고, 나같은 지방 출신들은 눈만 껌뻑이며 원어민 교사의 시선을 피하기 급급했다.
외국어 컴플렉스를 가진 시골 출신 대학생...
스무 살 때의 나였다.
그리고 2016년 1월, 그로부터 여덟 해가 지났고
새해가 밝으면서 20대의 끝자락에 서게 된 나는
경찰청에서 인터폴로 근무하며, 수십 개 나라 대표가 모인 국제회의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영어로 발표를 하고, 공문을 영어로 작성하고 있다.
스물 네 살때부터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고, 이제는 국제회의에서 일본인들과 만났을 때는 일본어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일본인들에게는 일본어로 메일을 주고 받는다.
그래서 일본 인터폴에서는 나를 '일본말 잘하는 한국 경찰의 젊은 친구'로 기억하고 있다.
작년 초부터는 중국과의 업무를 주로 하게 된 탓에 중국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난 6개월 여간 일하는 틈틈이 공부를 해서 이제는 여행 가서는 물건 흥정이나 음식 주문 정도는 중국어로 하고, 새롭게 사귄 중국 친구들과 wechat(중국명:웨이신) 메신저로 중국어 이야기를 하는데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서른 전에 자신 있게 3개 외국어(영,일, 중)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20대 시절의 목표였고,
스스로의 수준을 가늠하고자 치르는 인증 시험에서 영어, 일본어에 이어 중국어 최고급수(HSK6급)에 도전하고자 공부를 하고 있다.
서른 이후에는 스페인어에도 도전해 보고자 하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물론, 스무살때 처음 해외여행을 나가 봤고, 아직까지 해외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온 적 없는 내가 영어도 일본어도 중국어도, 어느 하나 유창하다는 소리 들을 만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해외 유학파, 외고 출신들 앞에서 부족한 내 실력에 가끔은 부끄럽기도, 작아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때 외국어 컴플렉스를 가졌던 20살의 시골 출신 촌놈이 독학으로 꾸준히 공부해서 외국어를 업무를 하며 일을 하게 되었고, 외국어로 친구를 사귀고 있다는 내 이야기가,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을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소소한 나만의 공부 이야기를 틈날 때마다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누구나 오늘부터 시작해서 3년이면, 반드시 어느 외국어 하나는 꽤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21살때 영어공부를, 24살때 일본어 공부를, 28살때 중국어 공부를 시작한 내 확고한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