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자신 없는 길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지난 주말, '정보보호이론'시험을 끝으로 정보보호대학원의 마지막 기말시험까지 마쳤다.
아직 졸업까지는 A+ 학점을 받지 못한 한 과목에 대한 졸업시험도 치러야 하고, 대망의 졸업논문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하지만, 정보보호대학원 석사 과정에서 들어야 할 수업을 마쳤다는 느낌이 꽤나 뿌듯하다.
그 뿌듯함의 이유는 말하기 부끄럽지만 내가 오래된 '컴맹'인 것과도 적잖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요사이 초등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코딩 학원'을 다닌다고 하지만, 내가 초등학생이던 9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 인기 있는 학원은 웅변학원, 주산학원, 속셈학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90년대 중반 이후 가정용 PC가 널리 보급되면서 컴퓨터 학원이 유행하게 되었고, 내 부모님도 나를 한 컴퓨터 학원에 보내주셨다.
그 당시에는 신기한 컴퓨터를 배운다는 느낌에 앞서가는 느낌에 꽤나 흥미가 있기도 했고, 그 당시 갈고닦은 타자 실력과 워드프로세서 기술은 지금까지도 직장에서 각종 보고서 편집을 하는데 유용하게 쓰이고 있지만, 중학교에 입학하며 더 이상 컴퓨터 학원을 나가지 않게 되었고, 나는 서서히 컴퓨터와 거리가 멀어졌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영화나 음악을 다운받거나, 인터넷 강의를 듣고, 관심 있는 주제(스포츠)에 관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정도로만 컴퓨터를 활용했고, 대학시절 사용한 노트북은 게임기로,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컴퓨터는 그저 업무나 인터넷 검색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렇듯 나의 20대는 컴퓨터와 거리가 먼, 그야말로 '일반 평균인' 이하의 정보화 수준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하나 이상 갖고 있는 공인인증서도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발급받은 정도였다.
그러던 중, 근 20여 년 만에 컴퓨터와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다. 2014년 뜻하지 않게 '사이버범죄수사팀'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통상 경찰 입직을 하고 나서 지구대, 파출소 등 지역경찰을 거치고 나면 경제팀에서 사기 등 경제사건 업무를 맡게 되는데 그 시기에 경제팀에 결원이 없어 뜻하지 않게 사이버수사팀으로 발령이 나게 된 것이다.
대학 전공도 법학이었고, 세부 전공도 범죄수사학이었기에 덜컥 겁부터 집어먹었다.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직장은 일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해내야 하는' 곳이다. 발령 첫날부터 하루에도 몇 건씩 사건이 쏟아졌다. 당시 일선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은 '중OO라'로 대표되는 각종 사이트에서 일어나는 '인터넷 사기', 문자메시지로 온 링크를 눌렀을 때 돈이 빠져나가는 '스미싱', 가짜 금융기관 사이트를 만들어 피해자들의 금융정보를 빼내는 '파밍', 인터넷 소설 등 저작권 침해, 인터넷 명예훼손 등 사건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덕분에 나는 한 달에 40~50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하며, 자연스럽게 컴퓨터와 관련된 각종 용어와 지식을 새롭게 배우게 되었다.
이왕 시작한 일인 만큼, 좀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지방청에서 주관하는 '디지털 포렌식' 교육에도 시간을 내 참석하고, 본청에서 주관하는 사이버범죄 세미나에도 신청해서 참석했다. 이러한 젊은 직원의 열정을 좋게 봐준 한 선배 덕분에 일선 경찰서 사이버수사팀 직원으로는 과분하게도 FBI 주관으로 미국 뉴욕에서 열린 '국제사이버보안컨퍼런스(ICCR)'에 참석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연히 시작된 사이버수사관으로서의 커리어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학 시절부터 꿈꿔오던 '외사경찰'의 꿈을 찾고자 경찰청 인터폴계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한창 사이버 분야에 대해 알아가고, 흥미를 키워가던 중이었기에 아쉽기도 했지만 세계를 누비는 외사경찰이 더 적성에 맞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그 선택 이후 지금까지 나는 한국 경찰의 인터폴로서 5년을 근무했다. 내 경찰 경력 10년 중에 절반이니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인터폴 관련 업무로 네덜란드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또 다른 계기를 만나게 되었다. 국제형사재판소에 근무하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 재판관인 '정창호' 재판관님과 식사를 하며 좋은 말씀을 많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김 경감, 어떻게 하면 한국의 젊은이들이 UN이나 ICC에서 근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재판관님은 매년 국제형사재판소에 지원서를 내는 세계의 청년이 수천 명에 이르고, 그중에 한국 청년들도 꽤 많은데 이들은 거의 대부분 소위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생이며,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 하나씩은 장착한 슈퍼 엘리트라고 하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청년이 ICC에 채용된 사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이유를 묻는 내게, 재판관님은 이런 답을 주셨다.
"많은 한국 청년들이 착각하는 것이, 유수의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에 능통하면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데, 사실 전 세계에 그 정도 실력을 갖춘 청년들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오히려 모국어가 아닌 이상 미국이나 유럽 출신에 비해 영어실력으로는 명함도 못 내밉니다. 한국인은 한국인이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승부를 해야 합니다."
'한국인이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재판관님의 입에서 나온 해답은 정말 의외였다. 바로 '사이버수사'.
재판관님이 10년 이상 유엔 재판관, ICC 재판관으로 일하시면서 한국의 사이버수사 역량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느낄 기회가 여러 차례 있으셨고, 만약 한국의 경찰, 검찰의 실력 있는 사이버 수사관들이 영어 실력을 갖춘다면 세계에서 실력 발휘를 할 기회가 정말 많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름 있는 대학을 졸업한 영어만 잘하는 20대보다, 영어는 그렇게 뛰어나지 않더라도 사이버수사, 디지털포렌식 같은 전문 분야 실무 경험을 갖춘 30대가 국제기구 입장에서는 훨씬 탐나는 인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이 IT 분야에서 선진국이고, 그에 따라 세계 수준의 사이버수사 역량을 갖추었다는 것은 굳이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세계에서 인정하고 있으므로 이보다 좋은 무기가 어디 있냐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렇게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1주일 만에 복귀하여 직장 내부망 홈페이지를 열어보았고, 마치 운명처럼 한 공지사항을 읽게 되었다.
'2019년 정보보호학과(디지털포렌식) 위탁교육생 모집'
네덜란드에서부터 이미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어 있던 나는 좌고우면 망설이지 않고 지원서를 제출했고,
정말 다행히도 이 분야에 잔뼈가 굵은 쟁쟁한 동기들과 함께 석사과정에 입학을 할 수 있었다.
(교수님께 나중에 들었지만, 가까스로 합격했다고 한다)
오랜 컴맹 시절을 겪었기에 배경 지식이 일천했고, 관련 분야 경력도 없었지만 아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표로 졸업학기를 맞이하게 되었다.(물론, 가장 큰 관문인 졸업논문이 남아 있지만)
그리고,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여가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 직장에서 사이버범죄에 관해 조금은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대화도 나눌 수 있게 되었고,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계와 네트워크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자평해본다.
2014년도에 사이버수사팀에서 컴맹이라는 이유로, 자신 없는 분야라고 해서 전보를 신청했다면,
자신 없는 이야기에 대해 귀를 막고 생소한 분야에 대해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면,
네덜란드에서 만난 재판관님의 귀한 말씀도 흘려보내 버렸을 것이고,
정보보호대학원에 입학할 기회는 눈뜨고도 흘려보냈을 것이다.
서른 넘어 시작한 정보보호대학원 공부가 나를 컴퓨터 전문가나 사이버범죄 수사의 달인으로 만들어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기대치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아날로그 세상만 보이던 내게 디지털 세계를 보는 눈을 열어 주었고, 세상에 정말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것만 인정해도 나는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남은 졸업논문학기를 잘 마무리하고 꼭 (공학)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