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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May 14. 2016

3,361장의 사진이 내게 남긴 것

 사진 찍으러 여행 왔냐?


심드렁하게 내뱉던 친구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사진을 좋아하는 편이다. 당연히 여행을 떠날 땐 카메라를 챙긴다. 찍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고는 못 배긴다. 그러다 보니 같이 온 친구들에게 핀잔을 들을 때도 많다.  

    

 인도는 듣던 대로 매력적인 나라였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담고 싶은 장면들이 가득 펼쳐졌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노인, 해맑게 웃으며 날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이들, 꿈쩍도 안 하는 소를 피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릭샤꾼, 전통의상을 입고 이마 한가운데 붉은 티카를 찍은 여인들. 거리는 제각기 자신만의 옷을 두른 채 빛을 뿜어냈다. 햇빛을 받고 반짝이는 황금빛 사원, 푸른 코끼리 조각을 진열해둔 상점, 토기에 담긴 라씨, 바닥에 짓눌린 똥. 여행지에선 지극히 평범한 것들조차 신기한 것으로 다가온다.   

   

인도에서는 많은 것들이 함께 어우러진다.

 

 이 모든 것들을 담아가고 싶었다. 나는 혼자였고 자유로웠다. 핀잔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한강이 얼어붙었다던 올해 1월, 나는 남인도의 어느 해변가에 앉아 있었다. 얼마 뒤에는 낙타를 타러 갔고 사막의 뜨거운 모래를 밟았다. 당연히 타지마할을 봤고 갠지스 강가에 앉아 끊임없이 타오르는 화장터의 불꽃을 한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나는 끊임없이 셔터를 눌렀다. 지붕 위에 원숭이가 나타나거나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를 구경할 때면 동영상을 찍었다. 한 번은 노을이 지는 걸 보고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얘기하다 말고 뛰쳐나가기도 했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할 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설산이 보일 때마다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꺼냈다. 그렇게 나는 40일 동안 인도와 네팔을 여행했고 총 3,361장의 사진을 찍었다.      

  



 다시 사진을 꺼내 본 건 집으로 돌아온 지 2주가 흘렀을 때였다. 물론 여행 중에도 자주 사진을 열어봤다. 사진은 주로 내가 어디에 다녀왔음을 다른 여행자들에게 자랑할 때 쓰였다. 인도는 워낙 넓은 나라였다. 북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남인도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진을 보여줬다.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본 그들은 매번 감탄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묘한 우월감에 사로 잡혔다. 카메라 속의 여행 사진들은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 스스로에게 대단한 여행자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3000장이 넘는 사진을 정리하는 건 여간 귀찮고 고생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자식 같은 사진들이 아니던가. 나는 눈을 비벼가며 비슷한 사진을 걸러내고 좋은 사진을 따로 보관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런데 작업 도중 이상한 사진을 발견했다. 눈이 커다란 인도 아이를 찍은 사진이었는데 도대체 내가 이 사진을 언제 찍은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앞뒤로 찍힌 사진을 통해 아이가 찍힌 시기와 장소를 유추하고서야 그 사진을 내가 찍긴 찍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런데 그 사진뿐만이 아니었다. 마주할 때마다 잽싸게 카메라에 담았던 거리의 소들도 듬성듬성 그런 사진들이 나타났다. 급기야 화려한 사원과 궁전들도 몇 개는 어디가 어딘지 헷갈리는 것들이 있었다. 여행의 피로가 안 풀린 탓에 머릿속에 지우개라도 생겨버린 걸까?     

한동안 기억나지 않았던 아이들의 사진. 지금도 이름은 알 수 없다. 


 사실 언제나 행복하기만 한 여행은 아니었다. 물론 아름다운 것을 직접 보기 위해선 얼마간의 고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40일간 남인도의 해변과 서인도의 사막 그리고 북쪽의 갠지스강을 모두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꼼꼼하게 계획을 짰다. 한 도시에 머무는 시간은 보통 3일에서 길게는 4일. 뭄바이처럼 비싸고 볼 게 없다는 도시는 아예 숙박을 잡지 않고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이동시간을 아끼기 위해 주로 밤기차나 슬리핑 버스를 이용했다. 피로감이 쌓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여행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목적지에 가기 위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진을 찍었다. 허겁 지겁 사진을 찍고 다음 도시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사진들을 보며 짧았던 기억을 되새긴다. 그리고 나는 그곳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훌륭한 여행자로 둔갑한다. 그렇게 나는 화려한 이미지들을 반복해서 들여다보며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억나지 않는 사진들의 정체는 대부분 그런 것들이었다. 억지스럽게 의미를 부여했던 사진들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기한이 지나버린 게임의 아이템처럼 힘을 잃기 시작했다.


 오래 눈길을 주고 감상할 수 있는 사진은 한 마디  화라도 주고받았던 사람들과의 사진이었다. 비슷한 장소여도 정을 주며 머물고 이야기를 만들었던 곳의 사진은 볼수록 생기가 되살아났다. 오래전 반복해서 들었던 노래가 당시의 감성을 되살리듯 사진에서도 그때의 기억과 느낌이 묻어나왔다. 불현듯 바라나시에서 만났던 한 인도인의 말이 떠올랐다.

“현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여행을 하세요.”    

 

함피에서 골동품 가게를 하는 텐진네 가족. 사진을 보면 함께 나눴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는 꽤 열심히 여행을 준비했다. 두 달 전부터 가이드북과 여행 에세이 몇 권을 사서 읽었고 인도 문화와 힌두교에 대해 틈틈이 공부했다. 대략적인 스케줄을 짜는 것은 물론 인도 여행 카페에 올려 검토받기도 했다. 일정이 좀 빡빡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인도는 거대한 나라입니다. 이동시간도 생각하세요.’ 카페에 올린 여행 스케줄엔 보통 이런 댓글이 달렸다. ‘한 도시에 오래 머물면서 현지인들과 이야기하는 여행을 하라’는 조언 역시 여러 여행기에서 여러 번 봐온 말이었다.

 하지만 막상 인도에 도착했을 땐 실천하지 못했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아이의 이름을 묻기 보단 카메라에 먼저 손이 갔다.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그 천진한 눈망울을 담아내는데 마음이 쏠렸다. 라자스탄의 견고한 성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성문에 새겨진 문양을 바라보기보단 좋은 구도를 잡아 성의 그림을 찍어내는데 급급했다. 그런 잘 찍은 사진은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서 훨씬 더 좋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다.


타지마할을 찍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들였다



 내가 그랬듯이, 아무리 역설해도 이미 마음을 정한 사람들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또 언제 올지 모르는 모처럼의 여행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이번 여행은 여러모로 특별했다. 여행을 떠난 첫 달, 나는 20대에서 30대가 됐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최대한 많이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을 떠나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그저 내가 어디를 가봤다고 자랑하려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짧은 일정으로 여러 곳을 다니는 여행은 그게 전부다. ‘남는 건 사진뿐이야.’라고 하는 여행, 그건 여행이 아니라 긴 출사다.  


어떤때는 안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에서 사진작가 션 오코넬은 기다리던 눈표범이 나타났지만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그리고 왜 찍지 않냐는 월터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다시 인도로 돌아간다면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카메라 속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간보다는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마주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싶다. 인도는 사진말고도 할 게 정말 많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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