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필드의 <타르>리뷰

-[모하지의 영화 리터러시]오해 또는 무고의 사이에서

by 모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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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서 베를린 필하모니의 수석지휘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한 커리어의 성취를 넘어선, 구조적·정치적 문제다. 클래식 음악계는 여전히 보수적인 예술 영역 중 하나이며, 젠더 문제는 오랫동안 그 내부의 금기이자 불평등의 징표로 남아 있었다. 빈 필하모닉과 더불어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베를린 필이 여성 단원을 받아들인 것은 1982년이었다. 16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허물지 않았던 남성 중심의 벽이었다. 토드 필드는 이러한 철옹성의 심장부에 ‘여성 지휘자’를 위치시킴으로써, 현실적으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상상력을 정치적 문제의식과 결합시킨다. <타르>는 그 괘씸한 상상에서 출발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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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 인터뷰 형식으로 등장하는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는 그야말로 ‘성공한 여성’의 전형으로 소개된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거쳐 이제 베를린 필에서 말러 교향곡 사이클 완성을 앞두고 있다. 그녀의 경력은 ‘천재’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화려하며, 번스타인으로부터 이어지는 거장의 계보 속에 자신을 확고히 각인시키려 한다. 타르는 '여성 지휘자'라는 정체성의 울타리 안에 머무르길 거부하고, 오히려 자신이 ‘시간을 지배하는 자’로서 오케스트라를 통제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필드는 이 인물의 내면에 권력의 윤리와 예술의 순수성이 충돌하는 균열을 섬세하게 새겨 넣는다.

리디아 타르는 단순히 ‘교만한 천재’가 아니다. 그녀는 변화의 욕망과 보수성, 이상과 현실, 도덕과 욕망의 경계 위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는 인물이다. 이런 모순은 그를 매혹적으로 만든다. 표면적으로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제로 필드는 그 이데올로기를 경쾌하게 비껴나간다. 타르는 스스로 레즈비언이지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진보의 상징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전통적 권위와 고전적 질서를 존중하는 인물이다. 여성 음악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아코디언’에 남성 지원자를 포함시키며, 바흐를 인종적 이유로 배척하는 제자를 거침없이 몰아세운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의 세계가 음악의 순수성을 위협한다고 느낀다. 이러한 태도는 마치 외줄타기 곡예와 같다. 타르는 한편으로는 구조적 차별의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권력의 중심에서 타인을 억압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필드는 이 모순적 존재의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 영화 전체를 세워둔다. 그 균형이 흔들리는 순간, 타르의 성공은 추락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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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말러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가 등장한다.

크리스타의 자살 이후 등장하는 첼리스트 올가의 리허설 장면에서 타르는 독일어로 비스콘티를 언급하며 “이 곡의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자”고 말한다. 하지만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후, 이 곡은 이미 ‘매혹과 몰락의 테마’로 새겨져 있다. 아센바하가 젊음과 욕망의 늪으로 빠져들 듯, 타르 역시 올가의 매력에 이끌린다. 그때부터 그녀의 내면은 서서히 균열하기 시작한다. 예술적 긴장감은 사적 욕망과 뒤엉키며, 그 경계는 무너진다.

그러나 <타르>의 비극은 내면의 죄의식이나 예술가의 자기 파괴적 본능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외부의 힘 — 언론, 동료, 대중, 그리고 SNS — 에 의해 촉발된 사회적 추방이다. 줄리어드 수업 장면에서의 일방적 편집과 왜곡은 이 시대의 ‘사실’이 얼마나 손쉽게 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롱테이크로 촬영된 그 장면이 나중에 SNS상에서 ‘인종 차별’과 ‘성추행’의 증거로 재가공되는 과정은, 한 개인의 평판이 어떻게 디지털 공간에서 파괴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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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는 자신의 몰락을 끝내 ‘오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쌓아올린 세계가 단 한 번의 편집된 영상으로 무너지는 것을 납득하지 못한다. 말러 5번 공연의 지휘자가 카플란으로 교체되자, 그는 정장 차림으로 공연장에 난입해 카플란을 폭행한다. 그 장면은 단순한 폭력의 분출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통제하던 ‘시간’과 ‘질서’가 붕괴되는 순간의 절규이며, 동시에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불태우는 장면이다.

나는 그녀의 몰락이 주변인들의 오해이거나 음해라고 읽었다. 자살을 한 후배 지휘자인 크리스타는 실제로 타르를 짝사랑하여 스토킹하다 거절당해 자살한 것일 수 있다. 프란체스카 역시 세바스찬의 후임으로 부지휘자로 승격할 것이라는 기대가 좌절되자 온라인으로 사표를 쓴 것이다. 휴대폰 카메라와 영상편집 기술, 거기에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 SNS 등은 롱테이크로 보여주었던 줄리어드 수업씬을 맥스에 대한 인종 비하와 성추행으로 손쉽게 바꾸어 버린다. 이 일련의 일들 혹은 오해와 음해는 주인공 타르의 몰락을 이끈다. 물론 가쉽적인 기사가 사실일 수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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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40분이라는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긴장감으로 꽉 차 있다. 토드 필드는 한 개인에 대한 서사를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배치로 기가 막히게 그려낸다. 주연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은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또한 <피닉스>의 니나 호스는 제1 바이올린 주자로서 손색이 없으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노에미 메를랑도 역시 대단하다. 헨리 제임스는 <나사의 회전>에서 여자가 정말로 유령을 보았거나 유령을 보았다는 여자의 말이 거짓인지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모호하다고 정의한다. 타르의 몰락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녀 자신의 성추행이거나 혹은 무고에 의한 오해로 인한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아마도 타르의 추락이 아센바하처럼 주인공의 내적 갈등에 의하 함몰이었다면 비참한 최후가 기다리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필리핀에서 게임<몬스터 헌터>의 배경음악을 코스프레한 관객들 앞에서 지휘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타르의 모습이 그다지 슬퍼보이지 않는 건 새로운 대륙을 찾아가는 게임의 주제처럼 건설적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 모하지 칼럼니스트 (mossis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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