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1)
꽤 오래전, 나는 입원했었다. 14살 때의 기억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 건지, 내가 선택적으로 지워버린 건지, 아니면 기억력이 안 좋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아팠어도 아프다는 생각은 잘하지 않았다. 그래도 더듬더듬 이상했던 기억들을 꼽아보자면, 성큼성큼 올라가던 계단을 어떤 날은 유독 기어가듯 올라갔고, 다리에는 알 수 없는 붉은 반점과 멍이 생겼다. 그러다가 병원에 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허옇게 질린 눈 밑과 회색으로 보이던 입술 때문이었다. 엄마가 연차를 냈고, 동네에 있는 상가 2층에 위치한 내과에서 피를 뽑았다. 아주 오래전 일인데도 병원 위치와 층수가 기억나는 건 신기한 일이다.
다시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은 조용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큰 병원에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 길로 엄마 차를 타고 동네에 있는 가장 큰 종합병원으로 갔다. 나에게 엄마는 꽤나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그날따라 내 손을 꼭 잡고 있었고, 맞잡은 내손까지 축축했다.
피검사를 하고 기다렸던가, 순식간에 내가 기억하는 장면은 의사 선생님 앞으로 바뀐다. 큰 병원에서도 소견은 비슷했는데, 많이 안 좋고, 골수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다리를 걷어 여기저기 보던 선생님은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혈액의 구성에 대해 배웠냐고 물어보셨다. 면역기능을 하는 백혈구,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그리고 지혈을 하는 혈소판이 있다며, 세 가지 모두 많이 부족하다고 하셨다. 다른 것들의 수치도 낮았지만 혈소판은 8,000(*정상인은 150,000 이상)이라 어디에서라도 피가 나면 멈출 수 없으니 입원하자고 하셨다. 나는 먼저 밖에 나와 있었고, 의자에 앉아서 땅을 차며 엄마를 기다렸다. 그리고 엄마가 진료실 앞으로 나왔을 때, 엄마가 울고 있었다. 엄마는 긴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나를 안고 "엄마가 너 꼭 낫게 해 줄게"라고 주문처럼 외웠다. 나는 '어떻게?'라고 생각했다. 현실감이 없었다.
주말 아니면 보기 힘든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뒷좌석에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서 그 분야 최고라는 병원으로 갔다. 차에 눕기에는 작지 않은 키라 옆으로 구겨 누운 허리가 좀 아팠는데, 왠지 앉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누워있었다. 새로 간 병원에서 또 피를 뽑고,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키가 크고, 하얗고, 마르고, 안경이 반짝거리는 잘 생긴 의사 선생님이었다. 진단을 받기 위해서는 골수검사를 해야 한다 해서 입원을 했다. 작은 아이들이 많은 그 병동에 처음으로 라인을 잡고, 다인실에 입원을 했다. 어느 날은 옆 침대의 작은 아가와 놀아주기도 했고, 어떤 날은 건너편의 아이가 갑자기 떠나버려 복도에서 울기도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진단받은 나의 병명은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