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2)
교수님은 이 병에는 원인이 없다고 했지만, 최종 진단을 받고 난 후 엄마는 많이 자책하셨다. 자책하는 사람에게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수백, 수천 가지로 끼워 맞출 수 있다. 엄마가 너무 괴로워하고 자책하니 나는 괜찮아야 했다. 씩씩해져야 했고, 긍정적이어야 했다. 나는 괜찮을 거 같다고 믿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기에 그때의 나는 어렸던 것 같다. 당장의 중간고사 시험이나, 학교에 출결 일수가 부족한 것 따위가 더 신경 쓰였다.
다행히도 치료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가족이나 공여자로부터 맞는 조혈모세포를 이식받는 방법인 골수이식과 면역억제 치료를 통해 비정상세포를 제거하여 치료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엄마, 아빠, 그리고 내 동생도 골수검사를 했지만 맞지 않았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의 일본, 중국 등 여기저기 찾아도 내게 일치하는 골수가 없었다. 수치는 낮았고, 상황은 급했다. 골수가 맞지 않는 것조차 우리 가족에게는 자책의 대상이었다. 나보다 더 어렸던 동생이 매일 밤마다 누나를 살려달라고 기도했다고 들었다. 중증이고 공여자가 없으니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면역억제 치료였다.
맨들맨들한 그 회색 약은 나에게 잘 맞았다. 고등학생 때 재발도 하고, 약의 브랜드도 한 번 바뀌었지만 그 이후로 20년 넘게 나를 지켜줬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 언뜻 난자 얼리는 걸 얘기하셨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하고 수치를 보고, 약의 용량을 늘렸다 줄였다 했다. 비타민 먹듯이 시간 맞춰 약을 먹는 게 익숙해졌을 무렵,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혼자 살아야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환자이면서 환자가 아닌 듯 살아가는 나는 대학생일 때도, 회사원일 때도 너무너무 바빠서 연애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덜컥 '혼자'가 아니라 '우리'를 꿈꾸게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