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기간이 지난 거대권력 LH

누구나 비난하지만 누구도 해체 못하는 정치적 의지체

by 홍진

한국의 건축가로서, 내가 바라보는 LH는 ‘건축’을 지우고 ‘토지와 면적’을 기준으로 주거를 공급해 온 전후 산업화 시대의 잔재이자, 주거를 삶이 아닌 기계적 재화로 환원한 국가기구다.

물론 과거에는 그 역할이 유효했다. 도시는 팽창했고, 농촌에서 유입된 인구는 단기간에 주거를 필요로 했으며, 민간 역량은 부족했다. 실업난을 구제하는 전국 조직이기도 했다. 명분은 좋았다. 주거안정을 가능하게 하는 조직.

무엇보다 LH의 본래의 목표를 상실한 듯 하다.
주거 안정도 도시경관도 제 역할을 못한다.
유럽의 사회적 주택처럼 안정적 공급도
건축의 가치도 제대로 못하고 민간기업처럼 영리 추구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삶의 방식이 다변화되고, 도시 거주의 질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에, LH는 여전히 20세기적 논리로 도시를 찍어내고, 동일한 평면을 반복하며, ‘거주’가 아니라 ‘수용’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주거 인정의 실패 핵심이다. 더구나 명분이었던 주거안정은 실패했다. 주거 공급의무역할은 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분양가 억제하던 1998년까지다.

LH는 본질적으로 ‘공급’에만 집중하는 구조다.


LH는 본질적으로 ‘공급’에만 집중하는 구조다. 이들이 말하는 공급은 물리적 면적이고, 그 안에서의 삶의 구조나 공간 경험은 뒷전이다. 표준화된 평면, 반복된 단지 구성, 기능 중심의 건물 배치가 주거를 구성하고, 이 과정에서 건축가의 역할은 무력화된다. 설계는 입찰로, 설계자의 철학은 규격화된 단가와 조달청 기준에 눌려 사라진다. 정체성 없는 아파트가 전국 어디서나 복제되며, 거주자는 공간에 자신을 투영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이는 건축의 부재이고, 삶의 부재이며, 결과적으로 ‘주거 인정’의 실패다.


이러한 시스템의 문제는 단지 미학적이거나 감성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이고 제도적이며, 심지어 정치적인 문제다. LH는 ‘공공성’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자산 관리 주체이며, 토지의 전매자이고, 부동산의 공급자다. 이들은 수익성과 공급 물량을 양립시키려 하지만, 양자는 본질적으로 충돌한다. 저렴한 임대료를 위해 건축비를 최소화하면 삶의 질은 낮아지고, 질 높은 건축을 원하면 공공성은 흔들린다. 이 딜레마 속에서, LH는 결국 두 가지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주거는 질적으로 불충분하며, 재정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책임은 늘 외주화 된다.


건축가로서 가장 비판하는 지점은, LH의 시스템이 설계를 내수용으로 산업화하고, 건축을 장르 화하며, 인간을 평균치로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공간 속에 담아내는 작업을 한다. 그 사람은 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다자녀 가구일 수도 있고, 외로운 1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LH는 그들을 평균 가구로 환원하며, ‘3 베이 남향’이라는 도식에 삶을 구겨 넣는다. 이 과정은 반복되며, 우리는 매번 ‘같은 도시’, ‘같은 집’을 보게 된다. 그 어디에도 건축의 언어는 없고, 공간의 상상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왜 우리는 아직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주거를 계획하고 공급하는가? 왜 국가 주도의 단일 공급자가 도시와 삶을 설계하는가? 이는 단지 LH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를 이해하는 한국 사회 전체의 구조적 패러다임의 문제다. 솔직히 말하면 이 글을 쓰는 지금, 문제를 이해하는 결단력 있는 지도자가 나오지 않는 이상 권력생태계에 촘촘히 엮여 많은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는 이상 LH는 지속될 것이다.


본은 주택영단(JH)을 해체하고, UR都市機構로 기능을 축소하며, 지역 주택협회와 민간 주체의 자율성을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외형이 아니라 조직의 중심 축의 전환이었다. 공급자 중심에서 거주자 중심으로, 토지 중심에서 건축 중심으로, 행정 중심에서 생활 중심으로 무게추를 이동시킨 것이다. UR은 직접적인 개발보다 관리와 보완, 정책적 조정 역할로 후퇴하며, 공간의 창의성과 지역성을 민간에게 열어 주었다. 반면 한국의 LH는 위기를 겪을수록 더 확대되었고, 개혁은 늘 미봉에 그쳤다. 위기를 자신들의 필연성으로 포장하며, 행정가·교수·정치가들을 감싸 안아 견고한 체계를 유지해 왔다. 지속가능한 유지……


LH 해체는 단순한 분해가 아니다. 해체는 구조를 재구성하겠다는 의지이며, 역할의 재배치다. LH를 해체하자는 말은, 공간의 생산 주체를 중앙에서 지역으로, 대형에서 다핵으로, ‘비 실무자 관료’에서 ‘전문가인 건축사(가)’와 ‘실질적 사용자인 거주자’로 옮기자는 것이다. LH가 지금처럼 존재해서는, 한국 도시의 내일은 없다. 그들이 개발한 신도시는 기능할 수 있어도, 사랑받을 수는 없다. 도시는 기능만으로는 지속되지 않으며, 기억과 경험, 정체성과 감정의 층위가 쌓여야만 살아 있는 장소가 된다.


건축가는 그 장소성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도시를 짓는 게 아니라, 계획표를 복사하고 있다. 이 과정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또 다른 공실 도시를, 또 다른 실패한 신도시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LH는 이제 물러나야 한다. 물러남은 사라짐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을 여는 일이다. 그 자리에는 지역 주택협회, 사회적 건축 네트워크, 시민과 건축가가 함께 설계하는 실험적인 주거 모델들이 들어설 수 있다.


LH의 해체가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재 탄생이 정확한 소망이다. 그들도 본질적인 역할을 하고 싶을 것이다.


LH는 과거에 필요했고, 한때는 유효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시대에 과거의 틀을 강요하며, 미래의 가능성을 막고 있다. 이제는 그 거대한 몸체를 축소하고, 역할을 재배치하며, 새로운 도시의 시작점으로 거듭나야 한다. 주거란 단순한 평수나 공급량이 아니라, 인간 삶의 가장 정직한 거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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