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의 허용, 유럽 그리고 일본

유럽과 일본 건축이 허용한 ‘몽상’을 실현한 앙팡테리블

by 홍진

상상력과 제도사이


건축의 현재성을 드러낸다는 것은 단지 최신의 기술이나 유행하는 스타일을 반영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정신, 사회의 상상력, 그리고 집단적 미래지향성을 건축이라는 실체를 통해 드러내는 일이다. 그 점에서 건축은 물리적 구조물이기 이전에 사회와 시대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언어이며, 종종 그것은 현실 너머를 향한 몽상에 가깝다. 그리고 바로 그 몽상의 자유야말로 건축이 현재성을 획득하는 본질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상상력의 건축은 개인의 창의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사회의 건축으로 수용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제도적, 정치적, 문화적 환경이 필요하다.


유럽과 일본은 각각 상이한 경로를 통해, 건축가들이 '현실 너머의 상상력'을 실험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 왔다. 그 결과, 때로는 실현되지 못했으나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시대를 규정하게 된 건축들이 존재해 왔다. 1960년대의 아키그램과 메타볼리즘은 이러한 '실험의 가능성'이 어떤 사회적 기반에서 가능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의 아키그램(Archigram)은 1960년대 후반, 전통적 건축의 문법과 도시계획의 경직성을 넘어선 급진적 아이디어를 제시한 아방가르드 건축 그룹이었다. 피터 쿡, 마이클 웹, 워렌 챠크 등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종이 위에서만 존재하는, 그러나 그 자체로 강렬한 영향력을 가진 건축을 상상했다. ‘워킹 시티(Walking City)’나 ‘인스턴트 시티(Instant City)’는 건축을 하나의 생명체처럼 상정하고, 도시를 네트워크와 모듈의 결합체로 재구성하였다. 이들의 건축은 실제로 지어지지 않았지만, 도시와 건축을 유동적이고 유기적인 존재로 재해석한 상상력은 후속 세대의 건축가들에게 거대한 자극이 되었다. 그들이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유럽 사회의 탈권위적 분위기, 디자인과 건축의 융합적 교육환경, 그리고 문화정책이 있었다. 건축은 단지 실용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스스로의 이상을 투사하는 문화예술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상상력은 존중받았다.


한편,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메타볼리즘 운동이 등장했다. 기쿠타케 기요노리, 구로카와 기쇼, 단 노리유키, 오타케 아라타 등으로 구성된 이 운동은, 일본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 팽창 속에서 새로운 건축의 방향을 제시했다. 메타볼리즘은 건축과 도시를 고정된 형태가 아닌 유기체로 상정하였고, 그 결과 '가변성', '모듈화', '성장'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한 실험들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인 나 카긴 캡슐타워는, 개별 주거유닛이 기계처럼 탈부착 가능한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급진적 형태였다. 일본 사회는 유럽처럼 국가가 대규모 공공건축을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건축가들이 민간 차원에서 실험을 감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간섭을 최소화하고, 협소한 부지나 비정형 도시공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유연성을 보였다. 또한 전통적으로 예술과 기술, 공간과 감성 사이의 경계를 흐리며, 건축가의 내면적 세계를 하나의 문화 자산으로 포용하는 미학적 관용성 역시 중요한 조건이었다.


유럽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지국가 체제를 수립하면서, 국가가 주거, 문화시설, 공공공간의 발주자 역할을 자임했다.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 시기 '그랑 프로젝트'는 이러한 국가 주도의 문화건축 프로젝트가 어떻게 실험적 건축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는지를 보여준다. 베르나르 츄미의 파리 라빌레트 공원은 건축이 공간의 구성만이 아니라, 시간과 사건, 행위의 배열을 다루는 실천이라는 새로운 철학을 구현한 작업이었다. 이러한 시도들은 단지 공모전의 결과물이 아니라, 건축이 도시와 사회를 사유하는 방식의 변화였다. 그것은 푸코, 들뢰즈, 리오타르 등 당대 철학자들과 건축가들 사이의 긴밀한 교류가 가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은 구조 속에서, 건축은 곧 사유이자 기획이었다.


일본에서는 제도적 '간섭 없음'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직접적인 지원이나 후원이 없었지만, 동시에 지나친 규제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이 가능했다. 협소주택의 실험, 재료와 빛에 대한 민감한 감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축가 개인의 철학을 담은 건축이 사회적으로도 존중받는 분위기가 있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은 고요한 명상과 내면적 사유의 공간을 구현했고, 세지마 가즈요의 건축은 비물질적인 투명성과 감각의 경계에 도전했다. 이들은 단지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가 공간을 통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사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실험이 가능했던 핵심은 결국 상상력을 실험할 수 있는 구조,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는 사회의 감수성이다. 건축은 본질적으로 공공성과 시간성을 내포한 예술이며, 그것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감각을 넘어서야 한다. 아키그램과 메타볼리즘은 그 점에서 현실을 뛰어넘는 급진성을 통해,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 혹은 어떤 두려움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집단 무의식의 표상이었다.


오늘날 한국의 건축 환경은 이러한 상상력이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이 극히 제한적이다. 공공건축은 예산과 규정에 얽매이고, 민간건축은 시장 논리에 종속되며, 교육과 제도는 도면과 스펙에 몰두한다. 비평은 사라졌고, 철학은 부재하며, 건축가는 예술가이기보다는 행정적 서류작성자나 계약자로 간주된다. 이 구조 속에서 상상력은 외면당하고, 건축은 현재의 반복이 되며, 사회는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묻고 도전해야 한다.

왜 건축은 비현실적인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가? 그것은 건축이 단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그 현실을 재구성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유럽과 일본은 그 언어를 허용했고, 때로는 국가가, 때로는 사회가, 때로는 건축가 스스로가 그 실험을 지켜냈다. 오늘의 우리는 그러한 자유를 회복할 수 있을까? 상상력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는, 결국 현재를 반복하는 사회일 뿐이다. 건축의 현재성은 바로 그 반복을 멈추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려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ps/ 한국의 많은 건축가들이나 교수들은 공공이 그 가능성을 주도하고 실현성을 높여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공공이 주도할 때 벌어지는 더 많은 장애와 실천과정에서 문제점은 민간주도보다 크다. 민간은 우열이 아주 선명하다. 때문에 이른바 후진 결과물을 보면 혀가 차이나, 반대로 민간이 제대로 선택을 할 경우에는 공공보다 훨씬 낮은 공사비와 진행으로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낸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우열의 상황을 참지 못하고 공공주도로 이끌려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적당한 평균 수준으로 이끈다는 것인데, 공공이 후원 및 지원하고 민간이 주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우리나라와 더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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