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잘못된 호칭 논란, 본질에 집중하라

by 홍진

한국 건축계에는 유독 반복되는 논쟁이 있다. 바로 건축가와 건축사라는 호칭을 둘러싼 혼란이다. 이 논쟁은 단순히 직업적 명칭의 차이를 넘어, 작품의 성격과 질, 나아가 건축인의 계급 의식과 권위를 나누는 도구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애초에 호칭은 제도와 법률, 혹은 관습의 차원에서 다뤄야 할 문제일 뿐 건축의 본질적 가치나 성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문제는 한국의 건축계 일각에서 이 호칭 문제를 작품성과 연결시키며 불필요한 구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현상은 건축의 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중과 건축계 모두를 혼란스럽게 한다.


건축사라는 용어는 법적 자격을 지칭한다. 「건축사법」에 따라 국가시험에 합격하고 건축사 등록을 마친 사람만이 합법적으로 설계와 감리에 참여할 수 있다. 반면 건축가라는 표현은 법적 근거가 없는 관습적 용어로, 전통적으로 건축 설계와 창작에 관여하는 사람을 두루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법적으로 규정된 호칭과 사회적 관습으로 통용되는 호칭이 충돌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단순한 언어 차원에서 넘어서지 못하고 불필요한 위계 구도와 가치 판단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건축가라는 말은 예술성과 창의성을 상징하는 고급스러운 호칭으로 소비되고, 건축사는 시험에 합격한 실무 기술자라는 식의 단순화된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문제는 이러한 이분법이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건축사들은 예술적 창의와 실무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와 건축사를 마치 서로 다른 계급으로 구분하는 태도가 건축계 내부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이 같은 경향은 단순한 언어적 구분을 넘어 건축 작품의 질적 가치 평가와도 억지로 연결된다. 건축가라 불리는 이의 작업은 예술적 성취로, 건축사라 불리는 이의 작업은 단순한 실무 결과물로 간주되는 식이다. 호칭과 작품성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이런 비논리적 추론은 건축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낳는다. 건축은 본질적으로 예술, 과학, 기술, 사회적 실천이 종합된 영역인데, 이를 단순히 호칭이라는 외피로 평가하는 태도는 건축의 복합성과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잘못된 기준을 심어주며, 건축에 대한 대중적 이해 역시 호칭에 의해 오도된다.


이 현상은 한국 건축계, 더 정확하게는 건축설계를 지향하는 분야의 엘리트 의식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하던 시기, 일부 건축인들은 자신을 단순한 실무자가 아닌 예술적 창작자로 규정하며 작가주의적 정체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태도는 건축을 일종의 고급 문화자본으로 소비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건축가라는 호칭을 단순한 직업명이 아니라 사회적 권위의 표식으로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건축사 자격을 갖추지 못한 디자이너들이 자신을 건축가라 칭하자, 제도권 건축사들은 이를 불법적이고 혼란스러운 행위로 간주했다. 반대로 일부 디자이너들은 법적 자격을 기능적 실무에 국한된 것으로 축소하고, 창작성을 자신들의 우위로 내세웠다. 결국 양측 모두 호칭을 권위와 구분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갈등을 심화시켜 왔다. 하지만 이 와중에 김중업 선생의 태도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공식적으로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전면에서 활동한 것이다. 회사 이름도 김중업 건축사사무소였다.


해외의 사례와 비교하면 한국의 상황은 더욱 특수하게 드러난다. 영국에서는 건축가 또는 건축사로 번역되는 Architect는 호칭 자체가 법적으로 보호된다. 영국건축사등록위원회에 등록하지 않으면 공식적으로 Architect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토머스 헤더윅조차 영국 내에서는 건축사 등록이 되어 있지 않기에 디자이너로만 표기된다. 그의 작품이 아무리 주목받더라도 호칭은 법적 규정에 따라 관리된다. 미국 역시 주별 면허 제도를 통해 Architect와 Designer를 명확히 구분한다. 비면허자가 건축 디자인에 참여할 수는 있으나, 공공 건축 허가에는 반드시 면허가 필요하다. 사회적 또는 공식적으로 Architect 타이틀은 자격을 취득한 자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제화 되어 있다. 일본은 일급건축사 제도를 통해 법적 자격을 규정하며, 호칭은 국가 자격을 보유한 사람에게만 제한된다. 동시에 창작 활동은 별개로 인정되어, 한국처럼 호칭 문제가 불필요한 논란으로 비화하지 않는다. 유럽 대륙 역시 마찬가지로 Architect는 국가 자격을 의미하며, 작품 평가와 호칭은 명확히 구분된다. 일본의 경우 안도 타다오가 고졸이라는 선입견으로 우리는 자격이 없을 것이라 판단하지만, 실제 그는 학력조건때문에 10년의 시간을 들여서 2급건축사와 1급 건축사를 30대 초반 나이에 취득했다. 법적 조건을 먼저 충족한 것이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제도적으로 호칭과 자격을 엄격히 분리하고, 작품성은 그와 독립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법적 호칭과 관습적 호칭이 뒤섞이며 모호한 경계가 만들어졌고, 이는 불필요한 언어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그 결과 건축계 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생산적 결과만이 남았다. 대중은 건축사와 건축가를 혼동하고, 건축인의 전문성은 불분명하게 인식된다. 젊은 세대 디자이너들은 자격 취득 전에도 건축가라 불리고 싶어 하지만 기존 건축사들은 이를 법적 질서의 위협으로 본다. 학계와 평단에서조차 호칭을 기준으로 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인맥과 권위가 작품 평가를 지배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호칭과 건축의 성과를 명확히 분리할 필요가 있다. 호칭은 법률과 제도의 문제다. 건축사라는 자격은 시험과 등록이라는 절차를 통해 규정되고 보호받아야 하며, 이는 사회적 신뢰와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호칭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건축이 사회와 도시, 환경에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가이다. 호칭을 근거로 성과를 재단하는 것은 건축을 권력적 위계 속에 가두는 행위일 뿐이다. 건축은 신분적 체계가 아니라 열린 사회적 예술이자 과학이어야 한다.

건축의 본질적 가치는 작품이 만들어내는 공간적 경험과 사회적 기여, 시대적 의미 속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호칭을 둘러싼 불필요한 계급화에서 벗어나 건축 본연의 가치를 향한 논의가 확산될 때, 한국 건축계는 한 단계 더 성숙해질 수 있다. 대중 역시 좋은 건축이 무엇인지,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울림을 주는지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격이 없는 이들이 굳이 건축가라는 타이틀을 사용하면서 논란의 한 가운데 서 있을 이유가 없다. 디자이너면 어떤가? 진정 건축의 본질을 탐구하고 집중한다면 불필요한 논쟁속에 있을 것이 아니라 하고자하는 본질에 집중해야 하고, 주변에서도 그들의 성과에 시선을 두어야 한다. 영국에서 헤더윅을 보고 디자이너냐, 건축가냐 하는 논쟁없이 그가 만들어내는 건축적 성과에 집중한다. 디자이너 헤더웍으로도 얼마든지 건축적 성과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건축은 공간의 질, 도시와 사회에 남기는 흔적, 그리고 후대에 전해질 의미가 건축의 본질이다. 한국 건축계가 스스로 만들어낸 호칭의 덫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소모적인 논쟁 속에서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법적 호칭은 제도로 관리하고, 건축의 평가는 성과와 가치로 평가하는 국제적 상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좋은 건축을 논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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