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잃어버린 것들
획일화된 도시, 사라지는 건축의 다양성
한국의 도시 풍경을 떠올려 보면, 한 가지 공통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파트 단지들, 저마다 화려한 브랜드를 내세우지만 결국 비슷한 외관과 구조로 약간의 화장만 고친 건물들이 가득하다. 이미 한국에서는 아파트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부동산 자산으로 여겨지며, 정부와 민간 모두 대규모 단지를 선호하는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단지가 클수록 가치가 올라간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아파트 개발은 점점 더 대형화되고 있다. 정부도 대중도 기업도 좋아한다. 언듯 보기엔 모두애게 행복해 보인다.
정말 그럴까?
세상일이 그렇듯 항상 그림자가 있고, 문제가 존재한다. 더구나 그 주체들 속애서 커져가는 중이다.
우선 극단적 양극화가 산업 주체들에서 싹이 트고 있다. 건축 설계분야다. 시장 참여자의 90%가 중소규모 건축사사무소다. 아파트는 이들의 상대가 아니다. 중소규모 건축사사무소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으며, 내수 경제는 위축되고, 기능공들의 기술 전수 또한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은 건축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 건축사사무소의 95%가 중소형 규모라는 사실이다. 우리보다 더 심한 규모 편중이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만큼 고민이 없가. 오히려 도시와 지역을 막론하고 독창적인 건축물이 많으며, 대형 개발보다도 개별 건축물의 특성과 조화를 고려한 설계가 많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문화적 요소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바라보는 사회적 태도와 정책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일본에서는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들이 개성을 발휘할 기회가 많고, 지역 장인들이 참여하는 건축 프로젝트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반면, 한국의 경우 모든 것이 대규모 아파트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중소규모 건축사사무소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사라지는 중소 건축사사무소의 역할
대형 아파트 단지가 주거 시장의 중심이 되면서, 중소규모 건축사사무소들은 독창적인 건축물을 설계할 기회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파트 단지는 거대한 프로젝트이므로 대형 건설사들이 독점하는 구조가 형성되었고, 이들의 파트너들은 전체 건축사사무소 중 실제는 0.6%가 대상일 뿐이다.
중소 건축사사무소들은 점점 리모델링이나 소규모 상업 시설 설계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주택유형의 60% 이상이 아파트이고, 단지규모는 더 커지고 있다. 중소형 건축사사무소를 필요로 하는 단독주택이나 단독형 건축은 반대로 갈수록 줄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건축의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도시 곳곳에 세워지는 아파트 단지들은 대부분 동일한 형태를 띠며, 이는 도시의 정체성을 획일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개별 건축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대신, 대단지 아파트들이 도시의 얼굴을 결정짓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건축의 본질적인 목적 중 하나는 장소성과 맥락을 고려한 설계에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건축 환경은 경제적 논리에 의해 획일화된 디자인을 강요하는 구조로 변질되었다. 장소성과 도시 맥락이 아닌 브랜드와 포장된 가치이미지가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다.
관료와 정치인들의 착각이 만들어내는 내수 경제의 위축과 지역 경제의 소외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개발될 때,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자재는 대형 건설사가 계약한 대기업의 제품이 사용되며, 시공 또한 중앙에서 통제된 대형 하청업체가 맡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지역 기반의 중소 시공업체나 건축 자재 업체는 설 자리를 잃고, 지역 경제는 점점 위축된다.
과거에는 건축 프로젝트마다 지역의 소규모 업체들이 참여하며 경제적 순환이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대규모 단지가 전국적으로 동일한 시스템으로 지어지면서 이러한 기회가 사라졌다.
특히 지역 기반의 전통적인 건축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이 점점 도태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지역 경제의 활력을 잃게 만들고,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기능공 기술 전수의 단절
건축은 단순히 자재를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숙련된 장인의 손길이 필요한 영역이 많다. 타일 시공, 목공, 미장, 석공 등 다양한 건축 기술들은 수십 년 동안 경험을 쌓으며 발전해 왔다. 그러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기계화된 시공 방식으로 빠르게 지어지면서, 이러한 전통적인 기술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장인들이 현장에서 직접 기술을 전수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제는 일정한 공정을 따라가며 대량 생산된 자재를 조립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다 보니, 숙련된 기능공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젊은 세대는 전통적인 건축 기술을 배울 기회가 줄어들었고, 그 결과 한국의 건축 산업은 점점 더 표준화된 방식으로만 운영되는 구조가 되었다. 맥도널드 햄버거의 표준화 목표는 파트타임 비정규 직원이 첫 출근해서 포장을 뜯고 매뉴얼을 따라도 동일한 맛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섀프의
솜씨가 필요치 않은 생산성 중심의 시장이다. 위대한 요리사가 필요치 않은 것처럼 장인이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노동 시장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기능공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건축의 질적인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최근 뉴스에 나오는 사건 사고들은 중요하면서도 아주 기초적인 낮은 기술적 실수에 가까운 것들이다.
일본의 경우 여전히 기능공 중심의 전통적인 건축 방식이 많이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건축물의 완성도와 차별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점점 사라지면서, 건축물의 개성과 완성도가 희생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덤으로 안전과 섬세한 품질이 희생되고 있다. 물론 불필요한 재정적 낭비도 커지고 있다.
획일화된 주거 문화가 남긴 것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도시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지역 경제를 위축시키며, 건축 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일본이 건축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는 것과 달리, 한국은 점점 더 획일화된 건축 환경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건축은 단순한 부동산 가치가 아니라, 한 시대의 문화와 철학을 담는 그릇이다. 우리가 지금의 아파트 중심의 건축 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미래 세대는 더 이상 개성 있는 건축물을 경험할 기회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큰 아파트 단지’가 아닌, ‘더 나은 건축’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