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한국건축 정체성 찾기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어도 한국건축은 스스로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by 홍진


20세기 이후 세계 건축계에서는 각 나라와 시대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건축 운동이 등장했다. 일본의 메타볼리즘(Metabolism), 영국의 아키그램(Archigram), 미국의 뉴욕 파이브(New York Five)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각각 사회, 기술, 도시 환경의 변화에 대한 독창적인 건축적 해석을 내놓으며 세계 건축사에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다. 하지만 한국 건축계에서는 이렇다 할 독자적인 건축 철학이나 운동이 탄생하지 못했다. 뭐... 여러 가지 이유는 있긴 하다.


한국 건축은 왜 자생적인 건축 이론과 운동을 형성하지 못했을까?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 건축계가 가진 역사적, 문화적, 교육적 배경에서 기인한 문제에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엘리트들이 건축의 가치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었다는 것도 큰 이유다. 건축은 상대가 있어야 자라는데 그런 상대가 없으니 혼자 난리 부르스를 치는 셈인 것이다.


현대 한국건축 철학의 부재에 대한 변명

식민지는 생각하는 힘을 거세했다.


서구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재료(철, 유리, 콘크리트)와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근대 건축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20세기 초반의 근대 건축 운동(바우하우스, 국제주의 건축 등)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발전한 결과였다. 일본을 많이 말하는데, 일본은 19세기 중반 서구에 공식적으로 등장하면서 변화하는 건축의 흐름에 동참했던 나라다.


그러나 한국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기득권층의 배신자들로 인해 국가의 자기 결정권을 일본에 헌납한 이유로 스스로의 사고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 덕분에 근현대화된 건축은 한국에 자랄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해 자율적인 근대 건축을 형성할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 건축은 일본의 식민지 정책 아래 놓이며, 전통 건축의 맥이 끊기고 일본식 근대 건축이 강제로 도입되었다. 이 당시 건축에 대한 연구를 조선인 누구도 했다는 흔적도, 자료가 없는 것을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한옥수리 대목수등이나 건설의 기술자들은 존재해도, 인문학적 가치와 미학적인 시각의 건축은 전무했던 셈이다. 36년의 식민지 시간은 우리의 사고에 건축을 지워버린 셈이다.

그 후유증인 넓고도 깊어서 해방 이후에도 한국은 자체적인 건축 철학을 정립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국가 재건이 최우선 과제가 되었고, 서구의 건축 양식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처럼 한국의 근대 건축은 자율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에 의해 도입된 것뿐만 아니라 건설로 들어와서, 독자적인 철학이나 운동이 태동할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다.


자율권을 가진 해방 이후 건축이 고민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고상한 철학보다는 당장 지어야 했고, 수익을 남겼다. 황금에 눈뜬 사회애서 건축은 구색 맞추기 용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해방 이후 자율적 상황에서 급성장은 모든 것을 다질 시간을 주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에 바로 해외의 것을 들여오는 게 더 빨랐고, 실제 그렇게 진행되었다. 건축 설계는 외국에서 유입된 기술과 스타일을 그대로 차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독창적인 이론이나 운동이 탄생할 환경이 조성되지 못했다. 수입이 생산보다 쉽고 효율적이니 당연할 수밖에......


건축은 단순한 공간의 조성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 그리고 인간의 내면이 투영된 공학이며 예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건축은 단순한 공간의 조성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 그리고 인간의 내면이 투영된 예술이다. 특히, 자생적 건축 철학은 특정 지역과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한 건축 사상과 실천을 의미한다. 이는 외부에서 수입된 사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전통과 현대적 요구를 융합하며 독창적인 건축적 언어를 형성하는 과정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의 자신을 명확히 함으로써 한국 건축 스스로의 자존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수입으로 대체된 건축 철학 그리고 철학 무역상들


한국의 건축 교육은 1980년대 이후 해외 유학파들이 주도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돌아온 건축가들은 유럽과 미국의 건축 이론을 소개하며 한국 건축계를 국제적인 흐름 속에 포함시키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 고유의 건축 철학을 형성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일본과 비교하면 자체생산과 수입이 경쟁하고 갈등할 때 탄생하는데, 우리에겐 이런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건축 이론과 운동은 특정한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태어나는데, 한국 건축계는 유럽과 미국에서 개발된 이론을 그대로 수용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외국의 건축 이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작업은 활발했지만, 독창적인 건축 이론을 생산하는 시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새로움에 대한 건축사회의 갈증도 지식 수입 중계학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해소되었기에 현재까지도 이 흐름은 깨지질 않는다.


그 부작용은 스스로의 시간을 되돌아보지 않고, 덮어버린 다는 점이다. 같은 생각, 같은 발상, 같은 논의가 전혀 버전 업 되지 않고 다시 출현하는 것이다.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은 분석력 빈곤애서 출발


건축 운동은 단순히 개별 건축가의 노력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토양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독창적인 건축 운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


건축주(클라이언트)의 보수성: 한국에서 건축 설계는 주로 민간 기업과 정부의 의뢰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축주는 실험적인 디자인보다 경제성과 기능성을 우선시하며, 검증되지 않은 건축 이론을 적용하는 것을 꺼린다.


건축 법규와 제도의 경직성

한국의 건축 법규는 혁신적인 건축 실험을 허용하기보다는, 기존의 방식에 맞춰 진행될 것을 요구한다. 이에 반해 유럽이나 다른 나라들의 경우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우라는 갈수록 얽히고설키는 중이다.) 건축 실험이 가능하도록 법적 유연성을 제공하며, 독창적인 건축 운동이 지속적으로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러한 구조적인 제약 속에서 건축가들은 혁신적인 건축 이론을 개발하고 실험하는 것보다는, 기존 시스템 안에서 실용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리셋이 필요한 건축 교육의 다양성과 철학적 접근 확대


현재 한국 건축 교육은 서구 중심의 건축 이론을 배우고 적용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를 뛰어넘어 한국 건축의 고유한 정체성을 탐구하고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한국의 전통 건축뿐만 아니라 현재의 문제 많은 현상들과 사례, 혼재된 미학 분석, 과거와 융합하는 연구 활성화, 동시에 해외 사례를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방식의 교육이 절실하다. 더불어 낯설고 새로운 실험적 건축 이론과 철학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교육 환경 필요하고 개방적인 토론 문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치기 어린 실험적인 건축 프로젝트 지원


건축 운동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실험적인 건축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젊은 건축가들이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건축계 스스로도 다양성에 노력해야 하고 배타적 자세를 버려야 한다.


건축, 사회를 분석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의 도시, 건축을 이야기하려면 사회의 변화와 현상을 알아야 한다. 건축 정체성은 그 시대를 분석하고 알아야 찾아낼 수 있다.


건축 운동은 단순히 건물 몇 개를 짓는 것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 한국 건축계에서도 국내외 연구자들과 협력하여 새로운 건축 이론을 생산하고 논의하는 노력과 개방형 장을 만들어야 한다.


- 건축 관련 출판물, 세미나, 심포지엄 활성화

- 실험적 건축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환경과 문화 구성

- 공공 건축에서 실험적 프로젝트를 도입하는 정책 마련


건축계 스스로의 노력이 결과를 만들어낸다.


앞으로는 한국 건축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하고, 실험적인 건축 담론을 형성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건축 교육의 변화, 실험적 건축 지원, 담론 활성화 등이 이루어진다면, 한국 건축도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독창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부록 글


한국 건축학도와 건축가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생각을 연대하고, 과감히 드러내지 못하는 지나친 겸손함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묵언수행 중이다.

그래서 이들을 한번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젊은 건축가들의 반란—아키그램과 메타볼리즘

1960년대는 전후(戰後)의 폐허 위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시대였다. 과거의 질서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과감한 상상력을 펼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영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젊은 건축가들이 새로운 건축 운동을 일으켰다. 영국에서는 아키그램(Archigram), 일본에서는 메타볼리즘(Metabolism)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은 전통적인 건축 개념을 깨부수고 새로운 건축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아키그램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건축가들—피터 쿡, 데이비드 그린, 론 헤론, 마이클 웨브 등이 주축이 되었다. 그들은 현실의 도시를 답답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움직이고 변화하며, 살아 숨 쉬는 유기체로 상상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플러그-인 시티(Plug-in City)’와 ‘워킹 시티(Walking City)’ 같은 개념들이었다. 건축은 더 이상 영원불변한 기념비가 아니었다. 필요에 따라 바뀌고, 연결되고, 이동하는 존재였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SF 영화 속 미래 도시처럼 보였지만, 그것이야말로 젊은 건축가들의 자유롭고 대담한 상상이었다.

한편, 같은 시기 일본에서도 새로운 건축 운동이 싹트고 있었다. 1959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일본 건축가들이 모였다. 키쇼 쿠로카와, 키요노리 키쿠타케, 후미히코 마키, 아라타 이소자키 등이 그 주역이었다. 그들은 일본의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도시와 건축이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마치 생물처럼 건축이 성장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메타볼리즘(신진대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중에 기성 건축가가 되어 그들의 생각을 현실화한 ‘나카긴 캡슐 타워’는 작은 캡슐 유닛들이 조립되고 교체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이는 마치 세포가 분열하고 새롭게 재생되듯이, 건축 역시 변화할 수 있다는 개념을 실현한 것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기하학적 형태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아키그램과 메타볼리즘—이 두 건축 운동은 같은 시대, 비슷한 연령대(20~30대)의 건축가들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접근 방식은 달랐다. 영국의 아키그램이 테크놀로지와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건축을 실험적인 개념으로 풀어냈다면, 일본의 메타볼리즘은 전통과 현대, 그리고 건축의 지속적인 변화를 탐구했다. 그러나 두 운동 모두, 당시 젊은 건축가들이 기존 질서에 도전하고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하나의 흐름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곧바로 현실에서 구현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키그램의 개념은 현대의 모듈러 건축과 스마트 시티 개념으로 이어졌고, 메타볼리즘의 유기적 성장 개념은 지속 가능 건축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젊은 시절, 가장 대담했던 그들의 상상력은 결국 건축의 역사를 바꾸는 씨앗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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