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말하는 사람이 주도하는 한국건축

일하는 건축가들을 업자로만 보는 기형적 구조에 대하여

by 홍진

아마추어 건축 VS 프로페셔널 건축


건축은 이론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종이 위에 그린 선, 발표장에서 나누는 담론, 책 속의 철학은 실제 공간이 되지 못하면 공허하다. 건축은 결국 땅에 닿아야 한다. 설계 도면은 공사 현장의 먼지를 마셔야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종이 위의 선들이 실제 만들어지는 과정은 여러 사람들의 공조 속에서 가능하다. 건축이 왜 그 사회의 샘플이냐고? 그것은 그림의 선들을 이해하는 수많은 장인과 시공자들, 관계자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제도와 정책, 자금과 금융, 재료의 기술과 건설의 기술등 모든 것이 총망라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건축은 이상과 현실의 싱크로율이 높을수록 성과가 좋은 이유다.


건축이 그림으로, 이론으로, 철학으로 이야기할 때는 서생의 범위지만 실체화되는 것은 땀과 노동의 결과다. 많은 나라에서 건축은 이런 총아로 집결되어 만들어지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가적 건축 프로젝트를 공모할 때는 건축가들이 심사와 평가를 주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건축에 관한 정책이나 담론의 장에는 정작 ‘현장에서 땅을 밟는 이들’, 즉 실무 건축사들의 자리가 없다. 온갖 국가적 또는 지자체의 세미나에 이들 현실의 건축가들은 초대받지 못하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대부분 대학교수들이다. 물론 이들도 글로벌하게 알려진 스타건축가들의 들러리이긴 마찬가지지만...


가르치는 자들은 끊임없이 발언하지만, 짓는 자들의 목소리는 지워진다.


이러한 기이한 현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문제다. 정부가 주관하는 건축 관련 공청회나 정책 간담회, 국회에서 열리는 도시 및 건축 관련 포럼의 패널을 살펴보면, 거의 예외 없이 다수는 대학 교수들이다. 그들은 도시설계와 건축, 주거정책, 공공건축 등 다양한 주제를 논한다. 물론 교수들의 의견이 가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론적 정리와 비판적 시각은 언제나 중요하다. 다만 이론의 역할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쌓인 현실의 경험이 재구성되고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원점에서 출발하는 비 생산적 순환구조로 수십 년째 이어지는 것이 한국 건축이다. 결국 한국건축이 기술이나 양이 아닌 질적인 내용면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에 발 디딘 목소리’가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실무 건축사는 매일같이 협의와 조정, 허가와 심의, 예산과 공법, 시공과 하자 문제 사이에서 줄타기한다. 그들은 건축이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굴절되며, 어떻게 포기되는지를 실시간으로 경험한다. 반면 교수들은 이론적 패러다임과 이상적 모델을 통해 건축을 말한다. 이러한 차이는 절대적으로 보완적인 것이어야 함에도, 오늘의 한국에서는 전자가 후자에게 밀려 철저히 주변화되고 있다. 이론과 현실은 균형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청취하고 채취하는 발주자들의 시선은 현실이 아닌 껍데기 이론에 주목하고 있다.


현실 건축가들의 한계, 극복해야 할 지점


실무 건축사들이 정책과 담론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전문가’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학문적 배경과 직책을 통해 전문가성을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교수라는 직함이 주는 권위는 실무의 경험보다 우위에 있다. 이는 행정 관료들이 정책 자문을 구할 때, 무의식적으로 ‘교수님’만 찾게 되는 구조를 만든다.


둘째는 실무자의 시간 부족이다. 건축사 사무소를 운영하거나 실제 설계를 맡고 있는 건축사들은 회의 한 번 참석하기 위해 하루를 통째로 비우는 일이 쉽지 않다. 프로젝트 일정, 시공사와의 조율, 클라이언트 미팅 등은 그들을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게 하지 않는다. 반면 교수들은 일정 조정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발제를 위한 자료 수집이나 발표에도 익숙하다. 이런 현실은 자연스레 교수 중심의 구조를 더욱 공고히 만든다.


셋째는 실무자 스스로 담론 형성에 적극적이지 못한 구조적 한계다. 건축계 내부에서도 실무는 곧 시장이고 수주이며, 담론은 별개의 세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일부 건축사들이 글을 쓰거나 비평에 참여할 여유를 갖기 어려운 환경에서, 말하는 자와 짓는 자는 서로 평행선을 걷게 된다. 심지어 건축사들 사이에서도 이런 노력들이 폄훼되는 일들이 많다.


문제는 '교수'편향의 건축 여론 채취가 아니라 전시용 건축여론 채취 행위이다.

그런데 한국의 건축 담론 구조를 들여다보면, 실무 건축사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의 언어’도 종종 외면당한다. 한국의 현재를 연구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고, 현재를 이론화하고 주장하는 경우도 드물다. 그마저도 발표의 기회가 부족하고, 강사로 초빙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내부의 연구자들, 학자들, 교수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이들에게 주도권이 있어본 적이 없고, 발언권도 지극히 제한되어 있어서 이들 자체의 존재감이 없었다. 덕분에 일반인들 시선에 "한국"을 연구하는 건축학자는 부재한 것이다. 최근에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언급되지만, 여전히 "한국"의 현재 진행에 대한 이론적, 미학적, 학문적 분석과 자료는 부족한 편이다.

때문에 건축계의 권위는 때때로 국경 밖에서 수입된다. 특정 잡지나 학계, 그리고 정책 토론회 자리에서는 외국의 유명 건축가들—노먼 포스터, 렘 쿨하스, 자하 하디드 생전의 사례까지—이 자주 언급된다. 이들은 한국 건축의 미래를 말하는 포럼에서 영상으로, 혹은 직접 초청되어 발언한다. 물론 그들의 작업은 훌륭하다. 그러나 그들을 마치 무조건적인 기준처럼 모시는 태도, 혹은 국내 실무자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이들의 언어만 인용하는 담론은 한국 건축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초청된 세계적 건축가들 중 일부는 오히려 한국 측에 역질문을 던진다. “왜 현장의 건축사들이 이 자리에 없는가?” “이 정책은 실제로 건축을 짓는 이들과 논의되었는가?”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이런 질문은 한국 사회의 건축 담론이 얼마나 이론 중심, 제도 중심, 타자 중심으로 움직이는지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초청받은 해외 건축가들의 질문/ 왜 당신들은 초대받지 못하는가?


“서울에는 강력한 에너지와 다양한 층위의 공간이 있지만, 이 에너지는 상향식으로 조직되지 않으면 쉽게 사라진다. 그런데 왜 그런 도시의 실무 건축사들이 이 자리에 없는가?”

다른 세계적 건축계 스타 건축가는, 한국의 근대 건축과 건축 정책이 “상징적 논의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건축은 상징이 아니라 시스템이다”라고 말하며, 현장의 논리와 정치의 언어가 괴리되는 상황을 비판했다.

심지어 자하 하디드 또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프로젝트 당시 한국의 설계·시공 현실을 경험하면서 “현실은 내가 설계한 공간보다 훨씬 복잡하다”며 “한국의 설계자들이 이 과정을 통제할 권한이 거의 없어 보인다”는 말로 한국 건축의 구조적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마나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으면 까칠하기로 유명한 일본의 프리츠켜상 수상자인 야마모토 리켄은 한국의 행정가와 관료들에게 "한국 건축사들에게 더 불리한 나라"라고 지적하면서 "당신들의 훌륭한 건축가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하라"는 취지의 말을 했을까? 하긴 이런 말도 우리 내부에선 수도 없이 한 말인데, 그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처럼 세계적인 건축가들은 한국 건축계가 이론과 이상, 외부의 시선을 좇는 것에 대해 오히려 비판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모시기에 급급하고, 그들의 이름을 빌려 정책을 정당화하거나 새로운 방향을 정립하려 한다. 정작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당신들 내부의 목소리’인데 말이다.


이러한 구조는 다시 실무 건축사의 주변화를 강화한다.


우리 내부의 실천가는 초대받지 못하고, 밖에서 온 이름만이 목소리를 갖는다. 그 속에서 한국의 건축은 점점 더 현실에서 멀어진다. 현실의 복잡성과 싸우는 건축사들은 설계와 시공의 일선에서 발언권을 잃고, 결국 정책은 현실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런 사례의 극단을 국가 조직인 조달청이 진행하는 설계경기 심사위원 구성에서 발견한다. 그들의 시선에서 "해당 업자"인 건축사들에게 심사권을 줄 수 없다는 논리는 이들 공무원들 역시 비전문 아마추어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실무 건축사 (건축가로 하던 상관없다)를 단순한 ‘실행자’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들은 건축적 판단을 현실에 실현하는 기술자이자 전략가이며, 매일같이 수많은 제도적 함정 속에서 최선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실천가들이다. 그들의 언어는 거칠 수 있고, 말보다 손이 빠르며, 발표보다는 설계도에 익숙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손끝에서, 우리가 사는 도시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실무의 과정에서 수많은 법과 제도 속에서 갈등하고 고민한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철학이 존재한다. 이를 들어봐야 하며,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실무자의 언어로 정책을 말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실무 건축사들이 논의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국토부나 지자체가 주관하는 건축위원회나 정책 자문단 구성 시, 일정 비율 이상을 반드시 실무 하는 일선의 경험자로 건축가들 (법적 책임자인 건축사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배치되어야 한다. 또한, 실무자의 현실적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중간 조직 – 지역과 세대를 구성하는 실무 건축사들의 네트워크가 보다 체계적으로 정책과 담론의 장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도 마련되어야 한다.


건축은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말이 건축을 지배할 때, 우리는 말에 집을 짓게 된다. 집이 무너지면 사람은 다치지만, 말이 무너지면 공동체가 무너진다. 그러니 이제는 말하는 사람과 짓는 사람이 함께 말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공간이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정책도 가능하다. 그 첫걸음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중요한 의사 결정과 기획의 자리에서, 일선의 건축가들을 말의 자리에 초대하는 것이다. 이론의 학자나 교수와 같은 비중의 현업 전문가들인 건축가들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한국 건축이 성장하려면 기억이 축적되고, 경험이 공유되어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디카건축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