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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사과 Jan 01. 2021

그 겨울, 이 와중에 정주행한 드라마

끝나지 않은 이야기, 넷플릭스 시리즈 <더 크라운 The Crown>

이사가기 전에 많이 남겨놓고자 했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의 사진을

올 겨울은 참 추웠다. 


기온이 낮진 않았던것 같다. 생일을 맞아 뭐라도 하고 싶어 가지고 있던 해바라기 씨앗을 심었다. 해바라기를 너무 늦게 심긴했다. 해바라기가 해가 있어야 자라는 꽃임을 모르지 않았을텐데, 그냥 무작정 뭐라도 하고 싶어 가진 씨앗을 심었다. 그래도 새싹은 자라 주었다. 기온이 생각보다 낮지 않았고, 해가 꽤 비췄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내가 심은 씨앗이 튼튼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체감은 꽤 추웠던 겨울이다. 프랑스에서 확진자가 심각한 수준으로 급증함에 따라 11월부터 우려하던 전국 봉쇄가 시작되었다. 계획하던 일은 결국 진행이 무산 되었고, 나는 다시 소득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예치했던 자금을 돌려받아 2020년 하반기를 버티려고 했었는데, 이 역시 서류 누락과 약속 연장등으로 여러 달에 걸쳐 막혀 있었다. 학교는 결국 온라인으로 돌아섰고, 나는 집 안에서 공부하고, 집 안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마음이 분주했고, 허전했고, 동시에 두려웠으므로 마음이 늘 추웠나보다. 



좀 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아 마음이 답답하거나 닥쳐온 현실이 두려울 때,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춰두고 그저 자라나는 해바라기를 바라 보거나, 외출 증명서를 써서 집 근처 몽파르나스 묘지까지 걸어 묘지 사이사이를 산책하거나, 냉장고에 남은 음식을 뒤져 저녁을 차리고 넷플릭스에서 볼만한 영상을 골랐다. 그러다 만났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2세의 인생을 담은 넷플릭스 시리즈 <더 크라운 The Crown> 을.


출처 : the crown 공식 페이지, 남편인 필립 에든버러 공작과 아내인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1. 20세기 영국과 주변 국들의 역사를 담은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삶.


드라마는 총 4시즌으로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Alexandra Mary Windsor) 가 필립공 (Philip Mountbatten)과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당시 엘리자베스 2세는 계승 서열 1순위로 아버지를 왕으로 둔 조지 6세의 장녀, 즉 영국의 공주였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흥미롭다고 시작했던 것은 바로 시대 상황 묘사인데 1947년, 제 2차 세계 대전의 전후 역사를 흥미롭게 묘사해서 계속 당시 상황을 공부해 가면서 봤다. 조지 6세 사후 왕위에 오르고 처칠을 비롯한 여러 총리와 논의하며 영국 내외의 정세를 살피는 모습부터, 여왕이기 이전에 남편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의 내적 갈등과 고민까지 담아냈다. 사실 정말 좋은 강연, 좋은 투어, 좋은 소설, 좋은 영화, 좋은 드라마는 보는 동안의 몰입도보다 주제를 더 알고 싶게하는 관람자의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 더 크라운이 그랬다. 주인공은 엘리자베스 2세, 그리고 주제는 엘리자베스 2세의 일생이나 이 드라마는 1900년대를 통 틀어 왕가의 관계, 스캔들, 영국의 정치 공방, 기후문제, 국제 관계등을 다양하게 "알고 싶게" 만들었고 덕분에 20세기를 전반적으로 "알 수 있게" 만들어 준 드라마였다. 이런 생각은 남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는지 골든 글러브와 에미등의 다양한 대회에서 다양한 부문의 상을 섭렵 하였다. 


넷플릭스를 보며 맛있는 것을 먹는 이 시간이 올 2020년의  큰 낙이었다. (돈 못번다고 징징대면서 잘도 먹고 살았다)


더 크라운 공식 홈. 시즌 3부터 중년의 엘리자베스 2세의 역할을 맡은 올리비아 콜먼(중앙) 그리고 그녀 못지 않게 이 시대에서 중요한 인물인 다이아나비 (좌) 마거렛 대처 (우)

2. 다양한 역사적 인물의 등장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보니 다양한 아는?! 인물들이 나오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그 중 여성 출연진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시즌 1에 등장한 케네디 JF Kennedy 의 아내 재클린 케네디 Jacquelin Kennedy는 물론이고 찐 자매 모드를 보여주는 같으면서 다른 매력의 여동생이자 조지 6세의 차녀, 세기의 스캔들을 보여준 마거렛 공주 Margaret Rose, 영국 최초의 여총리인 마거렛 대처 Margaret Thatcher, 그리고 만인의 연인인 다이애나 비 Diana Spencer 까지... 알만한 이름의 유명인들을 각 에피소드에서 집중 조명하여 단지 역사적 역할 뿐 아니라 개인의 삶을 다각화하여 조명하였다. 


윈스턴 처칠과 다이애나비, 찰스 왕자 두 사진 모두 왼쪽이 실존인물, 오른쪽이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또한 다양한 인물들을 퀸 엘리자베스 2세와 대치시키며 영국인들이 입헌 군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이어왔는지, 이 입헌 군주제에 대한 자부심을 뿌리 굳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이해하게 했다. 특히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 여왕의 왕관을 쓰고 처음 맞았던 때의 총리인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은 존 리스고 John Lithgow가 너무나 잘 연기해 준 덕분에 몰입도가 좋았다. 이번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가장 정감갔던 인물이 처칠과 다이아나 였는데, 그들의 이름만 알았던 내 과거를 조금은 후회하기도 했다. 대차 보이는 성격의 처칠은 사실 우울감이 큰 인물이었고, 그림을 그렸으며 이는 꽤 수준급이었다. 학교 다닐때는 굉장히 산만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으로 부터 주의를 많이 받았다는 것도 신기했다. 다이아나비에 대해서도 다시 알게 되었는데, 수만명의 군중을 사로잡은 그녀의 매력이 그녀가 원한 단 한명의 사람 자신의 남편을 사로잡기 힘든 상황이었다는게 안타까웠다. 그녀가 맞이한 사랑을 갈구하는 삶과 그것을 견뎌내는 방식, 또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인간애를 가진 순수한 마음이 관심을 끌었다. 실제로 더 크라운을 보고 다이아나의 삶에 매료 되어서 몇일동안 넷플릭스와 유투브에 있는 다이아나와 관련된 다큐들을 모두 봤다. 이때 눈물을 닦느라 화장지 한 통을 다 쓴것 겉다. 


더불어 다이아나의 당시 패션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이 드라마가 영국의 역사를 관심 가질 수 있게 다양한 인물의 삶과 애환을 고루한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고 패션과 배경음악 장면전환 등으로 탄탄한 스토리 라인과 더불어 극을 더욱 스타일리쉬 하게 다방면으로 신경쓴것이 보였다. 


왼쪽은 실제 다이아나 오른쪽은 극중 다이아나의 모습을 한 엠마 코린 (사진 출처: siakap) / 가장 오른쪽은 엠마코린 인스타그램에서 발췌


3.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배우들의 연기


사실 보면서 몰입도를 높인것은 실물과 비슷한 몸짓과 말투를 갖춘 배우들이었다. 그것이 악역이든 좋은 역할이든 호감을 이끌어 내어 캐릭터의 감정에 몰입하게 만든 것인데 앞서 이야기 했던 처칠 역의 존 리스고도 그랬지만 이 드라마에서 눈에 띈것은 찰스 왕자 Charles Philip Arthur George 역할을 했던 조시 오코너 Josh O'Connor 였다. 극 중 웨일즈 Wales 에 가서 교수와 웨일즈어로 스피치 연습을 하는 에피소드 라던가, 다이아나와 카밀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유부단함 등 여자로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이 외에도 찰스의 어린 아역들도 호감어렸다. 


찰스 왕자의 청년기 이외에 가장 많은 눈물을 쏟게 만든 에피소드는 퀸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인 필립공 Prince Philip, Duke of Edinburgh 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 이기도 했는데, 나치 시절의 독일과 주변 국가들 혹은 더 나아가 유럽의 근현대사의 맥락을 짚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어린시절의 필립공을 연기한 Finn Eliot도 인상적이었고 시즌 1, 2에서 퀸 엘리자베스역인 클레어 포이 Claire Foy 와 호흡을 맞춘 필립공인 맷 스미스 Matthew Robert Smith, 시즌 3, 4에서 중년의 필립공이 된 토비어스 멘지스 Tobias Menzies 필립 역할은 모두 매력적이었다. 


이 외에도 마거렛 대처 역의 Gillian Leigh Anderson, 중년의 마거렛 공주인 헬레나 본햄 카터 Helena Bonham Carter 등 누구 하나 열외로 할 수 없게 완벽한 연기를 보여 주었다. 



좌: 찰스 왕세자 역을 맡은 조시 오코너, 중: 시즌 1의 어린 찰스 왕자, 앤 공주, 우:  루이스 마운트배튼, 어린 필립공


4. 그러니까, 선을 지켜. 선을. 


좋아하는 작가 강화길은 단편 선베드에서 이 문장을 계속 반복했다. "그러니까, 선을 지켜. 선을."


우리는 간혹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각 에피소드를 통해 현명한 결정을 하기위해 여러 로열 패밀리들이 무너지고 일어서고 화해하고 발산시키고 싶은 감정을 눌러두는 것을 보여준다. 신과 인간의 중간에, 로열 패밀리가 있다. 가 과거 세대의 왕족에 대한 이해였다면, 이 시리즈에서는 책임 의식을 가진 일정 부분의 역할을 맡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라는 것에 포인트를 맞춘 것일까. 생각했다.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입헌 군주를 유지하며 영국 이라는 나라의 특별성과 건재함을 말하는 그들은 늘 중립적이어야 하고, 생각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아야 하며, 동시에 기품있어야 한다. 로열 패밀리 로서의 삶, 그 고충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아름다운 파리의 거리와 크리스마스 시즌에 꼭 먹어야 하는 부쉐 드 노엘 Buche de Noël


총 4시즌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게다가 시즌 하나를 보면서도 왕실가계 뿐 아니라 배경이 되는 국제 이슈를 찾고 그게 계기가 되어 하는 공부와 연관 지어 정리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던 것 같다. 할 일이 많은데..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지만 크리스 마스가 곧 다가오는 2020년 11월 그 어느날 밤에 맛있는 먹거리를 두고 앉아 멋진 영상과 스토리, 그리고 음악으로 잠시나마 답답한 마음을 환기시켜 주고 더 알아내는 것의 재미를 선물해 주었던 더 크라운은 내 기억에 깊이 남는 올해의 드라마임에 틀림 없다. 사진을 발췌하려 이런 저런 사이트를 뒤졌는데 영국의 가디언지와 같은 각종 매체 역시 더 크라운이 실제와 정말 닮은 드라마임을 여러 칼럼에 담아 기사로 실었다. 드라마는 엘리자베스 2세도 즐겨 본다고 하는데 자신의 일생을 하나씩 되짚는건 어떤 기분일까. 이해 받는 기분일까. 생각해 봤다. 



https://www.netflix.com/browse?jbv=80025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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