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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사과 Sep 07. 2020

무심코 던져진 조각과 꾸미지 않은 아틀리에가 주는 힘

세상의 모든 미술관 - 프랑스 파리, 부르델 미술관

브루델 미술관은 정말 갑작스레 들렀다. "지나간 계절에"라고 이름을 바꾼 집 앞 108 카페에서 공연히 컴퓨터만 만지작 거리던 수국이 예쁘게 핀 6월에. 이제 와서 쓰기 민망한 2017년의 어느 날 이지만, (최근에 다시 한번 방문하여 최근 사진과 얽혀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파리의 숨겨진 장소들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당시 나는 나름 파리 4년차 였고, 또 나름 여행자들에게 파리를 소개하는 직업을 가졌었지만 몽마르뜨의 역사, 루브르의 역사, 개선문의 높이 따위는 알아도 정작 나만 아는 파리의 숨겨진 장소 따위는 몰랐다는걸 깨달은 때였다.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의 숨겨온 매력에 설레여 하는 듯 파리의 숨겨진 장소와 작은 미술관들을 방문 하던 때, 너무 집 근처라 자꾸 미뤄왔던 브루델 미술관은 정말이지 무료한 주말에 어디라도 다녀오자는 마음에 별 생각 없이 들렀다.


미술관은, 너무 미안하게도 정말 우리집 바로 옆에 있었다. 도보로 20-30분정도면 나오는 몽파르나스 건물에서 바로 옆 골목길로 1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되었는데 정말 사람 사는 집 바로 앞에 미술관이 있었다. 그 집에 살면 매일 아침 커피를 한잔 하며, 혹은 화분에 물을 주며 브루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네 하는 마음에 테라스에 앉아 여유로운 주말 오후를 즐기던 노부부가 부럽기도 했다. 


1. 앙투안 브루델 Émile Antoine Bordelles (30 Oct 1861 – 1 Oct 1929) 


국내에선 앙투안 브루델의 작품 그 자체보다 "로댕의 제자" 라거나 "프랑스의 3대 근대 조각가" 중 한 명 이라는 수식어로 더 잘 알려있는 듯 했다. 


실제로 로댕의 아틀리에에서 오랫동안 사제지간으로 지내왔고 브루델의 작품은 어릴적 어깨너머로 배워온 아버지의 가구 만드는 모습과 로댕의 영향이 어쩌면 가장 크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브루델 미술관에 들어가면 큰 문구로 그가 로댕에게 보냈던 편지의 일부분이 새겨져 있다. 


"조각의 삶에서 표면적인 계획은 우연에 불과하지만 구조적인 내면의 계획은 운명인것 같소"


일요일이었는데 아이들이 아뜰리에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과연 프랑스에서 활동한 굵직굵직한 예술가들 (쟈코메티, 앙리마티스)의 선배이자 스승인 브루델의 명성에 걸맞게 박물관에 들어서서 왼편으로 가면 그가 살아 생전 작업했던 큼직큼직한 작품들이 전시된 그랜드 홀이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주로 청동으로 만들어져 부에노스 아이레스, 폴란드, 그리고 파리등 여러 국가의 중요한 장소에 세워져 있는데 작품들은 주로 켄타로우스나 사포, 헤라클레스, 페넬로페등 신화적 주제를 가진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브루델의 주요 작품들을 전시한 Grand Hall



2. 정원 사이사이 무심코 조각

최근에 다시 방문했을 때의 정원


브루델 미술관에 처음 들어갔을 때 숨이 턱 하고 막히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잘 조경된 정원 사이사이 무심하게 흩 뿌려진듯 자리한 조각들이 만들어낸 형용할 수 없는 조화로운 공간이 가슴을 흔들었다. 


일정하지 않은 크기의 작품들과 아무렇게나 피어난 듯한 꽃과 나무와 열매들이 있는 아뜰리에라니. 


왼쪽은 Le Fruit (1902-1906) 오른쪽은 Le cheval du Général Alvear (1913-25)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지만 분명 의미를 두고 그 자리에 위치한 조각과 나무들이었다. 


무심코 정원을 걷다가 마치 숨박꼭질을 하듯 튀어 나오는 에로스의 모습을 한 사랑의 요정(?) 은 장난스러웠고, 무화과 나무에 휩싸인 Alvear 장군의 기마는 웅장했다. 그리고 과일을 든 여인상, 퓌비 드 샤반느의 희망의 여신에서 영감을 받았을, 어쩌면 아담과 이브에서의 이브의 메타포 일지 모르는 이 작품은 정원의 정 중앙에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고 우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amourette (vers 1912)



3. 고전으로의 회귀

사포 (sapho)

브루델이 특히나 임팩트 있게 느껴졌던 이유는 근대의 조각가임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주제와 형상을 한 작품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탄생 시켰다는 점 때문이다. 


조금 전 언급한 과일을 든 여인상 (사실 원제가 le fruit 이기 때문에 굳이 해석하자면 과일, 혹은 과일의 요정 등이 될 수 있겠지만 브루델이 여러개의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가장 근접한 의역을 붙였다.) 같은 경우는 고대 그리스 작품에서 주로 보여주는 콘트라 포스토에 기둥을 덧대는 형태에 근대의 제스추어를 가미하여 세련된 방식의 몸 동작을 보여주고 있고, 죽어가는 켄타로우스는 고대 로마에 자주 조각되었던 고전적인 켄타로우스에 움직임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며 마치 팔이 꺾여 있는 듯 보이지만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는 형태미를 강조했다. 


지난 포스팅에 오르페를 언급했다면, 이번에는 사포와 켄타로우스. 최초의 여성 시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포는 고대 그리스의 여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한참 낭만주의 작품들에 빠져있을 때 샤세리오의 사포를 찾겠다고 오르세 미술관의 전시관을 계속 맴돌다 발 밑에 전시된 아이패드만한 크기의 작품이 처음 알게된 사포 였고 (이중섭의 은지화 못지 않은 작은 작품이었다... ) , 생미셸의 자주가는 영어 책방의 한켠에서 발견한 사포의 시선이 두번째였다. 여러 설들이 많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어쩌지 못한 마음의 아픔을 시로 노래했고, 결국 가슴앓이를 이기지 못해 절벽에 몸을 맡긴 고대 그리스의 여자 음유시인 정도로 정의 내렸기에 어느 미술관이든 사포를 만나면 가슴이 찌잉 하고 울려온다. 


고전적 스토리를 좋아하고 음악광으로 알려진 브루델도 이와 비슷한 감정으로 사포나 켄타로우스를 제작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파리의 작은 미술관, 특히 조각가의 아틀리에에 늘 빠질 수 없는 수국


4. 작가의 아틀리에

브루델이 사용하던 날것 그 자체로의 아틀리에

실제로 브루델이 사용했던 이제 100년이 다 되어가는 작업실에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당시 사용하던 유리, 벽, 나무 틀등 바꾸지 않고 모두 그대로라고 한다. 또한 그가 해왔던 작품의 방식과 소재별 차이점등을 알 수 있게 자세히 소개해 주는 전시관도 마련되어 있다. 홈페이지를 간혹 들어가는데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교육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었다. 기회가 되면 올 가을에는 하나쯤은 꼭 체험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마티스나 쟈코메티등도 아틀리에에 자주 찾아와서 작품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다고 한다. 작은 방에 빼곡히 전시 되어있는 브루델의 작품을 보니 가슴이 뛰었다. 아틀리에 내부에 전시 되어있는 작품들은 초기 작품이 꽤 있어 로댕과 닮아있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이런 작품들을 사이에 두고 커피 따위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을 모습이 눈 앞에 선했다.


정말 날이 더웠던 6월 이었다. 오른쪽은 인상 깊었던 레다와 백조를 조각한 부조


5. 베토벤에게 바친 조각들

베토벤의 음악이 조용히 울려 퍼지던 햇살 좋은 통로


최근에 다시 찾았을 때에는 곧 있을 전시 준비로 베토벤 상을 볼 수 없었다.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지 250년이 되어 그를 기념하기 위해 9월 19일부터 (곧이다!!) 내년1월 17일까지 "Bourdelle devant Beethoven"이라는 전시회가 열린다고 한다. 해당 전시회를 통해 베토벤을 지극히도 동경하던 브루델이 빚고 또 빚었던 고통을 견디고 끝내 환희의 찬가를 부르던 베토벤의 흉상과 두상들을 사진, 영상자료등과 함께 전시한다고 한다. 베토벤의 삶을 알고, 이해한다고 말해온 부르델이 1888년부터 1929년 생을 마감할 때 까지 약 80여개의 베토벤 조각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베토벤의 음악에, 아니 실은 그의 일생에 심취해 있었는지 알 수 있을만한 대목인듯 했다. 

낮과 밤
왼쪽은 그 유명한 궁수, 오른쪽은 작업하는 므슈 로댕
왠지 계속 보게 되었던 눈빛

6. 그의 삶이 고스런히 드러난 곳, 브루델 박물관

 


그가 실제 먹고 자고 했던 곳으로 그때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그의 영감의 원천, 두번째 아내 클레오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사진도 오래된 벽난로 위에 곱게 놓여 있다.


탐났던 스탠드, 그리고 오래된 목조 장식장 안에 가득한 브루델의 조각.


목공이었던 그의 아버지 영향인지 적당히 절제된 우아함이 엿보이는 목조 장식장과 벽, 좁은 방에 가득한 그림과 조각이 과연 부르델 답다 했다. 로댕의 정원은 절제되어 있고, 로댕의 아틀리에는 화려하며, 로댕의 작품이 요동치는 열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면, 부르델의 정원은 틀에 박혀 있지 않고, 브루델의 아틀리에는 소박하며, 브루델의 작품은 가슴을 짓누르는 삶의 고통을 그저 받아들이고 내면에 잘 눌러 담은 듯 하다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들어가자 마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던 실내.  


정원에 들어서면서, 발소리가 온 실내에 울려 퍼지던 오래된 나무 바닥을 밟으며 그의 오래된 아틀리에를 걸으면서, 베토벤의 곡이 울려퍼지던 햇살 가득한 통로에서, 또 그가 사용하던 가구와 커튼이 그대로 달린 전등이 예쁜 그 방 안에서 문득문득 앙 다문 입으로 묵묵히 조각을 하고 생각하고 음악을 들었을 그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 했다. 그가 베토벤에게 그랬듯, 나도 그가 살아온 공간을 만나고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부르델이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살아 갔을지 왜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미술관을 꼽으라면 어쩌면 부르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고전을 사랑하고 베토벤을 좋아하는 그의 정원과 아틀리에를 만날 수 있어 굉장히 뿌듯한 오후였다. 


1층(우리식 2층) 으로 올라가면 볼수있는 광경


참고 사이트 : https://www.bourdelle.paris.fr/fr


현재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공식 사이트에 집에서도 할 수 있는 활동 프로그램이 많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수시로 확인해 봐도 좋을 것 같다. 


Musée Bourdelle
18, rue Antoine Bourdelle
75015 Paris.

Tél : 01 49 54 73 73
Fax : 01 45 44 21 65

개관: 화요일 - 수요일 de 10h à 18h. 

휴관: 월요일

입장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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