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내 마피아 게임을 시작하며, 한국인 직원들끼리 새벽마다 비밀리에 cctv 검수를 시작했다.
설치된 cctv만 마흔 개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도난 정황을 포착해내기 위한 싸움은 약 한 달가량 이어졌다.
카메라에 무언가가 잡히기 시작한 건 그때쯤부터였다. 모든 작업자들이 쉬는 시간을 갖는 동안 유독 출고작업을 지속하는 몇몇이 눈에 띄었다.
대게 출고 작업자들은 본인에게 할당된 피킹 리스트 (상품 출고 목록)를 모두 끝내려는 습관이 있어 간혹 쉬는 시간을 건너뛰기도 하는데, 공교롭게도 매번 동일한 작업자들이 쉬는 시간에 재고 보관 공간을 활보하고 있었다. 동고동락하는 동료들을 의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불쾌하면서도 내심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을 때를 걱정하고 있었다. 할랄 간식을 나눠먹던 그들이 범죄자가 되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어떻게 마주한단 말인가.
그 후로도 몇 주간 나와 몇몇 한국인 직원들은 의심이 되는 동료들을 업무시간에 몰래 감시하고, 그들이 퇴근한 이후에는 cctv로 동선을 추적했다. 지금 느끼는 죄책감이 부디 죄책감으로만 끝나길 그토록 바랬지만 결국 며칠 내 덜미를 붙잡고야 말았다. 주범은 출고팀 관리를 담당하는 현지인 매니저였다.
그와 몇몇 작업자들이 합심하여 마치 주문이 들어온 것 마냥 피킹 리스트를 조작한 후, 태연하게 출고작업을 하듯 빼돌릴 상품들을 박스단위로 쓸어 담았고, 전용 화물차량까지 수배하여 창고에서 실어나간 뒤 해당 차만 다른 목적지로 빼돌리는 수법으로 반년 동안 약 12억 수준에 달하는 재고를 횡령했던 것이었다.
그들의 치밀함과 우리의 허술함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의 상사는 즉시 경찰에 신고 조치를 취했고, cctv 영상 등 각종 증거가 난무하여 혐의까지 인정되었으나 결과는 집행유예였다.
싱가포르의 자국민 보호 위력은 실로 대단했고, 한낱 외국인 사업자에 불과했던 나의 회사는 속수무책으로 국제소송조차 진행해보지 못한 채 해당 직원들을 해고 조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한국인 관리자들에게 들이닥친 책임소재의 후폭풍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사무실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당시 범죄 주범이었던 매니저가 다른 회사에 취업 지원서를 제출했고, 이 회사에서의 경력을 떳떳이 기술하여 사실 확인 차 레퍼런스 콜이 왔던 것이다.
전화를 받은 나의 상사는 전화기 너머 인사담당자의 당황스러움이 느껴질 만큼 아주 짧고 단호하게 그의 범죄사실에 대해 전달했다. 그리고 그가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허공에 울려 퍼지던 그 둔탁하고 힘없는 소리는 아직도 나에게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