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물류회사의 창고(재고 보관용 선반, 랙 외 설비는 거의 없는 물류센터)에서 나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재고의 입출고 내역, 즉 수불을 일치화하는 것이었다.
창고 내에서 입고와 출고 작업은 동시에 이루어진다.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 출고 작업자는 주문된 상품들이 보관된 위치로 이동하여 해당 수량만큼을 빼내고, 입고 작업자는 출고에 차질이 없도록 해당 위치에 상품을 넉넉히 채운다.
창고에 상품이 입고되는 것을 +, 출고되는 것을 -로 보는 관점에서 시스템상의 입출고 내역과 실물의 최종 수량이 항상 일치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출고 작업자의 실수로 필요 이상의 상품을 피킹(보관 위치에서 재고를 꺼내는 것)하거나, 입고 작업자가 할당된 위치가 아닌 다른 위치에 상품을 적치(보관 위치에 재고를 넣는 것)하는 순간 태풍의 시초가 되는 나비의 날갯짓이 시작되는 것이다.
출고 작업자가 나에게 빨간 X 표시가 그려진 피킹 리스트(출고되어야 할 주문 상품 리스트)를 가져오면 그때부터 탐정 모드로 온 창고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무슨 수로 몇백 평짜리 창고에서 없어진 상품을 찾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인간의 행동 패턴은 매우 단순해서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 크나큰 위안이었다.
우선 해당 상품의 가장 최근 입출고 내역을 확인한 후, 말 그대로 해당 위치들을 하나씩 확인한다. 거짓말처럼 열에 아홉은 그 인근 어딘가에 작업자가 실수로 방치해 둔 모습 그대로 나타난다. 그 작디작은 립스틱 하나를 발견할 때의 희열이란..
물론 모든 물류센터가 이런 식으로 재고를 찾고, 맞추는 것은 아니다. 입출고 과정을 자동화하고 체계화하여 애초에 휴먼에러를 최소화하고 주기적으로 재고조사를 진행하여 수불 일치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아무리 큰 물류센터라 하더라도 재고 정확도(실제 재고의 수 = 시스템 내 조회되는 재고의 수)는 대체로 98% 이상을 유지한다.
다만 새로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자동화된 검열 시스템이 없거나, 설비가 없는 등의 경우 이렇듯 재고가 틀어지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며, 관리자들의 extra care가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재고 불일치에 미심쩍은 패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입출고 내역이 아예 없는 (주문이 발생하지 않았고, 새로 입고하지도 않은) 재고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은밀한 보고를 거쳐 매일 오전에 한 시간씩 랜덤 재고조사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관리자가 지정한 랜덤 한 구역 (예: 1번~12번 선반 랙)에 작업자들을 투입하여 실물과 전산 재고를 비교하는 작업이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무려 몇억 치의 재고가 창고 이곳저곳에서 사라져 있었다. 도난 외의 가능성은 생각할 수 없었고 문제는 누가, 어떻게 사방이 cctv와 작업자들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무려 몇천 개의 재고를 가지고 나갈 수 있었는가 였다. 이 어마 무시한 놈이 나의 동료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