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의 창고 입성기

첫번째

by facile

2015년 2월부터 나는 퇴사 의지를 굳혔다.

주말, 연휴 구분없이 일하는 것에 생체리듬이 적응되었고, 업무에 대한 부담도 낮아졌지만 매일 퇴근길에 혼자 퉁퉁부은 발을 보고 있을 때면 마음 한구석에 매워지지 않는 구멍이 생긴 느낌이었다. 그 구멍은 마치 날 바라보며 '니가 말한 도전이란 게 이 정도야?' 라고 묻는 듯 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어딘가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거라 믿으며 한인 구인구직 사이트를 수십번 들락날락 하기 시작했다. 한인식당, 한인회 사무업무 보조, 컨설팅 업무 등등 많고 많은 채용공고가 등록되었다 사라지길 거듭하는 며칠간 나는 단 한곳도 지원하지 못했다. 싱가포르에 올 때만 해도 나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두번째 스탭은 신중해야한다며 스스로를 타일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내 눈을 사로잡는 공고가 있었다.

포지션은 '입/출고 관리, 재고 관리, warehouse 신규 set up'.


어떤 관리를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어떻게 set up을 하는 것인지 관련 지식이나 경력이 없던 나로서는 뜬구름만 잡는 느낌이었지만 '재고 관리' 라는 단어에 사로잡혔다. 현재 근무지에서도 정기적으로 재고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매번 전산과 실물이 일치하지 않아 입/출고내역을 추적 후 일치화하는 작업에 애를 먹고 있었다. 대부분 재고조사가 있는 날 근무하는 것을 기피했지만 나에겐 오히려 세일즈의 기회를 얻는 것보다 틀어진 재고를 다시 맞추는 업무가 훨씬 흥미로웠다.


공고를 낸 회사를 검색해보니 물류 3PL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다. 3PL은 또 무엇인가..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이력서를 접수하기도 전에 회사의 정체와 내가 지원하고 싶은 포지션의 정체를 파악하는데만 꼬박 며칠을 더 보냈다. 그 회사와 내가 운명의 데스티니 '여야만 하는' 억지스러운 이유도 수십가지 떠올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회사로부터 면접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위치는 창이공항에서 MRT(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인 EXPO역 근처였다. 면접을 보러 갔을 때의 첫 느낌은 "오피스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였다. 설레이기도 하고 한국인 면접은 처음이었던 터라 말실수를 할까 긴장도 되었다.


XILIN OFFICE.png 구글 스트리트뷰로 엿보는 EX회사

JD(Jop Description, 업무상세설명)에서 보았듯, 창고의 set up이 진행중이라 그런지 건물 내 대형창고가 있었고, 여기저기 재고들이 쌓여있고 작업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전 회사에서 보던 재고보관실의 100배 정도 크기의 창고였다. 지게차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면접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그간 싱가폴에서의 경험에 대해 간략히 질문을 받고, 현지인들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지 어학실력에 대한 질의, 자기소개 등을 한 뒤 지원자 5명 중 최종 합격이 될 경우 연락을 준다는 얘기로 종료되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처음 지원한 회사였지만 왜인지 여기서 일해보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나 말고도 네사람이 더 지웠했다는 사실에 다소 위축되는 기분이었지만 회사는 많고 일자리도 많다는 가족들의 말에 위안을 얻으며 면접결과 통지만을 기다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여느날과 다름없이 출근하여 Fragrance Zone (향수판매대)에 서서 멍하니 쇼핑객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최종 합격 문자였다.

'그럼 그렇지, 우리는(?) 필연이었어!'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인력 충원이 시급하여 첫 근무일정을 2주 정도 앞당겨줄 수 있냐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나는 매니저에게 사직서를 접수했고, 주말 평일, 출근전, 퇴근 후를 마다하지 않고 틈날 때마다 새 회사로 출근하여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내가 맡았던 일이 평범한 사무직이었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피스잡을 꿈꾸며 취업한 곳에서 나는 트레이닝복과 청바지를 유니폼처럼 입고서 하루에 만보는 넘게 걷고, 뛰고, 실려(?) 다녔다. 도둑도 잡고, 파렛트 랙 위에서 쪽잠도 자고 20대의 사무직 로망과는 철저히 거리가 멀고 다이나믹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단한 다이나믹함이 나의 싱가폴 라이프를 계속 이어나가게 했고, 내 인생에서 손꼽을 수 있는 황금같은 시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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