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삶의 질을 높여보자

첫번째

by facile



"우당탕탕!"


나와 룸메이트는 조금 더 근무지에서 가까운 하숙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퀸사이즈 매트리스 하나를 채워 넣자 방에 빈 공간이 없어 천장에 설치해둔 가냘픈 행거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오늘 새벽에도 어김없이 무너졌다.


둘 중 하나는 그 소리를 듣고 다른 한 명을 깨워 행거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어느 날부터는 그냥 아침까지 내버려 두고 잤다. 그리고 행거의 봉이 휘어버려 더 이상 일으킬 수 조차 없게 되었을 무렵 우리는 다시 이사를 결심했다. (주인들을 잘못 만난 이 친구도 보내주기로 했다.)


한 달 내내 10시간씩 서서 근무를 해도 통장에 꽂히는 월급은 약 1600~1700 SGD(약 130~140만 원)였고, 화장실이 없는 일반 침실을 렌트하는 비용만 750 SGD(약 60만 원) 수준이었기에 각자의 방을 사용한다는 것을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어느덧 싱가포르에 온 지 1년이 넘어가고 있었고, 언제까지고 이렇게 '청춘의 열정(고생)'을 포장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새로운 보금자리 찾기의 과정에서 알게 된 싱가포르 주거형태는 한국과 사뭇 달랐다.


1. HDB (대부분의 싱가포리안들이 거주)

HDB FLAT

"Housing and Development Board(주택개발기구)"의 약자로, 해당 기구에서 지은 장기임대(보통 99년) 공공아파트를 뜻한다. 이후 설명할 민간주택이나 콘도미니엄보다 저렴하지만, 시민권자가 공급에 절대적 우선순위를 가진다. 영주권 조차 취득하지 않은 외국인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싱가포르로 취업을 하는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러운 수단이며, 방 하나에서 집 전체에 이르기까지 임대하는 조건에 따라 월세는 약 60만원에서 200만원 수준으로 형성되어있다.

※ 90년대 이전에 지어진 HDB의 바닥은 대부분 타일로 시공되어있다. 실제로 욕실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한국인들도 많이 보았다. 흰색 타일바닥으로 된 거실도, 거기서 욕실 신발을 신고있는 모습도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 EC

CONDO.png CONDOMINIUM

"Executive Condominium"의 약자로, 흔히 "콘도"로 불린다. 민간아파트인만큼 대게 수영장, BBQ장, 보안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자국민,외국인의 구분없이 매매가 가능하다. 시세는 강남 3구 민간 아파트들과 흡사한 수준이며, 콘도의 평균 월세는 면적에 따라 약 300만원~600만원 수준이다.

"Studio"라 불리우는 원룸형 EC도 간혹 있는데, 약 8~10평 기준 월세는 약 100~150만원 수준이다. 어떤 형태이든 EC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부러움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3. 주택

PVHOUSE.png PRIVATE HOUSE

단독, 연립주택, 타운하우스 등 다양한 형태가 있으나 부동산에서 거래되는 매물은 많지 않고 굉장히 비싼 편이다. 또한 싱가포르 시민권자만이 거래할 수 있다.


당시 나와 룸메이트의 주식이었던 동네 푸드코트의 5.5불(약 4-5천 원) 짜리 치킨라이스와 맥도날드의 3.6불(약 3천 원) 짜리 치즈버거를 포기하고 햇반과 라면으로 좀 더 끼니를 해결하는 대신 우리는 회사 근처 HDB의 방 2개를 렌트하기로 했다. 호스트는 40대 후반 화교부부였는데, 정갈하고 아기자기한 집 곳곳에 애정이 깃들어있는 듯했다.

내 방엔 무려 퀸사이즈 침대가 있었고, 문 두짝이 달려있는 옷장도 사용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기쁜 만큼 걱정도 앞섰다. 고정 지출이 두배 가량 늘어난 이상, 수입을 높여야만 했다.

아직은 어눌한 어학실력과 쌓아둔 스펙이라고는 없는 내가 이직을 할 수 있을까, 낯선 땅에서 오히려 더 가혹한 평가만 받으며 광탈 행진을 이어가진 않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내 공간을 유지하려면 부딪혀봐야만 했다.


1434895359348.jpeg 드디어 (타일바닥이 아닌) 내 방이 생겼고,
20150701_220037.jpg 다소 과한 애정을 쏟아 꾸몄다.
C360_2015-06-27-15-21-37-549.jpg 공간이 주는 행복이란 실로 엄청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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