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생애 첫 직장생활이 1년 내내 푹푹 찌는 나라, 싱가포르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근무지는 Somerset이라는 번화가에 있는 대형 쇼핑몰이었다. 미국 란제리 브랜드의 매장 판매를 맡게 되었는데, 출근 시 유의사항은 하나였다. "드레스코드 블랙"을 준수할 것.
평균 기온이 31도인 그곳에서 새까만 정장 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순간 이카로스처럼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곳의 지하철(MRT)과 쇼핑몰 내부는 24/7 에어컨으로 무장되어있었기 때문에 어느새 까만 긴팔 가디건은 내 몸의 일부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매장 근무는 shift 형태로, open/middle/close 총 세 가지였고 나의 첫 근무 스케줄은 close(마감)였다.
첫날은 온보딩 과정으로 해당 지역 매니저와 상품군, 업무영역, 주의사항 등에 대해 1:1 코칭을 받았다. 전 세계인들의 로망을 실현해내는 브랜드답게 매장은 너무나 화려하고 관능적인 향기가 넘쳐흘렀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나를 외계인 보듯 신기해했고, 상품진열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친절하고 섬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들의 설명을 들을수록 '오.. 이거 정말 재미나겠는데?', '매장 관리자가 되는 것도 괜찮은 듯 해' 라며 나는 김칫국만 거듭 들이키고 있었다. 고객들의 대부분이 여행객이라는 점도 근무지의 활기를 높이는데 한몫하고 있었다.
그러나 첫날부터 나에게 주어진 일은 고객들이 마구마구 헤집어두고 간 흡사 전쟁터와도 같은 BOGO(Buy One Get One Free의 줄임말로, 1장을 구매하면 다른 1장을 무료로 제공하는 행사이다.) 섹션의 속옷을 하나도 빠짐없이 개어두는 것이었고, 그렇게 나는 새벽 두 시까지 하염없이 속옷만 개었다. 귀여운 길고양이를 따라 호랑이 굴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손목은 물론이고 온종일 서 있었더니 다리와 허리가 온통 욱신거렸다.
무사히 마감 업무를 끝내고 건물에서 나와 택시정거장에 서 있자니 수많은 잡념이 비집고 나와 머리를 가득 채웠다. 비행기로 여섯 시간 반을 날아와서 새벽까지 속옷을 개고 있는 나의 선택에 대한 당위성을 누군가 찾아주었으면 싶었다. 역시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인가, '도전'이라는 포장 하에 나는 현실로부터 도망쳐온 것은 아닌지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모든 것을 돌이키자니 날이 선 비판들이 나를 한심한 인간이라며 얼마나 칼질할지 덜컥 겁이 났다.
'일단 가서 자고, 내일 다시 가서 냉정하게 판단해보자.'
그 화려한 매출 전쟁터는 나를 10개월간 품어주었다. 나는 매일 퉁퉁 부은 다리와 매출 실적 압박과의 전쟁을 이어나갔다. 월평균 급여는 약 120~140만 원 수준이었고, 룸메이트와 함께 사용하던 월 50만 원짜리 방값을 지불하고 나면 한 달 식비와 교통비를 내기에도 한참 빠듯했다.
함께 해외취업을 했던 동기들은 어느새 절반 가량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때의 나를 지탱해준 것들은 생각보다 소소했다. 나와 야식 탐구에 빠졌던 룸메이트, 스타벅스 커피도 사치였던 나에게 현지 친구들이 사주던 맥주와 사테(꼬치구이), 오며 가며 나를 찾아준 단골 고객들, 서로의 매출을 뺏기도 하고 채워주기도 하며 밀당의 진수를 체험하게 해 준 동료들 정도.
당시 매장 직원들의 임금을 결정했던 아주 잔인하고도 단순한 구조를 공유하는 것이 흥미로울 듯하여 간략하게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매장 구성원들은 고유의 번호(사원번호)를 부여받는다.
2. 매장은 배치된 상품군에 따라 '존(zone)'이라는 공간적 개념으로 분류되어있다.
(향수 존, 바디제품존, 속옷 존 등)
3. 각 직원들은 1시간씩 돌아가며 각기 다른 '존'에 배치되며, 본인이 배치된 존에서 최선을 다해 판매전략을 펼친다.
4. 내가 응대한 고객이 상품 구매를 결정할 경우 나는 나의 사원번호가 인쇄된 스티커를 상품 하단에 부착한 후 고객에게 전달한다.
5. 고객이 쇼핑을 끝내고 계산대로 가면, 캐셔는 상품 하단의 사원번호를 POS에 입력한다.
6. 해당 매출은 내 이름으로 등록되며, 그렇게 등록된 월 합계 매출이 나의 인센티브를 결정한다.
언뜻 보기에 매우 단순한 구조이지만, 위의 4번~6번 단계에서 직원들 간의 소리 없는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나에게서 상품을 전달받은 고객에게 다른 직원이 다른 상품을 추천하여 고객의 결정을 바꿀 경우 내 매출은 사라진다. 이건 매우 양호한 케이스이고, 다른 상품을 판매하며 몰래 내가 판매한 상품에도 본인의 스티커를 덧방(?)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모든 것은 샐러리(=생존)와 직결되어 있는 만큼 근무 시간에 동료애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월말이 다가오면 매니저들은 본인이 관할하는 매장 직원들의 매출 실적을 확인하고, 공공연하게 채찍질을 하기도, 우수 판매사원을 포상하기도 하며 동기부여에 대해 고심한다.
5개월 차에 접어들 때쯤부터 퇴사를 결정한 10번째 달까지 나는 매장에서 매출 목표 110~130%를 달성하며 인정받기 시작했다. 내 나름대로의 셀링 노하우는 '솔직하기'였다. 교육 자료들을 통해 숱하게 접한 1) 업셀링 전략도, 2) 크로스셀링 전략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고 어느샌가 나는 고객들에게 가감 없이 내 의견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매출 욕심을 내려놓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그 플로럴 향수는 (더 비싸지만) 당신에게 이런 이미지를 안겨줄 것 같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반값도 안 되는) 우드향이 당신의 첫인상에 훨씬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 "곧 출시될 신상 디자인이 있는데 당신과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근처에 산다면 다음 주쯤 한번 더 들러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건 어떨까요?" 등등 고용주가 미처 몰랐던 것이 다행인 나의 솔직함이 언제부턴가 역설적으로 매출 실적으로 이어졌다. 화려한 언변과 상품에 대한 지식으로 중무장한 직원들 사이에서 단시간에 구매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고객들도 나름대로 지쳤을 테다.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주에 3일은 라면으로 때우던 그때의 나를 생각해보면 지금도 대체 무슨 배짱이었나 싶지만 그 덕분에 동료들은 친구가 되었고,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순간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구글과 로드뷰 덕에 요즘도 가끔 이 쇼핑몰을 찾는다. 겉보기에 화려하고 여유 있는 이곳에 얼마나 많은 치열한 삶들이 모여있는지.. 그때 함께하던 동료들 모두 지금쯤 꿈꾸던 삶을 살고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