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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레서점 Oct 24. 2021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서점 이름 짓기

무아레 서점 창업기 ep.3

이름은 굉장히 중요하면서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 애플은 그저 애플일 뿐이다. 구글도 그저 구글이고. 애플이라는 이름이 아주 특이하고 멋져서 애플은 애플이 되었을까? 어쩌면 이름보다는 그 이름을 가진 존재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가 중요한 것 아닐까.

○ 내가 학부시절에 브랜딩에 대해 배울 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어떤 종류의 브랜딩, 광고, 캠페인, PR이든 그것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핵심을 이름과 행동 등 모든 것에 일관되게 적용하고 꾸준히 실행해야 한다. 아주 거창하고 의미 있는 이름을 가진 채로 형편없는 일을 해봤자 그 브랜드가 멋지게 기억될리는 없다는 것이다.

○ 한 브랜딩 전문가는 '액션이 곧 브랜드'라고 강조한다.


서대웅 님을 찾아보시길...

이름은 중요하다

○ 그러나 어쩌면 이름은 중요하다. 언어에는 힘이 있고, 그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어렵게 넘어야 할 몇 가지의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사람들이 쉽게 발음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들이 뭘 하려고 하고 왜 그것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것.

○ 특히 서점에게는 이름 짓기에서 나름의 고충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책을 판다는 건 언어를 다룬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점 이름이 멋이 없다면 그 서점에 대한 기대치는 훨씬 떨어지지 않을까. 대충 지은 이름처럼 보인다면, 그리고 너무 일반적이거나 절대 쉽게 기억에 남을 이름이 아니라면 그것 또한 크게 문제일 것이다.

○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이름을 검색했을 때 바로 내가 원하는 정보로 연결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내가 검색한 이름에 해당하는 너무 많은 정보가 웹상에 존재한다면 그것도 일종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스타 작명소로 유명한 키크니님


그래서 서점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지...?

내가 지은 서점 이름은 무아레 서점이다. 무아레라는 말의 뜻을 아시는지.  

일단 무아레 Moire는 물결무늬를 뜻하는 프랑스어이다. 이 물결무늬란게 이를테면 이런 모양이다.

뭔가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쉽게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반듯하게 칸이 나뉘어 있는 모기장 2개를 겹쳐보자. 직선과 직선이 만났는데 이상하게 선이 곡선처럼 왜곡되어 보이는 현상이 생김을 알 수 있다. 혹은 옛날 TV에서 내려오는 주사선들이 직선이 아니라 이상하게 왜곡된 모양으로 화면에 내려오는 걸 보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게 무아레 현상이다.


즉 무아레는,

일정한 모양의 선을 규칙적인 간격으로 그려놓고 겹치면
빛의 간섭이 생기며
물결모양의 무늬가 나타나는 현상을 뜻한다.

내가 이런 이름을 지은 이유는 무아레의 의미를 확장해서 '규칙적이고 일정한 삶이 겹치는 곳에 때때로 불규칙하고 예측하지 못한 마주침을 만든다'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집/동네/도시는 우리가 안전하게 머무르는 곳이기도 하지만 창조적인 영감과 관계가 탄생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사람과 사람을 겹친다.
거기서 일어나는 변화무쌍한 무늬를 발견한다.


그게 우리 서점의 뜻이자 모토가 되었다.


그러면 왜 무아레란 이름을 짓게 되었나

내가 무아레라는 이름을 짓게 된 건 순전히 우연 덕분이었다. 나도 서점 이름을 짓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름이란 건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좋은 게 다른 사람에게는 좋지 않고 그런 식이다. 모두가 '와'하는 이름을 짓는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세상에는 이미 수많은 서점이 존재하고, 책으로 할 수 있는 재치 있고 기막힌 이름들이 이미 세상에 많았다. 어찌 됐든 그 이름들 사이에서 뭔가 다르게 보여야 했다. 나는 절대 놓칠 수 없는 몇 가지 기준을 정하고 그 원칙 안에서 이름을 정하겠다고 생각했다.

1. 발음이 쉬워야 한다. 받침이나 파열음 등 입으로 소리 내기 어려운 이름은 안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서점이나 책방 등의 어휘와 붙었을 때도 발음이 유려하게 흘러갔으면 하고 바랐다.

2. 좋은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너무 서점스러운 건 피하고 싶었다.

3. 희소한 어휘라 그 단어를 검색했을 때 겹치는 상호나 정보가 최대한 적은 것으로 하고 싶었다.

4. 이름이 상징하는 의미가 디자인 / 글 / 공간 등 여러 곳에 확장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마디로 단어 하나로 모든 것에 통일성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5. 유행에 휩쓸리거나 재치만 강조하다 질리는 이름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참으로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까다로운 규칙이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원칙 안에서 괴로워하면서 100개가 넘어가는 이름 후보군을 정했다. 그러나 후보군이 100개가 넘어가자 뭐가 좋은지 나쁜 지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때 후보군에 있었던 이름들은 창피해서 공개하지 않겠다) 모든 이름이 좋아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구렸으므로 도저히 어떤 이름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우연한 사건이란 그때 발생했다. 당시 내가 읽고 있던 책이 있었다. 별로 읽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참여하고 있던 독서모임의 주제도서여서 마침 읽고 있었던 책들이었다.


1. 한 권은 『생각의 탄생』, 2007년에 나온 미셸 루트번스타인과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이 저자인 책이다. 이 책은 예술가, 과학자, 작가 등 창조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사고 도구를 다루는 책이다.

2. 다른 한 권은 『물질의 물리학』, 응집물질 물리학을 소개하는 과학 도서로 2020년에 나온 한정훈 저자의 책이다.


물질의 물리학 표지는 무아레 패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책에서 나는 공교롭게도 똑같은 어휘가 등장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게 바로 무아레 moire였다. 생각의 탄생에서는 예술가들의 사고 도구를 설명하면서, 물질의 물리학에서는 물질 물리학의 실험 도구 중 하나로 무아레라는 개념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때 난 무릎을 쳤다. 이건 신이 점지해준 이름이구나.


그래, 우리는 무아레 서점입니다.


이름을 짓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무아레가 지향하는 점과 물결무늬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공간과 디자인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무아레라는 이름이 그렇게 쉽고 와닿는 이름인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이 이름이 어쨌든 내가 세운 원칙에 부합하는 이름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무아레라는 이름을 들고 가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다. 내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건 필수다. 다행히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뜻을 설명해주자 다들 '그럴 듯한데'라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이름이라는 건 우연 속에서, 그리고 최악들을 피해서 정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이름을 확정했다. 이 이름이 최선인가? 최선이라는 건 정해진 조건과 기간 안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한다는 걸 뜻한다. 그래서 내가 어떤 것의 이름을 정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방법은 오직 하나다. 데드라인을 정하고 계속 이름을 생각해라. 이름을 생각하면서 밥 먹고 영상을 보고 책을 보고 거리를 걸어 다녀라. 그러면 신이 하나의 단어를 점지해 줄 것이다. 의심하지 말고 그 단어에 올인한다. 그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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