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했어요.
Q. 스스로에게 해준 것 중 제일 잘한 것 혹은 일은??
이 질문 덕분에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이것저것 많은 걸 참 잘해온 것 같다(그만큼 아쉬운 선택도 많고, 하하하). 그래서일까 순위를 매기기가 어려워 최근에 했던 것들 중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일을 뽑아 봤다. 올해 쥬비스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과 작년에 첫 자동차를 구매한 게 제일이었고, 그중에는 차를 산 게 더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첫 차를 구매한 게 제일 잘한 일이라 생각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 번 째, 자동차가 생긴 덕분에 필요할 때면 언제나 독립적인 공간에 머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난생처음 스스로 마련한 공간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성향상 독립적인 공간의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다른 것들과 분리되는 공간이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기에, 가족들과 함께 있는 집이나 사람들로 붐비는 공공공간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호캉스도 주기적으로 해왔고. 언어나 생활 방식이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왔다. 그런 나에게 언제든 잠시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건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자동차가 그 공간을 제공해 준다. 그 공간은 피난처나 휴식처가 되어 주었고, 종종 매우 프라이빗한 비밀 공간이 되어주기도 했다. 또, 주변에 종종 민폐를 끼치는 경우도 있지만, 전용 코인노래방이 하나 생긴 거기도 하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는데, 아무튼 독립된 공간을 확보했다는 것보다 더 잘한 일은 없는 것 같다.
또, 운전하는 걸 좋아한다. 운전하면서 바라보는 풍경을 좋아한다. 특히 서울 풍경을 좋아한다. 통학하며 눈에 익은 양화대교 풍경이라던가, 성수에서 한남으로 넘어가는 길이라던가, 한강대교를 타고 용산으로 넘어가며 서울타워를 마주 보는 풍경 등등. 어쨌든 나에겐 서울도 여행이나 나들이를 떠나는 도시와 같은 곳이기에 그 풍경들을 보며 운전을 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풀린다.
세 번째는, 어릴 때부터 꿈꿔온 브랜드의 차를 타고 있다는 점이다. 그냥 언젠가부터 아우디가 좋았다. 스키점프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콰트로 광고를 본 이후일 수도 있고, TT나 R8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고, 아이언맨의 차라서 그럴 수도 있는데, 언젠가 아우디를 꼭 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아버지 회사를 방문해서 상사분들과 저녁을 먹고 나오던 길에 길가에 서있는 아우디를 보며 부러워하는 나에게 어느 상무님께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언젠가 아우디도 탈 수 있어."라는 말을 해주셨던 기억 때문인지, 내 힘으로 그걸 얻어냈다는 게, 열심히 노력해서 쟁취한 트로피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한 번 해봤으니까, 계속 목표를 성취하며 전리품을 쟁취해 나갈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자신감도 생겼던 것 같다. 친구들한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는 것처럼, 다음에는 포르셰 카이엔을 타고, 그다음에는 벤틀리 벤테이가를 타고 싶다고 생각하고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올 지도 모르니까. 뭐 어때. 꿈은 이루어지는 법이고, 기왕이면 큰 꿈이 좋으니까.
마지막으로, 자동차 덕분에 필요할 때마다 가족 모두가 이동성이 개선된 것도 있고(부모님께서는 차가 없으셨다.), 가고 싶은 곳들 마음껏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친구들이랑 골프도 치러 다닐 수 있게 됐으니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나한테 제일 잘 해준 건 차를 구매했던 게 분명하다.
2022년 7월 19일 화요일,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밤,
다시 한번 The Student Hotel Florence 루프탑에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