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다녀오길 참 잘했다.

by 모조

제주에서의 한 달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후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고작 두 달이었지만 많은 일이 있었다. 15년을 넘게 살아온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 터를 잡았다. 회사에서는 두 번의 변화를 겪었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이전보다 고민해야 할 이슈들이 더 늘어났다. 한 달 동안, 이런 걱정과 고민 없이 지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의 연속이다. 그만큼 고민이 많은 두 달이었다.

고민거리만 늘어난 건 아니다. 사람들에게 "살이 빠진지는 모르겠는데, 건강해진 거 같아요."라는 말을 하고 다녔는데, 진짜 그랬다. 최근 검진 결과를 보니 대부분의 수치가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물론 아직 관리를 해야 하지만 긍정적인 신호였다. 제주에서 함께 했던 지인들과 기억에 나을 만한 뒤풀이도 했다. 혼자 있는 시간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혼자만의 이야기지만, 정말 오랜만에, 설레고 두근거리는 사람도 생겼다.

온전히 일상에 집중하며 한 달을 보낸 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가 무척이나 즐겁고 행복하다.


제주에서의 한 달이란 시간을 다시 되돌아보면, 이번에도 운이 참 좋았구나 싶다.

의도치 않게 필라테스를 못 다니게 되면서 오히려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과 더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필라테스 다녔으면, 3일에 한 번 씩 버스에서 3시간씩 그냥 날렸을 거 생각하면 안 가길 잘했다.

가려고 생각했던 몇몇 장소들도 다녀오질 못했다. 집이 좋아서, 하루하루의 일상이 더 소중해서 일부러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 덕분에 제주에 다시 갈 이유도 남았고, 봉성리라는 시골 마을에 영원히 기억될 나만의 집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혼자 지내려 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한 날이 더 많았다. 혼자였으면 더 좋았을까?라고 수십 번 물었지만 대답은 함께여서 더 좋았다였다.

계획한 대로 살지 못했지만, 그랬기에 더 좋았다. 여행이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 또한 그런 것처럼.


제주에서의 한 달은, 쉼표와 같은 시간이었다.

쉼표는 문장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기도 하고, 특별한 효과를 줄 수도 있고, 이전과 다른 내용을 담은 다음 문장을, 다음 메시지를 시작하기 위해 잠시 멈추기 위해 쓰기도 한다. 비록 한 문장을 바꾸는 문장 구호지만, 때로는 작품 전체나 스피치 전체를 뒤집는 경우도 있다. 멋진 문장이나 멋진 스피치를 보면 쉼표가 적절하게 잘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한 달 동안의 제주살이가 내게는 올해의 쉼표 같은 시간이었다. 거창하게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나 프레젠테이션을 고민하거나 펼치는 시간은 아니었다. 대신 지금까지 적어왔던 문장을 잠시 멈추고, 다음의 문장을 이어가거나, 특별한 효과를 주거나, 다른 이야기가 담긴 문장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먼 미래에 지금의 이 문장과 쉼표가 내 인생을 다른 누구의 것보다 멋지고 나다운 스토리를 적어나갈 수 있게 한 쉼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이 한 달이라는 시간이 우연히 찾아온 꿈같은 한 달이 아니라, 준비하고 노력해서 만들어낸 한 달이었기에 더 값어치 있는 것 같다. 또, 나 혼자 만들어 나간 시간이 아니라 주변의 감사한 사람들과 함께 해 만들어진 한 달이었기에 더 값진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한 달 동안 느끼고 경험하고 고민했던 것들은 그저 일장춘몽처럼 지나가지 않을 거라 믿는다. 나에게,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식으로든 쉼표의 역할을 할 거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한번 쉼표가 필요할 때, 과감히 지금까지의 문장을 잠시 멈춘 채 그다음을 고민하게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소중한 경험으로 남을 것 같다. 그다음이 언제, 어디서, 왜, 무엇을 위한 쉼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제주에서의 한 달을 응원해주고, 지원해주고,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한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잘 부탁드립니다.


모조의 제주 한 달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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