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서른 하나,

내가 꿈꾸는 결혼식은?

by 모조

Q. 오빠가 꿈꾸는 결혼식은 무엇? (아이디어 탈취 예정. 성실히 답변 바람^^)



아마 질문을 던진 분께서 실망하실 것 같은데, 내가 꿈꾸는 결혼식은 매우 평범하다.


대학에 갓 입학해서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시절에는 무조건 '호텔 결혼식'이었다. 어느 호텔이 좋은지도 몰랐고, 돈이 얼마가 드는지도 몰랐던 터라, 서울에 있는 호텔 중에서 제일 큰 홀이 있는 곳을 빌려 천 명이 넘는 하객을 초대하는 결혼식을 꿈꿨다. 주례 선생님은 대학생활 중에 만나게 될 교수님 중 내가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분을 모시고, 축가는 유명한 가수를 부르고, 코스 요리가 거하게 차려지고, 프랑스 와인이 깔려있는 그런 결혼식을 바랐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때는 그랬다.


지금은 오히려 작은 결혼식을 했으면 한다. 양가 직계가족과 들러리들만 함께 하는 결혼식이다.

주례 없이 부모님들께서 성혼선언문을 읽어 주시고, 둘이 혼인서약 읽고, 부모님께서 인사 말씀하시고, 행진해서 끝내고 싶다. 축가 같은 거 꼭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필요하다면 친구들이 축문 같은 거 하나씩 읽어주면 되지 않을까. 아무튼 그런 행사보다는 가족끼리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며 축하를 나누고 결혼생활의 지혜를 얻는 시간을 갖고 싶다. 아, 예물 전달도 식중에 하고 싶다. 신부 예물은 꼭 티파니로 하고 싶다. 그 민트색 상자를 꼭 전하고 싶다. 조카님이 예물 들고 들어와 주면 더 좋고.

식장은 전부 다 흰색으로 꾸미고 싶다(뭐 대부분 그렇지만). 단상, 버진로드, 테이블, 의자, 꽃까지 전부다 흰색으로. 기왕이면 카라가 적절히 섞여 있었으면 좋겠다. 실내라면 필라멘트 전구를 활용해 적절히 꾸며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식사는 한식이면 좋을 것 같다. 가능하다면 김밥을 코스에 넣고 싶다. 정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그 김밥을 벤치마킹해서. 메인으로 잘 지어진 쌀밥에 갈비구이를 내어드리고 싶다. 국도 있으면 좋겠는데, 조개로 국물을 낸 맑은 국이나 버섯향이 잘 벤 된장국이면 좋을 거 같다. 구식이지만 국수도 꼭 대접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결혼식은 간단히 마치고(간단해 보이는데, 이거 준비하려면 진짜 엄청 힘들 거 같다. 사람들이 다 그냥 예식장에서 하는 이유가 있을 거야), 친구들을 초대하는 애프터 파티를 크게 열고 싶다.

결혼식을 치른 저녁, 영화 <위대한 개츠비> 콘셉트의 파티를 크게 열고 싶다. 그렇다고 막 흥청망청 먹고 죽자 이런 느낌을 원하는 건 아니다. 격식이나 예를 차리기보다는 우리끼리 편하게 즐기며 축하받고 싶다. 내 친구들, 아내의 친구들이 서로 잘 어울려서 놀고, 그 분위기에서 축하받으면 더 행복할 것 같다.

긴장도 풀렸으니 한 명 한 명 더 밝게 맞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결혼하신 분들 말씀 들어보면 힘들어서 빨리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고 하던데... 지금 생각하기엔 가능할 것 같다. 프로그램을 세세하게 세우진 않았지만, 그냥 인사하고, 축사 몇 개 듣고, 노래 틀고 놀면서 인사 주고받으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다 적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극히 나만 생각한 결혼식이구나 싶다. 부모님 손님들을 모실 수 있는 자리도 따로 마련해야 할 것 같다. 근데 결혼식 건너뛰고 연회에만 초대한다고 하면 어른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 꿈꾸는 결혼식은 그렇다. 1부는 가족끼리 오붓하고 단란하게, 2부는 친구들과 즐겁게. 1부와 2부 사이의 인터미션이 조금 길고, 해결해야 할 이슈가 많지만, 꽤 즐겁고 나다운 결혼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꿈꾸는 결혼식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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