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어떻게 기울어진 공론장을 만드는가?
케빈 엘리엇의 『과학에서 가치란 무엇인가』를 읽고
1. 과학은 가치를 내포한다.
『과학에서 가치란 무엇인가』의 저자는 과학적 활동에 언제나 가치가 연관된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니, 과학과 관련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투명성, 대표성, 참여 가능성을 높일 방안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과학자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만한 이야기이다.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에 직결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느 학문이 그렇듯, 과학이라는 학문 또한 절대적인 확실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과학 지식 생산 과정에는 과학자의 가치관이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과학적 연구 방법론은 주로 관찰이나 실험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개입되는 과학자의 편견은 한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 과거에는 절대적인 지위를 가졌던 많은 과학적 지식이 시대가 바뀌면서 지식으로서 지위를 잃기도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과학적적 지식은 오직 반증이 가능하도록 개방적인 구조를 가질 때에만 객관성을 가질 수 있음은 자명하다.
2.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논쟁 돌아보기
때로 과학의 학문성에 대한 신화는 사회문제에 대한 의사소통 자체를 가로막는 도구로 기능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논쟁의 양상을 돌아보자. 핵 폐수 방류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이를 반대하는 입장이 우세해지자,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은 “오염수 문제는 과학과 미신의 대결”이라고 규정지었다. 과학의 학문성에 기대어 반대 의견을 묵살한 셈이다. 해수부 차관의 한마디에 시민들의 정당한 우려는 ‘미신’으로 격하되었고, 오염수 방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으로 격상됐다.
놀랍게도 국민을 우롱하는 해수부 차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단 정파성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 우리 사회에서 ‘과학과 관련된 결정은 과학자들에게 맡기라’는 이야기가 통용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 지식체계는 다른 학문 분야보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이라는 편견에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편견은 시민은 과학적 지식이 결핍된 존재이며, 그러므로 시민이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발언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끔 만든다. 그러나 과학의 절대성을 빌미로 공론장에 참여하는 주체를 제한하는 처사는 그 자체로 비민주적이며 유해하다.
해수부 차관의 발언을 기점으로 오염수 방류에 관한 ‘정치적’ 논쟁은 순식간에 ‘과학적 확실성’에 관한 논쟁으로 변했다. ‘오염수 방류가 정치적으로 정당한지’를 따지던 논의는 한순간에 제거되었다. 찬성 측도 반대 측도 ‘오염수 방류가 과학적으로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지’에 관해 주장 하는 데만 매몰되었다. 논쟁의 쟁점이 과학적 확실성에 대하여 변하면서, 시민들의 혼란과 피로감은 더욱 커졌다. 이러한 전개는 시민들이 오염수 논쟁에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유인하였고, 그 무엇도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과학적 확실성에 천착하는 구도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정부는 IAEA의 기준에 따랐으므로,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문제는 방사선 피폭의 인체 영향은 단시간 내에 그 결과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방사선영향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원자폭탄 피해자들의 생애수명조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원자폭탄 투하 후 백여 년이 지나서야 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피폭의 인체 영향 연구는 더 오래 걸릴 것이다.
정부에서 근거로 제시한 IAEA의 기준과 실험들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논쟁이 치열하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IAEA가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맞다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에 대하여 과학계에서 아직 입증과 반증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이다. 다수가 동의할 만한 결론이 완전히 나지 않은 상황에서 오염수 방류를 강행한 것은, 과학적 검증 과정을 생략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비과학적이다. 정치적 결정에 대한 숙의를 도려냈다는 점에서 비민주적이기까지 하다.
3. 공론장을 지키기 위하여
그렇다면, 과학과 관련된 사회문제에 대한 결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이러한 논쟁의 그 본질이 ‘과학적 논쟁’이 아니라 ‘정치적 논쟁’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과학에서 가치란 무엇인가』의 저자는 의사결정 집단에 일정 수의 시민들을 참여시키는 방법, 또는 학제 간 전문가들이 함께 논의하는 방법을 통해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오염수 방류 문제를 논의하려거든 의사결정 그룹에 과학자뿐만 아니라, 환경사회운동가 등을 포함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때, 과학적인 정보로 윽박지르기보다는 가치에 대한 의견 불일치를 해결하는 데 더 집중하는 것이 의미 있는 방법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요컨대, 과학성을 빌미로 한쪽 의견을 찍어 누르지 말고 차라리 문제 상황의 저변에 놓인 가치에 대해 정치적으로 논의하라는 것이다. 오염수 방류 논쟁으로 치환하자면, 과학적 확실성을 두고 무의미하게 정치적 동력을 소진하기보다는 미국이나 일본과의 군사동맹에 관해 차라리 터놓고 이야기하고 정치적으로 설득하라는 뜻이겠다.
물론 정부가 이러한 방법을 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군사동맹이라는 가치를 전면에 꺼내놓고 정치적으로 국민을 설득하기보다는 오염수 방류라는 과학적 도구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정치적 탈력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에 더 손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민이 시민의 덕목을 지켜야 한다. 때로는 과학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시민들을 배제하는 도구로써 활용된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 우리를 공론장에서 쫓아내려 할 때, 그들의 저의를 파악하고 막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