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이야기-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청주의 옛 중심

충북 도청이 있는 청주시 성안동에는 성안길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본정통이라 불리던 곳으로 연세 있는 청주 사람들은 본정통이라고 하고, 젊은 사람들은 성안길이라고 한다. 옛날 청주 읍성이 있었으니, 성의 안쪽 길이라는 뜻이다. 청주 문화의 중심지로 역할했던 곳으로 쇼핑과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이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쇠락하여 문화의 중심지라고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곳 성안길에 고려 광종 때 만든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이 있다. 당간은 절 입구에 세우는 깃대로 깃발을 달아 절의 경계를 표시하거나 행사가 있을 때 깃발을 거는 데 사용하였다. 당간을 세우기 위해 양옆으로 돌 같은 것을 세워두는데 이것을 당간지주라 한다. 보통은 당간지주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으며 당간까지 남아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우리나라에 몇 개의 철당간이 존재하지만 건립 시기가 명확하고 철당간을 만든 유래가 철당간에 새겨져 있어 국보로 대접받고 있다. 고려초기 청주지역의 호족들이 힘을 모아 만든 것으로 청주지역의 지역상을 알 수 있고, 역사책에 존재하지 않는 광종이 '준풍'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기에 우리에게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기록에 따르면 청주 호족 김예종이 병이 걸려서 철당간을 만들려고 하였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이후에 그의 친척 김희일이 다시 그 뜻을 이어받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이것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려는 불교의 나라였기 때문에 자신의 소원을 부처님께 빌었을 것이다.


용두사지 철당간과 관련하여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연등사 주지 혜원이 청주를 지나다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그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용두사에 들어가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돛대를 세워라."하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급히 용두사 주지 스님을 만나니, 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래서 청주가 배가 떠가는 모양임을 알고 용두사에 철당간을 세웠다고 한다. 다른 전설로는 예로부터 청주는 홍수로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말하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당간을 세웠더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청주의 별칭으로 주성이 생겨났다. 주성은 현재 청주에 학교를 세울 때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청주가 예전부터 홍수의 피해를 입었던 것 같다. 용두사지 철당간 길 건너에 있는 중앙공원에는 압각수라고 불리는 900살로 추정되는 은행나무가 있다. 높이가 30m, 둘레가 8m로 가을이 되면 단풍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압각수는 은행나무 잎이 오리의 발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란 설과 나무뿌리가 물오리발처럼 발가락 사이가 붙어있어 생겼다는 설이 있다. 이 압각수가 홍수와 관련이 있다. 1390년 이색 등 10여 명이 청주 감옥에 갇혔는데 이때 큰 홍수를 만나 이를 피해 청주 압각수에 올라 화를 면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색은 고려말 신진사대부의 대표적인 인물인 정몽주, 정도전 등을 길러냈으며, 이색-정몽주-길재로 이어져온 학문은 조선시대 김종직에게 이어져 사림파를 형성하게 된다.


성안길에서 용두사지 철당간을 한 번에 찾기는 쉽지 않다. 현대식 건물들에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철제통 30개를 연결한 당간이 서 있었으니 가히 청주의 랜드마크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20개만 남아있고 일설에 따르면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는 과정에서 철제통 10개를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20개만 해도 높이가 13.1m이니까 아파트 높이로 따지면 4층 정도된다. 이 정도면 청주 어디에서든 철당간을 보고 기도를 했을 것이다. 유럽의 두오모 성당이 도시 어디에서든 볼 수 있듯이.

청주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장소, 만남의 장소였던 용두사지 철당간만 덩그러니 남아 청주의 오랜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용두사는 땅속 어딘가에서 남아서 자신을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여 왕릉원 옆의 능사가 그랬듯이.


용두사지 철당간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건물은 롯데 영플라자이다. 이곳은 진로백화점-청주백화점-롯데영플라자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원래 이 자리는 감옥이 있었던 곳이다. 원래 감옥이었던 곳에 쇼핑몰을 만드니 자꾸 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본다.

차라리 이 건물을 허물고 잔디 광장으로 만든다면 충북도청 앞을 지나는 무수한 사람들과 차량들이 용두사지 철당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숨바꼭질 하듯이 이곳을 찾지 않아도 되고, 개방된 용두사지 철당간의 접근성이 좋아져 청주 문화의 중심지로서 다시 부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기에 중앙공원과 용두사지 철당간을 연결하고 조선시대 청주목 관아 건물인 청녕각까지 연결하면 성안길은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로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옛 청주역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와 용두사지 철당간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전주 한옥마을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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