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가 점지어 준 절
괴산 각연사는 산속에 숨어있다고 하기보다는 산이 숨기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덕가산, 보개산, 칠보산으로 불리는 세 개의 산이 절을 감싸 안고 있다. 마추픽추가 하늘에서 봐야 보이듯, 각연사도 하늘에서 보아야 보이는 절인 듯 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어머니의 깊은 품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숨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물론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각연사가 있는 충북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 있다. 마을 뒤로는 산이 있고 마을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가 있다. 옛날 사람들은 분명히 냇가에서 빨래를 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을 것이다. 이 마을 뒤에는 산이 있어 더 이상 사람들이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런 곳 길 끝에 각연사가 자리 잡고 있다.
각연사는 사람이 만든 길이 아니라 까마귀가 만든 길을 따라 만들어졌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시대 법흥왕 때 유일대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유일대사가 절을 만들기 위해 공사를 시작하자 까마귀들이 나무 조각을 물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유일대사가 까마귀를 따라가 보았더니 까마귀들이 연못에 나무 조각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연못 속을 보았더니 돌로 된 불상이 있어 그곳에 절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못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각연사라 이름을 짓게 된 것이다.
각연사로 가는 길은 예전보다 잘 정리되어 깔끔한 느낌을 주지만 나는 예전 정리되지 않은 멋스러움을 잊지 못한다. 비가 오면 도로를 따라 흘러내리는 덜 포장된 길을 따라 각연사로 가던 그 느낌이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마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연사로 가는 길은 예쁘다. 계곡을 끼고 난 길도 이쁘지만 도로가 좁아 양 옆의 산들이 거의 붙어있다 시피해서 여름이면 하늘도 초록초록하다. 어떤 구간은 나무들이 서로를 감싸고 있어 초록 터널을 만들고 있으니 어찌 각연사 가는 길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들이 닿을 듯 말 듯하면서 겨울을 의지하고 있었다.
각연사로 가는 길의 끝은 보개산 각연사라는 일주문을 만나면 끝난다.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넓은 공터를 주차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절 손님과 함께 등산 손님을 위한 배려다. 주차장에서 내려 각연사까지는 금방이다.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이나 내소사의 숲길 같은 느낌은 없지만 코를 따라 들어온 공기는 온몸 구석구석으로 들어와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기에 손색이 없다. 어느 절과 다르게 절 입구에 가게 하나 없고 사람이 꾸며놓은 것은 절뿐이니 자연을 즐기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나면 다리를 향해 뻗은 나무가 반긴다. 욕심을 가득 채운 사람에게 욕심을 버리라는 듯하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인사를 하는 듯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계단을 올라서면 오른편으로 갈 곳 잃은 이 절의 주인들이 모여 있다. 옛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만든 것들이 오늘날에 와서 어디에서 어떻게 있었는지 모르는 무지함 때문에 박해받고 있다. 계단을 올라서면 넓은 마당이 딱 트여 있고 그 위로 다시 계단을 두고 대웅전이 서 있다. 그러니까 대웅전 자체가 3층에 있다. 그래서일까 대웅전 앞에 그 흔한 석탑하나 없다. 텅 빈 대웅전 앞마당 두 개가 오히려 각연사를 더 각연사스럽게 만들어 주니 각연사는 뭔가가 없어서 더 좋은 절이다.
대웅전으로 올라서는 두 번째 계단은 첫 번째 계단과 달리 잘 깎은 돌로 만들어져 있어 예스러움을 잃었지만 계단 옆 난간은 옛 돌로 채워져 있어 각연사의 오래됨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각연사 대웅전은 조선후기에 만들어졌으며, 대웅전 안에는 통일대사 모양을 한 스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예전에는 유일대사라고 한 것 같은데 이번에 가보니 통일대사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보통 다른 절에는 절을 만든 사람을 조각해서 불상과 함께 두지 않는데 각연사는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다.
그런데 여러 번 각연사를 왔는데 이번에 처음 본 것이 대웅전 옆 삼신각 앞에 있는 황금회회나무 두 그루였다. 가지 부분이 순록의 뿔처럼 느껴졌고 뿔들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나무라 검색해 보니 황금회화나무였다. 회화나무는 학자수라고 불리며 향교나 서원 등에 심었다. 그런 회화나무가 각연사에서 자라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4계절을 만나 보아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대웅전을 옆으로 각연사 최대의 보물 비로전이 품고 있는 비로자나불이 있다. 비로전 앞마당에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가 비로자나불과 일생의 동반자로 수백 년을 함께 해오고 있다. 비로전은 조선 후기에 건축되었지만 주춧돌을 비롯한 건물에 쓰인 돌들은 통일신라 때부터 있었다고 전해진다. 문을 열고 비로자나불을 처음 만나면 웃음부터 날 것이다. 불상의 입술은 붉고 꼬부랑 수염이 그려져 있다. 마치 누군가가 엊그제 들어와서 장난쳐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각연사의 비로자나불보다 먼저 만들어진 대구 동화사 비로자나불도 붉은 입술과 수염을 하고 있으니 원형을 훼손한 것 같지는 않다. 불상에 관심이 많다면 두 개의 불상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비로자나불은 불상 자체로도 볼거리가 많이 있지만 불상 좌대 아랫부분을 보면 사자 머리를 조각한 것도 있고 가릉빈가(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새)도 있다. 나는 여기서 가릉빈가를 실물로 처음 보았다. 각연사 비로자나불은 아는 만큼 보이는 곳이다.
비로전을 지나면 칠보산을 등산하는 입구가 있다. 겨울 한 달 동안은 입산 통제를 하고 있었다. 그 위로 각연사를 더 빛나게 하는 보물들이 있다. 머리와 비신은 없지만 남겨진 조각만으로도 그 정교함을 따라갈 수 없는 귀부가 등산로 왼편으로 작은 개울을 지나면 나타나는 넓은 대지에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돌아와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부도도 보이고 통일대사 탑비와 통일대사 탑이 산 중에 있다.
통일대사는 당나라 유학파 스님으로 태조 왕건과 교류하였다. 그건 곧 반 궁예파 스님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탑비는 고려 광종 때 세운 것이다. 통일대사가 궁예파 스님이었다면 이렇게 많은 공력을 들여서 만들어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조용한 각연사도 안팎으로 개발의 열풍을 피해 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예전보다 이 각연사 계곡으로 사람들이 살기 위해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계곡 입구에는 캠핑장도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절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사실, 바로 절을 더 크고 화려하게 만드는 일이 이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건물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었다. 비로전 위에도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다. 다행인 점은 그것이 그렇게 흉물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