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충주 수안보에서 체천 한수면으로 들어서면 미륵대원과 계립령, 월악산과 덕주사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면서 사람들은 제천의 보물이자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문화재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큰길에서 약간은 벗어난 작은 계곡 옆 언덕 위에 있는 위치의 불리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제천 한수면 송계계곡은 여름이면 물놀이하는 사람으로 넘쳐나고, 가을이면 단풍을 찾아 월악산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지만 사람들은 이곳에 탑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 그 덕에 나만이 알고 싶고 앞으로도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 깨끗하고 맑은 계곡물은 이 탑을 더 깨끗하게 해주는 것 같다. 어쩌면 이 물소리가 이 탑을 세상 사람들의 욕망으로부터 지켜주는 보호막일지도 모르겠다. 변변한 주차장도 하나 없어 좁은 길 옆에 겨우 주차를 하고 몇 계단을 올라가면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사 구층석탑이 있다.
빈신은 사자가 포효하는 것을 뜻한다. 이 탑은 사자 4마리가 탑을 지탱하고 있고 탑 가운데에는 비로자나불이 연꽃을 머리에 이고 있다. 원래는 9층이었던 것이 현재 4층만 남아 있다. 사자가 탑에 있는 것은 구례 화엄사에도 있다.
사자 네 마리 중에 정면에 있는 사자는 혀와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다리와 발을 정면으로 하고 있는데 머리를 옆으로 돌린 것이 특이하다. 뒤쪽 2마리는 입을 다물고 다리와 머리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네 마리 사자 사이로 비로자나불이 앉아 있다. 둥글둥글한 얼굴을 한 불상은 머리에 연꽃을 이고 있다. 보통은 연꽃이 불상의 아래에 있는데 이 탑은 불상이 연꽃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꽃은 비를 피할 수 있어서 그런지 매우 또렷하게 남아 있다.
이 탑은 외형적으로 눈길을 끌지만 탑 아랫부분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역사적으로 더 의미가 있다. 글자가 마모되지 않아 해석이 가능하다. 이 탑은 고려 현종 1022년에 만들어졌다. 고려가 거란과 3차례 전쟁이 끝난 시점이었다. 거란과의 세 차례 전쟁이 끝난 이후에 개경에서 한참 떨어진 이곳에 전쟁을 끝낸 기념물을 만든 것이다. 이 글귀 중에 '영소원적'이 눈길을 끈다. 영원히 원한의 적을 소멸되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원한의 적이 바로 거란이다. 세 차례 전쟁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으면 이런 문구를 새겼을까. 그러니 거란과 왕래를 하더라도 눈에 띄지 않는 이곳을 선택했을까. 충주는 광종의 어머니 충주유씨 신명순왕후의 고향이라 왕실에서는 각별한 곳이다. 그러니 이런 기념물을 만들어도 절대 적에게 유출될 일이 없을 것이 판단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불교는 자비를 강조한다. 적이라고 하더라도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것이 불교인데, 거란을 영원이 없어지기를 바란다니 뭔가 맞지 않다. 고려는 불교의 나라이다. 그런데 이런 글귀를 새겼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또 하나는 거란의 연호를 그대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거란을 뼈에 사무치는 원수로 여겼다면 거란의 연호를 쓴다는 것은 자존심이 엄청 상하는 일이지 않았을까.
그 궁금증을 구완회 교수님이 해결해 주었습니다. 교수님은 원적을 온갖 망상과 번뇌로 해석해서 마음의 평화를 비는 탑, 깨달음을 비는 탑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니까 거란과 전쟁을 겪었지만 이제는 괴로움과 미움을 털어버리고 평화를 유지하자는 마음으로 세웠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탁월한 해석이 아닐까 합니다.
맑은 물소리는 마음의 찌꺼기를 싹 씻어주는 듯합니다. 함께 간 분은 이곳 계단에 앉아서 계곡을 바라보며 커피 마시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했습니다. 은행나무 열매의 진한 향기, 사자, 비로자나불, 계곡물 이 모든 것을 혼자만 알고 싶은 곳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그럴 날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계곡 건너편에 집을 지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에게 사자빈신사지 9층석탑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고려 사람들이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탑을 만들었듯이 제발 사람의 욕심으로 계곡이 물들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