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 돌고 돌아
강원도 태백을 출발한 남한강 물줄기는 강원도 영월과 충북 단양 제천의 산을 만나 이리 돌고 저리 돌아 충주를 만났다. 남한강은 충주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리며 쉬엄쉬엄 흘러간다. 충주는 남한강을 받아들여 풍요를 누렸다. 이 풍요의 땅은 많은 나라들이 이곳을 노렸고, 이곳을 영원히 차지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고구려는 이곳을 국원경으로 이름 짓고 충주고구려비를 세웠고, 신라는 이곳을 중원경으로 하고 탑평리 7층석탑을 세웠다. 강이 가져다준 풍요와 여유를 충주는 오랫동안 누렸고, 지금도 충주 사람들은 강이 주는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고 있다.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이곳 사람들은 이곳을 중원이라고 부르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상징물로 탑평리 7층 석탑이 있다. 이 탑을 중앙탑이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부르는 것에는 사연이 있다. 통일신라 원성왕 때 나라의 중앙을 알아보기 위해 북쪽 끝과 남쪽 끝에서 사람이 출발하여 이곳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지형 조건, 날씨, 두 사람의 보폭과 걸음 속도 등이 기막히게 일치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했을까 싶다. 그러나 통일신라의 영토를 보면 중간쯤 되니 틀린 것도 아니다. 아마 탑이 만들어지고 스토리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이야기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전해지고 있다. 경주의 스님이 충주에 하룻밤 자면서 밤 중에 보랏빛 안개가 퍼지고 동네 전체가 웅장한 기운을 내뿜자 스님은 서둘러 경주로 돌아와 중주에 왕의 기운이 있으니 서둘러 힘을 눌러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그래서 이곳에 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탑으로 산천의 힘을 더해주기도 하고 억누르기도 하는 것이다. 남원 실상사는 지리산의 기운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니 아예 허무맹랑이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또 하나는 신라 명필 김생이 충주 반송산에 절을 세웠는데, 그때부터 절을 세운 곳이 물에 잠기게 되자 배를 이용해서 이곳으로 탑을 옮겼다는 이야기 있다. 충주에는 김생이 만들었다는 김생사지가 있다. 예전에 제천 청풍면에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 3년 동안 식당에서 아침, 저녁을 먹었는데, 그 식당 주인에게 혹시 집에 오래된 물건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주인이 댐이 생기기 전에 남한강이 범람해서 모든 것을 다 쓸어가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큰 강은 풍요를 주기도 하지만 때론 주변의 모든 것을 다 앗아가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니 수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는 개연성이 꽤 있다. 그래서일까 이 탑은 흡사 작은 언덕을 만들어 그 위에 올려놓은 듯하다.
아니면 따로 흙단을 쌓아서 탑을 만들었다는 것은 남한강을 따라 오가는 사람들의 무사한 운행을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남한강 수운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했다. 충주에는 세금으로 받은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다. 이것을 배를 이용해서 서울로 운반했으니, 그들의 안전 운행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남한강 변에 창동리마애불이 있다.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만이 정면에서 이 마애불을 볼 수 있다. 배를 타고 오가던 사람들이 부처님에게 무사 안전을 빌기 위해 만든 것이다.
탑평리 7층석탑은 남한강과 친구를 하며 나란히 서 있다. 1000년을 남한강과 함께 벗하며 이곳을 지키고 있다. 지금 이곳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어 사시사철 충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사랑의 불시착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북한 병사가 남한으로 내려와 윤세리(손예진)와 처음 만나는 곳이 이곳이다.
통일신라시대 유일한 7층석탑이며, 크기도 14.5m로 가장 크다. 흙단 위에 올려져 있으니 실제로는 더 커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해체 복원하였는데 이때 탑 안에서 여러 유물들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아쉬운 점은 이때 제대로 복원하지 못해서 원래 모습을 잃었다고 한다. 지금도 탑이 불안하게 서 있어 언젠가는 다시 복원해야 할 것이다. 이 탑 앞에는 석등 아랫부분이 남아 있어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금당보다 더 높게 탑을 쌓았다는 점에서는 이해가 안 된다. 과연 절일까 아니면 다른 목적으로 만든 것일까.
탑평리 7층 석탑 옆으로 충주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정원에는 각종 석조 문화재가 있어 한번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