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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모씨 May 29. 2023

대학원 나와서 뭐 하게?

대학원을 꿈꾸는 디자이너들에게


"대학원 나와서 뭐 하게?"


당시 11년 차 시니어 디자이너인 내가 대학원을 가려고 결심하고 주변에 말을 꺼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그때 나는 나이가 이미 30대 후반에 접어들었고, 회사에서는 중간관리자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중간관리자, 보통 과장, 차장 정도의 위치는 애매하다. 팀장을 모시고 있을 경우 아예 실무를 놓고 관리만 하는 포지셔닝은 힘들다. 팀장의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실무포함 팀 일에 아예 관심 없는 팀장일 경우 중간관리자가 팀원들의 민원까지 어느 정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반대로 일과 팀 관리에 열정적인 팀장의 경우엔 중간관리자가 팀원들의 업무 스킬 향상 및 아웃풋 퀄리티를 어느 정도 컨트롤 및 조언을 해주어야 한다. 여기에 개인적인 실무를 아예 안 할 수도 없다. 업무량이 많아서 일수도 있지만, 중간관리자는 팀장의 총애를 받지 않는 이상 개인 실적관리도 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나이가 어느 정도 찼으므로 사내 정치에도 아예 외면할 순 없다. 나중에 결국 관리자로 올라가게 되면 맞닥뜨려야 하는 부분이니 조금씩 발을 담가놓으면서 타 부서와도 유대관계를 잘 유지해야 된다. 사원 대리 시절에는 잘 이해 못 할 부분도 있겠지만 중간관리자가 팀 내에서 자기 역할을 해 주어야 겉으로 보기에 별 문제없는 팀처럼 보인다. 비록 팀 내부 상황은 온갖 갈등과 기분 상함이 가득할지라도.



꼭 나와서 뭘 해야만 해?     

이런 상황에서 대학원을 가겠다고 하니, (심지어 아이도 둘 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바로 나와서 뭐 할 거냐는 말이었다. 꼭 나와서 뭘 해야만 해?라고 반문했을 때 돌아오는 말은, 대학원을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과 그에 수반되는 시간에 대해서부터 말문을 열어, 대학원비가 얼만지 아느냐, 그 돈이면 차를 바꾸겠다, 퇴근하고 또 수업 들어야 되는데 할 수 있겠냐, 과제가 많다던데 언제 하려고 그러냐, 논문 쓰려면 힘들다던데 결국 졸업 못하고 수료할 거면 가는 의미도 없다 등등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무언가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물리쳐야 할 것이 바로 주변인들의 네거티브한 반응이다. 나는 속으로 돌아가신 정주영 회장님의 말을 되새기며 – 그 말인즉슨 이봐 해보기나 했어?라는 명언 - 주변의 잡음을 귓속에서 파내어 멀리 떨쳐 보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모두 틀린 건 아니다. 난 단지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 이어서 필터링했을 뿐. 현실적인 그들의 말은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한 이야기였다. 당장 서울 사립대 대학원의 학비만 해도 한 학기 당 600만 원 이상이 들어간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디자인 대학원은 또한 일반 대학원 과는 다르게 과제도 많다. 회사 일만으로도 하루치의 일을 처리하고 나면 퇴근시간엔 다 닮아가는 배터리처럼 집에 갈 정도의 에너지만 남기고 방전되기가 허다하다. 하물며 논문은... 말할 것도 없이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나온다 한들 고학력자가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 외국에서 유학 후 현지에서 일하다 온 사람도 노는 마당에 석사졸업장으로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그들의 말 대로 결코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화살이 몇 발 안 남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직장인으로서 대학원을 나와서 과연 얻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에 대한 답이다. 20대 학생은 조금 방황해도 다시 일어설 시간과 체력이 있다. 30대 후반의 직장인은 상대적으로 그런 부분에서 불리하다. 이미 결혼하여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상황에선 더욱 그러하다. 20대가 도전에 쏠 수 있는 시간의 화살이 10 발이라면 30대 후반의 유부남이 쏠 수 있는 화살은 3~4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20대가 10발 쏴서 반만 맞춰도 50점이지만 나는 반만 맞추면 10~20점 정도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학원을 가기로 했다. Ctrl+C, Ctrl+V 같은 일상의 반복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하고 그 지루함은 더 이상 크리에이티브에서 멀어지는 뇌의 감각기관만 키우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디자인 분야에 10년이 넘게 몸담아 왔지만, 좋은 디자인 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시원한 답변조차 못하는 것이 부끄러움을 넘어 수치스러웠다. 디자이너라고 하기엔 생각과 행동이 점점 오퍼레이터처럼 변하는 내 모습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았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을 증명하고 성장했다고 느꼈을 때, 이른바 자아실현을 달성하였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며 나 자신을 객관화하고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나는 과연 지난 시간 동안 얼마나 성장하였는가에 대해 물음표가 들었다. 삶을 유지하는 측면에서는 그럭저럭 선방해 왔다고 말할 수 있으나, 개인적인 성장이라는 부분에선 말이 막혔다. 회사의 오더에는 충실하게 임했지만 그 오더로 인해 내가 성장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모두가 대학원을 왜 가냐고 하여도 내가 대학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가장 큰 이유다.   



그래서 뭐 달라졌어?


대학원 나오니까 뭐 달라졌어?라고 묻는다면 사실 당장 할 말은 없다. 반복되는 일상과 지루한 회사생활은 여전하고, 꿈이라고 부르는, 미래지향적 행동에 대한 자세를 취하는 것 또한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할 수도 없다. 여전히 숨 막히는 듯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종종 책을 읽고 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무슨 내용이었는지 새까맣게 잊어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한번 읽어볼까? 하고 새롭게 고른 책을 읽다가 어 이거 왠지 뭔가 익숙한데?라는 느낌이 들어 다시 곱씹어보면 전에 읽었던 책이었던 어이없는 때도 있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행위자체는 무의미한가?     

생각과 지식은 내가 그것을 접하고 이해했을 때 발효의 과정을 거쳐 나도 모르는 새에 나의 뇌리에 서서히 스며든다. 그렇게 스며든 지식은 일종의 본능 또는 반사신경처럼 나도 모르게 나의 여러 가지 행위에서 툭툭 떨어져 나온다. 배움과 앎의 가치는 그것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얻었거나 장기간 오래 지속되는 기억만으로 그 가치를 평가하기에는 너무 단편적이다. 이러한 무형의 가치는 곧 내가 평소에 풍기는 면모가 된다. 그것을 일컬어 사람들은 교양, 인격, 내공, 그릇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대학원을 나왔다"가 원인이 되고 그래서 "내가 무언가가 되었다."가 결과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꼭 무언가가 되거나 무언가를 얻는 것 만이 삶의 목적이 될 순 없다. 주말에 특별히 할 일없이 가족들과 쓸데없는 잡담으로 웃고 떠들며 맛있는 것을 먹는 시간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큰 의미 없는 시간이겠지만 그런 것들이 모여 가족애와 정서적 안정감의 깊이가 깊어지듯이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만들어진다.     


대학원을 나와서 당장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나 이전에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평면적이었다면 이제는 좀 더 입체적으로 변하였고 그런 관점을 통해 답을 얻어가는 과정이 이전보다는 좀 더 정교해진 느낌이다. 이런 것들은 가시적인 변화가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선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나에게 가장 큰 변화라면 나를 나에게서 분리하여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보았을 때 ‘이전의 나’ 보다 ‘지금의 나’가 조금은 더 마음에 들어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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