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꺼 아저씨는 얼굴이 새까맸다. 늘 무표정으로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술에 취한 것처럼 휘청거릴 때가 많아 멀리서도 술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아저씨를 ‘꺼꺼’라고 불렀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횡설수설하는 중에 ‘꺼꺼’거려서 그렇게 불렸다고 했다. 어른들은 ‘심 꺼꺼’라고도 불렀다. 성이 심가였나 보았다.
아저씨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북한에서 무슨 장군이었다느니 간첩이었다느니 혹은 꽤 대단한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했다. 두 아들이 아저씨를 찾으러 왔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 한쪽에서는 아저씨 혼자 남한으로 내려와서 가족은 북한에 있다는 말도 들렸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북에서 장군이었는데 6·25 때 월남하여 고문을 받고 사람이 이상해졌다는 설로 굳어갔다.
신촌에서 산길로 올라가는 길목에 아저씨의 집이 있었다. 담벼락 없이 사방이 트여있어 길에서도 마당이 훤히 보였다. 아저씨는 짧은 스포츠머리에 흰색의 반소매 러닝을 주로 입고 있었다. 한쪽 팔이 없는 옷소매 끝은 항상 묶여 있었다. 혼자 사는데 한 손으로 저걸 어떻게 묶었을지 나는 늘 궁금했다. 아저씨는 대개 마당에서 무언가를 하고 계셨다. 장작 패기를 하거나 낫으로 집 앞의 풀쳐내는 일을 주로 하고 있었다. 겨울에는 풀이 없었을 텐데도 아저씨를 떠올리면 늘 낫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아저씨가 무서웠다. 길을 가다 혼자 만난 적도 없고 어떤 해코지를 당한 적도 없는데 아저씨의 정체를 알 수 없어 두려웠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두려우면서도 한편 나는 아저씨가 궁금했다. 내 주변에는 혼자 사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집만 해도 아홉 명의 대식구였고 친구들과 이웃도 다 가족과 함께 살았다. 혼자 살면 무섭고 쓸쓸하지는 않을지도 궁금했다. 아저씨네 집 앞을 지나갈 때면 무서워서 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면서도 흘끔흘끔 그 집안 살피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 집 주변에 신촌마을 사람들이 웅성웅성 몰려있었다. 가까이 지나며 보니 아저씨가 술에 잔뜩 취했는지 인사불성인 채 집 앞 길바닥에 누워있었다. 어른 몇이 달려들어 아저씨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흐물거리는 아저씨를 세우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계속 흘끔거리다 어른들 사이로 우연히 아저씨의 눈을 보고 말았다. 아저씨는 눈을 감고 있지 않았다. 초점 없는 회색 눈동자는 허공의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집으로 가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됐다. 동생은 ‘저 아저씨는 술이 밥인 줄 아나 보다’라며 아저씨를 위아래로 째려보았다.
나는 이상하게 아저씨의 회색 눈동자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옆에서 구시렁거리는 동생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저씨는 집에 들어갔을까, 아니면 길바닥에서 계속 그러고 있었을까 걱정이 되었다. 또 아무리 간첩이라도 가족은 있지 않을까 다시 궁금해졌다. 궁금함은 내내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어디서도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아저씨의 일상은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크게 변함이 없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며 학교 가는 길이 달라지면서 곧 꺼꺼 아저씨는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어쩌다 신촌을 지나갈 때면 문득 그날의 회색 눈동자는 무엇을 찾아 헤맸던 것인지 궁금해지곤 했다. 그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