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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상스님 Oct 23. 2024

법상의 슬기로운 생활수행

'유튜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초심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자기의 본성을 찾는 이 길의 참 뜻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책!

그런 책을 고민하던 끝에 나오게 된 책입니다.


그동안의 책이 직접  쓴 글들이라면,

이 책은 그 수많은 법회와 강연들 중에서

핵심적인 가르침만을 뽑아서 펴낸 책입니다.


그 수많은 법문의 바다에서 마음법의 핵심 요지만을

출판사의 안목으로 너무 잘 뽑았고,

또한 초심자도 읽을 수 있도록

흥미와 에피소드를 잘 엮으면서도

핵심적인 가르침을 잘 담아내었습니다.


수많은 책들이 있었지만, 특별히 애정이 가는

이런 책을 법우님들께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책소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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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 목탁소리>

종교를 초월해 16만 구독자가 함께하는 생활수행

‘토끼가 사자처럼 되고 싶다면

가난하지만 부자처럼 되고 싶다면 ’

토끼가 사자가 되려는 순간

땅에 박힌 나무가 걷고 싶은 순간

집착하고 고집하면 지옥을 만듭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푸르고 아름다워요.

토끼는 풀을 마음껏 먹으면 됩니다.

삶은 이대로 완전합니다


“스님, 더 많이 해야만 한다는 생각 없이 어떻게 살아가나요? 내가 지금 너무 가난하다는 생각이 있어야만 부자가 되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하죠. 집착하지 않으면 열심히 살기 어렵지 않을까요? 집착하지 않으면 삶의 원동력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많은 도반들이 법상스님의 법회에 찾아와 이렇게 질문한다. “그렇지 않다.”라고 법상스님은 단호히 답한다.


그 집착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분별分別을 강요하고, 삶에 대한 끝없는 덧칠을 강요함으로써, 오히려 희망하는 목표를 쉽게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아픔과 괴로움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법상스님은 부처가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고통받던 실존적 존재였다는 점에 특히 주목한다. 사랑포기, 취업포기, 양육포기, 노후포기에 이르기까지 상실이 일종의 습관이 돼버린 오늘의 우리들에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는 조용한 울림을 준다.


자기만의 잣대로 세상과 자신과의 사이에 선을 그어 분별分別함으로써 오히려 성취보다 포기를 자초하는 모순의 쳇바퀴를 돌고있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엉켜있는 집착의 끈을 과감히 내려놓으라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를 담아낸 아름다운 생활수행의 이야기이다.


“나의 생각으로 그림 그리듯 삶을 덧칠하지만 않는다면,

있는 그대로 완전한 삶이 드러납니다.

그렇게 드러난 인생은 ‘눈부시게 아름답다.’라는 진부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그런 선물입니다.”


우리는 깨달음에 이르려면 왜 멀리 떠나 명상해야 하고, 부처님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법상스님은 실존적 인간으로서의 부처도 외로웠던 존재임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처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열반의 언덕으로 제도濟度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다른 누군가가 나를 대신 제도해줄 수 없고, 그것은 부처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있는 그대로 일러준다.


부처의 힘에 기대어 깨달음을 얻으려고 집착하는 마음이 오히려 나와 부처를 둘로 나눠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나 자신이 곧 부처’라는 진실을 일깨운다. 나의 바깥에 있는 부처는 나를 깨닫게 하지 못하며, 바깥의 부처님은 형상의 부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부처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진짜 부처는 누구일까? 법상스님은 바로 ‘자기 마음’이라고 명료하게 답해준다. 겉보기에는 스님들이 공부하기 좋은 환경에 놓여있으나, 오히려 우리들이 더 빨리 마음공부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 바깥을 향해 구한다면 우리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일상 속의 자신에게 집중할 때 진짜 생활수행이 된다.


자기 스스로를 깨닫는 공부

“지금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때

이 세상은 거울에 비친 당신 자신의 얼굴임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법상스님은 우리들을 가리켜 ‘함께 도를 닦는 벗.’이라는 뜻의 도반道伴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스님의 유튜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를 통해 종교를 초월한 16만여 구독자와 오랜 세월 소통해온 <하되 함 없이>의 핵심을 담고 있다.

매주 실시간으로 열리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토요법회와 대원정사 일요법회는 매 회 1,000여 명 이상의 도반들이 온오프라인 법회에 참여해오고 있는 마음공부 터전이다. 스님의 설법은 자상하지만 파격적이고, 쉽지만 강력하다. 따뜻하지만 때로는 냉정하다. 스님은 무엇을 하라고 우리들에게 지시하거나 규칙을 정해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스님의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저절로 괴로움이 쉬어가고 삶이 변화된다고 느낀다. 법상스님은 우리가 부처에 기대게 하는 대신,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을 쥐어준다. 이 책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말씀을 선물처럼 담아낸 에세이이다.


외로움과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아야 맞다면

에이아이AI 로봇이 부처입니다.

로봇에게 망상이 작용되지 않게 시스템을 해놓으면 로봇은 그냥 가만있으니

단 하나의 생각도 일어나지 않으니, 부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AI 로봇이 될 수 없습니다.”

스님은 며칠씩 시간을 내서 거창하게 멀리 떠나 깨달음을 얻으려는 공부를 헛되다고 지적한다.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출퇴근이 서너 시간씩 소요되는 절박하고 고단한 버스나 지하철에서 열망으로 공부하고 단 몇 분이라도 집중할 때, 배우자를 바라보며 ‘이번 생은 망했다.’ 절망이 쏟아질 때, 그때 그 순간이야말로 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공부가 훨씬 쉽고 더 효과적인 마음공부라는 것이다.

그래서 법상스님 목탁소리는 생활수행의 마음공부를 현실 속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학습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스님이 성지순례보다는 우리들이 머무는 이곳을 바로 ‘성지’라고 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대기업들의 화두가 상생경영입니다.

상생 융합 통섭

이런 상관적 개념들이 기업에서 많이 사용되는 이유가 뭘까요.

함께 살리고 서로 살리는 직업정신이

세계적으로 주요한 모토가 되고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정명正命의 정신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자기들만의 표상으로, 자기식대로 걸러서 본다. 만약 그 걸러보는 색안경이 없으면, 그 필터가 없다면 이 세상이 과연 어떻게 보일까?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연히 그저 보이는 대로,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법상스님은 이것이 마음을 공부하는 진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비본질적인 것, 진짜가 아닌 것들을 하나하나 걷어내는 과정이 마음공부라는 것이다. 실상을 보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열반 해탈이 따로 있나요? 법상스님은 그런 것은 따로 없다고 설법한다.


괴로운 사람이 바로 중생이기 때문에 중생에게 방편으로 만들어낸 개념들이니, 부디 ‘괴롭다.’라고 망상을 부리지 말 것! ‘친구와 낫을 들고 풀을 베다 핏방울이 튀었는데도, 어디에 상처가 났는지 인식하기 전까지 친구도 나도 아픈 줄을 몰랐다.’라는 실제적 경험을 통해 법상스님은 아픔이란 마음이 거기에 갈 때 비로소 느끼게 되는 것이라는 위로를 알러준다.


<법상의 슬기로운 생활수행>은 종교의 세계를 넘어 생활수행의 철학을 통해 우리가 삶의 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에게 담백하게 집중함으로써, 한 단계 높은 정신세계로 날아가는 아름다운 여행의 비밀을 담고 있는 마음공부 책이다.


책 속으로

현실에서 괴로움이 일어나는 이유는 어떤 업이 해결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업장 소멸되기 위해서 일어난다.’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해요.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게 해결된다는 얘기죠. 해소되려고 나쁜 일이 나타난 거죠. 예를 들어 내가 백만 원 날렸다. 그 때문에 잠깐 괴롭지만 지금 받아들여버리면 툭 털어버릴 수 있단 말이에요. 그게 지금 해결되지 않고 미뤄진다면 10년 뒤에 그게 천이 될지 억이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니 지금 백만 원 날린 걸로 그냥 딱 끝내버리는 게 좋을 수 있습니다.

_159p


눈이 눈을 볼 수 없듯 부처가 부처를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단 뜻이에요. 둘로 나뉘어야만 자기를 경험할 수있거든요. 그러니까 둘로 나뉘는 것 같은 망상을 일으켜서 우리 중생들이 괴로움이라는 환상을 겪게 만드는 거예요. 그게 목적이니까요. 괴로움은 왜 있는 것일까요? 겪으라고 있습니다. 만약에 지금 괴로움이 왔다면 그걸 거부하라고 온 것이 아니라 충분히 흡수하고 받아들이라고 온 것입니다. 우리의 본래 성품이 허용하기 때문에 다 받아들여집니다. 병원에서 “당신은 6개월 후에 죽습니다.” 하면 누구나 받아들입니다. 불자만 받아들이는 게 아니에요. 누구나 받아들여요. 어떤 괴로움도 훅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있는 그대로 아무 문제없어요.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고 실상 실체가 없어요. 그런데 ‘이건 좋고 저건 싫어’ 이렇게 둘로 나누어 놓고 좋은 건 가지려고, 싫은 건 버리려고 기를 쓰는 게 분별심이거든요. 그 분별을 하지 않는 것이 중도예요. 주어진 것들을 그냥 허용하는 것이 본성이고 중도입니다. 그리고 이 중도라는 것은 불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_162~163p


삶은 쉽게 살아야 합니다. 아주 쉽게, 이보다 더 쉬울 수 없게, 하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예요.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그걸 다르5부 삶을 놀이처럼 게 말하면 놔버리는 거예요. 방하착放下着, 부처님께 내맡겨버리는 거죠.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극락세계를 경험하게 해주거나 깨달은 열반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줄 뿐이에요. 분별에서 벗어나게 해줄 뿐이지 따로 있는 극락세계는 없어요. 부처의 현실은 우리랑 똑같았어요. 괴로운 일투성이였고, 밥을 못 먹기도 했고, 우리보다 복도 더 없었죠. 특히 밥을 못 먹을 때가 많았으니까요. 우리는 밥은 거의 안 굶고 살잖아요.

_205p


최근 대기업들의 화두가 바로 상생경영입니다. 옛날에는 우리 회사만 잘되면 됐는데, 하청 업체를 괴롭혀서라도 우리 기업이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이제는 하청 업체가 잘살아야만 대기업도 잘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뀐 거죠. 그리고 하청 업체도 소비자에게 좋은 걸 제공해야만 나중에 ‘저 회사는 정말 믿을 만한 회사.’라는 소비자들의 인정으로 돌아와서 나중에 더 큰 수익이 난다는 걸 아는 거죠. 더 크게 연기성과 연결성을 보는 겁니다. 상의상관성을 보기 때문에 이제는 상대를 살리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라는 것을 기업들도 자각하는 거죠. 함께 살리고 서로 살리는 직업 정신, 이런 것들이 세계적으로 주요한 모토가 되고 있고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정명의 정신과 같죠.

_146~1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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