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이 막지 못하는 CPTSD의 구조적 고통에 대하여
정신과 약물은 감정 폭발, 자살사고, 충동행동 같은 즉각적이고 명확한 임상적 징후를 제어하는 데 탁월하다. 우울증에서의 약물 반응률은 평균 50% 수준이고,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 등에서 약물은 생활 유지의 기반이 되는 수단이 된다. 특히 BPD(경계선 성격장애)나 MS(혼재형 양극성) 환자에게는 급성기 정서폭주를 막는 데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약물은 “긴급 신호 차단 시스템”처럼 작동한다. 위험한 불꽃을 끄는 데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CPTSD(복합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이와 다르다. CPTSD는 단발적 외상 이후의 반응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친 반복적·구조적 학대, 감정 억압, 관계의 파괴로 인해 생긴 존재적 왜곡이다. 이들은 종종 말한다. "화는 덜 내게 됐지만, 아무런 감정도 안 들어요.", "죽고 싶지는 않은데, 살고 싶은 이유도 없어요.", "약 먹으면 잠은 자요. 근데 그게 해결된 건가요?" 약물은 ‘자극을 낮추는 기능’은 하지만, 그 자극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해석을 돕지 않는다. 감정의 회로는 차단되었지만, 의미의 회로는 여전히 혼란 속에 방치된다.
정신의학은 흔히 신경전달물질 수준의 치료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CPTSD는 기억-신념-감정-해석이라는 메타구조를 필요로 하는 정신 내 모델링 질환이다. 요컨대, CPTSD 치료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충격이 아니라 해석의 지속이 문제다. 방아쇠가 아니라 의미의 손상이 고통을 만든다. 약이 아니라 기억의 재서사화가 치료를 가능케 한다. 이 구조를 무시한 치료는 무의미한 관리만 반복하며 생존만 연장할 뿐이다.
정신과 시스템은 종종 ‘살려두기 위한 치료’에 머무른다. 이 치료는 말한다. “당장 위험하지 않으면 괜찮은 거예요.” 그러나 CPTSD를 겪는 사람은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그들은 “살아남는 법”이 아니라,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다시 신뢰할 수 있을지, 내 감정은 정말 내 것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약물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 질문은 구조적 해석, 기억의 재구성, 의미의 재탄생으로만 답할 수 있다.
나는 5개월간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실질적인 회복은 없었다. 충동은 줄었고, 수면은 늘었지만, 삶의 맥락은 바뀌지 않았다. 상담은 행정처리처럼 느껴졌고,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말한다. "나는 실패한 환자가 아니다. 단지 구조적으로 오진된 환자다." CPTSD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약물만이 아니라, 존재론적 해석과 재구조화 가능한 상담 모델이다. 지금의 정신건강 시스템은 그걸 제공하지 않는다.
당신은 정말 ‘위험한 증상’을 없애고 싶은가, 아니면 ‘고통의 의미’를 알고 싶은가? 당신은 약물에 의해 살아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 살아 있다고 느끼는가? 그 질문이 시작일 것이다. 고통을 없애려는 싸움이 아니라, 고통을 이해하려는 여정. 그게 바로 CPTSD 회복의 출발점이다.
#202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