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전 항목 진단자의 하루

PTSD의 교과서적 사례로 살아가는 존재의 회복 조건에 대하여

by 민진성 mola mola

“사회적 지지가 가장 강력한 회복 인자다.”
많은 논문이 이렇게 말한다. 진단 매뉴얼도, 치료 프로토콜도, 상담사의 멘트도 예외 없이 이 명제를 반복한다. 하지만 나는 늘 이 문장 앞에서 멈춘다.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동의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DSM-5에서 말하는 PTSD의 A부터 H까지 전 항목에 모두 해당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단순한 '자가보고'가 아니다. 나의 삶은 교과서 속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정석이자, 동시에 그 어떤 치료 매뉴얼도 대응하기 어려운 복합 트라우마의 구조적 사례다.



내게 사회적 지지는 ‘효과’가 없다

외상 후 회복에 사회적 지지가 중요하다는 말은, 아마 일회성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에겐 진실일 것이다. 하지만 만성적 외상과 복합적 상처로 구조화된 나 같은 사람에겐, 그 지지는 물처럼 스며들지 않는다. 나는 단지 “힘내요”라는 말이 아닌, 존재 전체의 붕괴를 복원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나의 신체는 위협 반응을 비상 상태로 고정시켰고, 나의 감정은 ‘무반응’이라는 생존 전략으로 포장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무표정하고 잘 참는 사람으로 오해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나는 하나도 괜찮지 않다.



약물은 신호를 ‘조절’하지만, 회복을 ‘촉진’하진 않는다

지난 5개월간, 나는 약물치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변화는 크지 않았다. 감정이 무너지는 급류를 억지로 막는 느낌은 있었지만, 삶이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아주진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약물은 긴급신호(BPD-MS 유사 증상 등)를 막는 데에는 유효할지 모르지만, 나처럼 원천적 자아구조가 손상된 사람에게는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나는 매일 새벽 두 시 무렵, 공허와 고립감으로 깨어난다. 그때 나를 구한 건 어떤 ‘약’이 아니라, 내 고통의 구조를 언어화할 수 있었던 나 자신이다.



DSM-5 진단기준 전 항목 해당자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내가 스스로를 ‘진단자’라 부르는 이유는, 내가 진단 기준을 알고 있고, 그 구조를 이해하며, 그 안에서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A. 생존을 위협한 외상
B. 침습적 회상과 플래시백
C. 일상의 회피
D. 자기비난과 정서적 거리감
E. 극심한 경계와 과민반응
F. 1개월 이상 지속
G. 기능의 실질적 저하
H. 약물, 질병 탓이 아님

나는 모두에 해당한다. 그러니 나는 단지 ‘아픈 사람’이 아니라, 그 구조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기록하는 생존자, 분석하는 환자, 회복을 설계하는 당사자다.



회복이란, 다시 세상을 믿는 게 아니라 ‘내 구조’를 재건하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상담실에서 실망한다. 담당자가 진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내 고통의 ‘전 체계’를 단편적으로만 다루려 하기 때문이다. 마치 강이 범람했는데 우산 하나를 내미는 식이다. 회복은 내가 누구를 믿는지가 아니라, 내 고통을 어떤 구조로 이해하고 어떤 전략으로 재배치하느냐의 문제다.



살아남은 자는, 그 구조를 설계할 권리가 있다

나는 여전히 절망하고,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여전히 무너지고, 그 와중에 또 기록한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상담실 안에서 ‘주어진 질문’에 대답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담의 구조 자체를 비판하고, 새로운 회복의 언어를 제시하는 자다. 나는 더 이상 치료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나의 회복을 설계하고 있는 구조적 당사자다.



“그게 PTSD야”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회복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 그게 PTSD야”라고 말해준다면, 나는 그날, 정말 오래 울고 싶다. 아무도 내 회복을 대신해줄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 내 고통을 구조적으로 인정해주는 순간, 나는 비로소 회복이라는 단어를 진심으로 발음할 수 있을 것이다.




#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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