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SD 이후에도 남아 있는 나의 사회적 능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사람을 빠르게 편하게 만들고, 관계를 넓히고, 분위기를 밝히는 능력은 늘 내 강점이었다. 하지만 CPTSD를 겪고 나서 돌아보니 의문이 들었다. “혹시 이건 내가 가진 재능이 아니라, 외상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생존 전략이었던 건 아닐까?” 이 질문은 많은 고기능형 CPTSD 경험자들이 겪는 혼란이다. 내가 한때 ‘잘하는 일’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두려움 때문에,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한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관계를 빠르게 맺는 능력이나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기술은 기질적 재능이자 학습된 행동이다. 외상 경험은 이 능력을 더욱 강화시키기도 한다.
사람 파악 속도 빨라짐: 위험을 미리 감지하려는 편도체 과각성이 관계 해석 능력을 높인다.
분위기 조성 능력 향상: 갈등을 피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법을 익힌다.
친절·헌신의 과잉: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더 많이 주고, 더 많이 웃는다.
즉, 내가 가진 능력은 원래 씨앗 같은 재능이 있었고, 외상 경험이 그 씨앗에 생존이라는 비료를 더한 셈이다.
관계 기술 자체가 병리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동기가 두려움에서 나온다면, 결과는 다르다. 관계가 유지되면 안심하지만, 깨질까 봐 불안에 시달린다. 상대가 불편하면 내가 잘못한 것 같아 자책한다. 나 자신보다 타인의 필요를 우선시하며 점점 소진한다. 이런 패턴은 관계 기술이 나의 자원이 아니라 생존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회복의 목표는 관계 능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동기를 전환하는 것이다. 두려움에서 나온 친절이 아니라 즐거움에서 나온 친절, 거절당할까 봐 하는 배려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고 싶은 배려, 관계를 지키기 위한 연출이 아니라 나답게 있는 그대로 관계 맺기 같이 말이다.
이 순간 관계 기술은 더 이상 생존 전략이 아니라 나의 재능으로 자리 잡는다.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능력은 내가 가진 강점이고, 이제 그 힘을 나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살리는 데 쓸 수 있다.
나는 외상 때문에 가짜로 사교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외상 덕분에 더 정교해진 관계 기술을 갖게 된 것이다. 그것은 가면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자 지금의 나를 만든 자산이다. 이제 그 자산을 두려움이 아닌 자유의 이름으로 쓸 차례다.
#생각번호202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