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불신은 입법 무지의 다른 이름
뉴스에서 ‘음주 감경’, ‘심신미약’, ‘증거 불충분 무죄’ 같은 단어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분노한다. “또 판사가 봐줬다”, “사법이 썩었다.” 하지만 그 분노의 방향은 종종 엇나간다. 사법부는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법을 적용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음주 감형을 허용하는 조항도, 증거가 없으면 무죄로 간주하는 원칙도 모두 입법부가 정한 규칙이다. 사법부는 그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그러니까 “법이 잘못됐다”는 말은 국회를 향해야 한다. 그러나 국회는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눈앞에서 사람을 풀어주는 건 판사이기 때문이다.
입법은 느리고 추상적이다. 하지만 재판은 구체적이고 드라마틱하다. 대중은 결과를 본다. 그 결과가 상식과 어긋나면 ‘사법 불신’이라는 이름의 감정이 폭발한다. 그러나 그 감정의 밑바닥에는 ‘입법 체계에 대한 무지’가 놓여 있다. 법의 구조를 모르면, 정의의 실패는 언제나 판사의 얼굴을 닮는다.
〈베테랑2〉에서 시민들이 사적 제재를 가하는 이유도 같다. “법대로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말은 사실 “법이 잘못됐다”는 말이어야 하지만, 대중의 언어로는 “법이 작동하지 않는다”로 바뀐다. 정의는 법정에서 죽은 게 아니라, 법을 만든 이들의 무책임 속에서 방치된 것이다.
사법은 결과를 만든다. 입법은 그 결과의 구조를 만든다. 우리가 사법을 불신하기 전에, 입법을 감시할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 정의는 감정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정의는 ‘조항’으로 존재한다.
#생각번호202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