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불신은 왜 사법의 문제가 아닌가
한국 사회에서 ‘사법 불신’은 일상적인 감정이 되었다. 대중은 판결이 나올 때마다 분노한다. “왜 저건 감형이야?”, “왜 무죄야?” 하지만 그 판결을 내린 판사보다, 그 판사가 따라야 하는 법의 구조를 의심해야 한다. 사법부는 법을 만들지 않는다. 법을 만든 건 입법부다. 그럼에도 대중의 분노는 늘 법원과 검찰로 향한다. 왜냐하면, 사법은 눈에 보이고, 입법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검찰청 개혁, 수사지휘권 박탈, 공수처 설치 — 이 모든 ‘사법개혁’은 실제로는 정치적 감정의 해소를 위한 조치였다. 권력기관 간의 힘의 균형은 조정됐지만, 국민이 느끼는 불신의 근본 원인은 그대로 남았다. 왜냐하면 불신의 뿌리는 사법이 아니라 입법의 낙후성이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했는데, 법조문은 여전히 과거의 언어로 쓰인다. 그래서 법원은 시대의 정의를 구현하기보다, 낡은 법의 해석자로 오해받는다. “법을 바꾸지 않고, 사람만 바꿨다.” 결국 사법개혁은 ‘제도개혁’이 아니라 ‘인물교체’의 형태로 소비됐다.
대중의 분노는 본래 ‘정의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이 제도의 구조를 분석하기보다 눈앞의 인물이나 기관으로 향할 때, 책임의 화살이 틀어지게 된다. 입법은 구조를 바꾸고, 사법은 그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정치권은 감정의 흐름을 따라, 입법 개혁이 아닌 사법 개혁을 선택했다. 그건 감정의 즉각적 반응엔 부응했지만, 결국 제도적 원인을 그대로 남겼다. 제도의 결함을 사람의 결함처럼 다루면 감정은 진정되어도 문제는 반복된다.
사법 불신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법조문, 양형 기준, 형량 체계 같은 입법의 세부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감정적 정의가 아니라, 이성적 입법이 정의를 지속시킨다. 한국의 사법개혁은 “불의에 분노한 감정”을 동력으로 삼았지만, 결국 감정의 불씨만 옮겨놓고 제도는 그대로 남았다.
법은 결국 인간의 감정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정의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 위에서 완성된다. 감정이 불의를 드러내지만, 이성만이 불의를 고친다. 이제는 ‘사법개혁’이 아니라 ‘입법개혁’을 말해야 할 때다. 감정의 사법이 아니라, 이성의 입법이 진짜 정의를 만든다.
#생각번호202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