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2 리뷰#16] 감정권력의 탄생

법을 만든 자들이 감정을 지배하는 사회

by 민진성 mola mola

감정이 정치의 언어가 되었을 때

지금의 정치 담론은 ‘감정’으로 움직인다. 분노, 환호, 혐오, 연민 — 모두 정책의 논리가 아니라 감정의 언어로 유통된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SNS는 ‘정의’와 ‘응징’으로 들끓고, 정치인은 그 여론의 흐름을 따라 ‘개혁’을 외친다. 하지만 그 개혁은 이상하게도 늘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감정의 불씨를 잠재우는 수준에서 끝나고, 법과 제도의 근본 구조는 그대로 남는다. 감정은 권력의 연료로 쓰이고, 권력은 감정을 통제하는 기술을 익힌다.



법을 만드는 자가 감정을 설계한다

입법부는 민주주의의 ‘이성적 기관’으로 포장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방향을 설계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자다. 그들은 분노의 대상과 방향을 결정한다. 사건이 터지면, 대중의 감정을 특정 제도나 인물로 향하게 만든다. ‘사법개혁’이든 ‘검찰개혁’이든, 그것은 진짜 구조 개혁이 아니라 감정을 배치하는 정치적 기술이다. 입법부는 법을 만들지 않으면 욕먹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움직여 ‘법이 바뀌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만든다. 그래서 정작 법을 만든 사람들은 개혁의 주체로 남고, 그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나 행정부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것이 감정권력의 핵심 구조다.



감정은 민주주의의 에너지이자 도구

민주주의는 본래 감정을 포함하는 체제다. 선거는 감정의 투표이고, 여론은 감정의 통계다. 그러나 감정이 제도에 흡수되면, 그 감정은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감정이 제도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제도가 감정의 경로를 미리 설계한다. 뉴스의 순서, 정치인의 발언, 공론장의 의제 — 이 모든 것은 ‘감정을 어느 방향으로 분출시킬 것인가’를 계산한 결과다. 감정은 자발적으로 분노하지 않는다. 자극받도록 유도된 뒤에 분노한다.



감정의 해방은 구조의 자각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사법이 부패했다”, “정치가 썩었다”고 말할 때, 사실은 감정이 조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감정의 조작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개혁은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게 아니라, 감정이 설계되는 구조를 인식하는 것이다. 어떤 사건에서 분노를 느낀다면, 그 감정이 누구에게 유리한가, 어떤 제도의 개편을 회피시키는가, 그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감정이 이용되는 구조를 인식하는 순간, 감정은 다시 인간의 것이 된다.



감정을 통제하는 자를 통제하라

감정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다. 언론이, 정치가, 법이 감정을 자원으로 삼는 사회에서 감정은 권력의 화폐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의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 분노할 자유, 의심할 자유, 냉정할 자유. 그 자유 없이는 민주주의도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이 인간의 마지막 영역이라면, 감정을 통제하는 자를 감시하는 것이 우리의 마지막 정치다.




#생각번호20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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