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솔희의 ‘띵—’과 나의 이명 사이
드라마 〈소용없어 거짓말〉 속 목솔희는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띵—’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명확하다. 누군가의 말이 진실을 벗어날 때마다, 그녀의 세계는 한순간 멈추고, 공기가 바뀐다. 나는 그 소리를 듣지 않는다. 대신, 머리가 아프고 귀가 먹먹해지고, 몸이 굳는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누군가가 겉으로는 웃으며 속으로는 전혀 다른 의도를 품고 있을 때, 내 몸은 가장 먼저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때의 감각은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다. 피부 아래에서 무언가가 “지금 위험하다”고 울리는 듯하다. 아마도 목솔희가 듣는 그 ‘띵—’은, 내가 신체로 느끼는 그 경보의 청각화된 형태일지도 모른다.
뇌는 거짓말을 단순한 말의 문제로 처리하지 않는다. 그건 감정의 불일치, 즉 ‘신호 간의 모순’으로 인식된다. 표정과 억양, 시선과 말의 리듬이 어긋날 때, 편도체는 즉시 반응한다. 그 순간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근육에 힘이 들어가며, 심박이 빨라지고, 혈류가 변한다. 이 과정을 통해 몸은 ‘위선’을 위협으로 처리한다. 언어적 거짓은 마음을 속이지만, 위선은 몸 전체를 속이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그 위선을 몸으로 ‘맞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선이 내 신경계를 ‘과잉 점화(overactivation)’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 두통, 이명, 소름, 긴장이 이어진다. 즉, 거짓말은 내게 언어가 아니라 자극으로 다가온다.
목솔희의 ‘띵—’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다. 그건 신경계가 울리는 경고음을 외부 세계로 변환한 소리다. 내게 들리는 이명은 안쪽에서 울리는 경보음이라면, 그녀의 ‘띵—’은 밖으로 들리는 버전이다. 둘 다 “이건 진심이 아니다”라는 신경학적 메시지다. 뇌과학적으로는, 이런 감각은 편도체와 자율신경계가 동시에 과활성화될 때 생긴다. 특히 트라우마 이후의 뇌는 ‘불일치’를 생존 위협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작은 위선조차 신체 전체가 반응한다. 그건 단순히 예민함이 아니라, 신경계의 학습된 방어기제다.
이런 신체적 경고는, 처음엔 나를 보호하지만 지나치게 빈번해지면 오히려 피로를 낳는다. 세상은 언제나 불일치로 가득하고, 누구나 어느 정도의 위선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능력은 축복이자 고통이다.진실을 너무 빨리 감지하는 몸은 세상의 미세한 진동에도 흔들린다. 그러다 결국 진실보다 피로가 먼저 찾아온다. 나는 그럴 때, 잠시 귀를 막는다. 누군가의 거짓보다, 그 거짓을 감지하느라 긴장한 내 몸을 먼저 안심시키기 위해서.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이명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내 신경계의 과잉 친절이다. 그건 나를 아프게 하지만, 동시에 보호한다. 그러니 나는 그 소리를 완전히 없애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소리를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진실을 듣는 몸이, 고통 대신 균형의 리듬을 회복하도록. 목솔희의 ‘띵—’은 결국 우리 모두 안에 있다. 다만 어떤 이는 그걸 ‘귀로’, 어떤 이는 ‘몸으로’ 들을 뿐이다.
#생각번호202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