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없어 거짓말#23] 죽은 뒤에야 사랑하는 사람들

후회로 대체된 애착의 심리

by 민진성 mola mola

그는 여동생을 위해 울지 않는다

도하의 전애인 오빠는 여동생의 죽음 이후, 살인범을 찾아 전국을 헤맨다. 그는 정의감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의 분노는 세상을 향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다. 살아 있을 때 그는 그녀의 불안을 ‘유난’이라 여겼고, 그녀의 고통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가 죽고 나서야, 그 유난이 사실은 구조 신호였음을 깨닫는다. 그는 여동생을 잃은 오빠가 아니라, 여동생을 구하지 못한 자신을 잃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살아 있는 관계는 어렵다. 오해하고, 다투고, 지쳐가며 끊임없이 ‘조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다르다. 그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새로운 상처를 남기지도 않는다. 죽은 사람은 완결된 서사 속에서 이해 가능한 존재로 남는다. 그래서 그는 살아 있을 때 외면했던 동생을 죽은 후에야 감당 가능한 존재로 바꿔버린다. 살아 있을 때의 사랑은 피로하지만, 죽은 후의 사랑은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는 여동생을 이해한 게 아니다. 단지, 더 이상 이해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후회는 사랑의 대체물이다

트라우마 연구에서 ‘생존자 죄책감(survivor’s guilt)’이라는 개념이 있다. 누군가의 고통을 방관한 뒤 살아남은 사람은 그 죄책감을 견디기 위해 행동으로 자신을 구원하려 한다. 그는 정의를 실천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과거를 복구하려 한다. 살인범을 쫓는 건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그때 왜 그녀를 믿어주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끝없는 자기 심문이다. 그는 여동생을 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지 못한 과거를 구하려는 중이다.



살아 있을 때의 애착은 감정, 죽은 후의 애착은 이야기

살아 있을 때 사랑하는 일은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하며, 끝없는 피로의 연속이다. 하지만 죽은 뒤의 사랑은 완결된 서사다. 그 속에서는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는 ‘지켜주지 못한 형’으로 남을 수 있고, 그 역할은 결코 깨지지 않는다. 그는 여동생을 지키지 못한 게 아니라, ‘영원히 지켜주는 형’으로 남고 싶었던 것이다. 그에게 애도란,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정체성의 피난처다.



살아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용기

사람은 죽은 뒤에야 사랑을 말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나를 거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안전하고, 완벽하고, 그래서 비겁하다. 살아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불완전함을 견디겠다는 약속이다. 그는 여동생을 위해 울고 있는 게 아니라, 그 불완전함을 견디지 못한 과거의 자신을 위해 울고 있다. 그는 사랑하지 못한 과거를 애도하고 있을 뿐, 지금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번호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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