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허세를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왜 허세 있는 남자에게 끌릴까
연애 이야기에서 가장 흔히 듣는 말이 있다. “나는 허세 부리는 남자 진짜 싫어.”, “실속 없는 큰 말 하는 사람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만 이상하게도 드라마 속 남주, 로맨스 영화의 히어로, 현실에서 ‘인기 있는 남자’들을 보면 대부분 확신이 과장된 사람이다. 큰 포부를 말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단정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 왜 그럴까? 도대체 왜 싫다고 말하는 대상에게 끌리는 걸까?
허세는 말의 부풀림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말의 내용이 아니다. 허세 속에는 늘 이런 메시지가 숨어 있다: “나는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간은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 왜냐하면 확신은 다음을 암시한다.
결단력
추진력
위험 감수 능력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
나를 지켜줄 수 있는 힘
즉, 허세는 능력 그 자체가 아니라 능력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의 신호다. 사람은 지금보다 더 큰 세계를 약속하는 사람에게 끌린다.
의식은 이렇게 말한다.
진지한 사람 좋아해.
성실한 사람 좋아해.
과장 없는 사람 좋아해.
하지만 무의식은 이렇게 선택한다.
“나를 더 큰 이야기 속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허세는 무의식에게 이렇게 들린다: “나는 너와 함께라면 지금과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어.” 사람은 종종 좋아한다는 말보다 “가능하다”는 암시에 더 크게 끌린다.
허세 있는 남자가 하는 일은 아주 단순하다. 내가 너의 인생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감각을 준다. 이건 로맨스에서 가장 강력한 서사적 매력이다.
너의 세상 너머로 데려가 줄 것 같은 사람
새로운 가능성과 모험을 약속하는 사람
허세는 현실이 아니라 세계관을 건드린다. 사람은 자신이 더 큰 이야기 속의 인물이 되는 순간에 끌린다. 그래서 허세는 위험하지만, 동시에 매력적이다.
초반에는 확신이 가진 에너지가 매력이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 확신은 실체를 요구한다. 허세는 초반 인상은 만들 수 있지만 지속 가능성은 만들지 못한다. 지속 가능한 관계는 허세가 아니라 책임의 언어를 가진 사람이 만든다.
여자들은 허세를 싫어하는 게 맞다. 하지만 허세 속에 감지되는 확신과 세계관의 크기에는 끌린다. 즉, 매력의 본질은 허세가 아니다. 매력의 본질은 “나는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기 확신이다. 그러나 미래를 말하는 사람은 많고, 미래를 지속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래서 결국 초반에는 허세 남자가 이기지만, 끝까지 가는 건 책임의 언어를 가진 사람이다.
#생각번호202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