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SD만의 이야기가 아닌, PTSD의 또 다른 얼굴
트라우마의 누적은 종종 이렇게 설명된다. “초기 트라우마가 반복적으로 쌓이면 정동 조절 발달이 방해되고,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와 불쾌감이 나타난다.” 이 문장을 접하면 많은 사람들이 곧바로 떠올린다. CPTSD.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멈춰볼 필요가 있다. 트라우마의 누적은 정말 CPTSD에만 해당되는 개념일까.
트라우마에서 말하는 누적은 사건이 몇 번 있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누적이란, 회복되기 전에 조절되지 않은 상태로 스트레스 반응이 반복적으로 활성화되는 과정이다. 하나의 사건이라도 그 이후의 공포, 긴장, 재경험이 수개월, 수년 동안 지속된다면 신경계에는 충분히 누적이 일어난다.
PTSD는 흔히 ‘한 번의 큰 사건’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실제로 PTSD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 이후의 상태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고는 한 번이었지만 몸은 매일 위협을 감지하고, 잠은 깨지고, 감정은 과민해진다. 이때 누적되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각성 상태다. 그래서 단일 PTSD에서도 정동 조절의 어려움, 불쾌감의 증가, 분노 폭발과 감각 과민이 충분히 나타난다. 단일 사건이라고 해서 누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CPTSD가 별도로 구분되는 이유가 있다. 차이는 사건의 크기보다 시점과 환경에 있다. CPTSD의 누적은 대개 아동기나 초기 발달기에 시작된다. 회복을 도와줄 안전한 관계가 없고, 위협이 반복되며, 그 위협이 관계 안에서 일어난다. 이때 누적되는 것은 공포 반응만이 아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법, 자기를 이해하는 방식, 타인을 신뢰하는 기준 자체가 형성되지 못한다. 그래서 CPTSD는 반응의 누적이라기보다 발달의 누적 실패에 가깝다.
정동 조절 기술의 붕괴가 반드시 발달기 트라우마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인 이후의 단일 트라우마라도 충분한 회복 없이 장기간 방치되거나, 사회적 지지가 붕괴되거나, 위험 자극이 반복 재활성화되면 기존에 갖고 있던 조절 기술은 무너질 수 있다. 이 경우는 기술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침식되고 소실된 상태에 가깝다. 결과는 유사하다. 차이는 경로에 있다.
그래서 이 구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CPTSD인가, PTSD인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조절 능력은 언제 손상되었는가. 그리고 회복할 기회는 있었는가. 신경계는 진단명을 알지 못한다. 신경계가 계산하는 것은 노출된 시간과 회복 가능성뿐이다.
이 구분을 너무 엄격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나는 단일 사건이니까.”, “이 정도는 견뎌야지.” 이런 말로 고통을 축소하게 된다. 하지만 누적은 조용히, 꾸준히, 설명 없이 진행된다.
트라우마의 누적은 CPTSD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트라우마 반응의 보편적인 메커니즘이다. CPTSD는 그 누적이 너무 이르고, 너무 길고, 너무 관계적이었을 때 붙는 이름에 가깝다. 이 사실을 이해하면 우리는 진단을 내려놓고 조금 더 정확한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이 회복을 시작하게 만든다.
#생각번호20251219